전경우 소설가 문화칼럼니스트

 
어느 개그 프로에서 나온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라는 말이 유행한 적이 있다. 같은 제목의 책이 출간돼 화제가 되기도 했다. 1등들이 들으면 기분 나쁠 이 말에 많은 사람들이 속 시원하다며 열광했다. 소수의 가진 자들만이 희희낙락하고 나머지들은 그야말로 루저 신세로 전락하는 이 시대의 아픈 단면을 풍자한 때문이다.

요즘 프로야구 롯데의 양승호 감독이 한국시리즈 진출 실패를 이유로 물러나게 됐다는 소식이 체육계의 핫 이슈다. 스포츠 관련 언론인들은 물론 야구팬들까지 이번 처사가 부당하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지난해 처음 롯데 사령탑을 맡아 구단 역사상 처음으로 정규시즌 2위에 올렸고 2년 연속 플레이오프에 나갔지만 한국시리즈 진출에 실패했다는 이유로 도중 하차시킨 것은 지나치다는 것이다.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라는 말이 딱 어울린다. 지난 2년간의 공이 결코 나쁘지 않았음에도 1등을 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임기를 다 채우기도 전에 퇴임시킨 것은 1등 지상주의의 전형이다. 감독의 색깔과 철학을 제대로 구현할 시간을 주지 않고 눈앞의 성적에만 코를 박은 것 같아 아쉬움이 남는다.

‘빨리 빨리’ 문화가 우리의 성급한 성정을 조롱하는 말로 비웃음을 산 적이 있지만 반대로 오늘날 이만큼의 경제적 성과를 이룬 요인 중 하나가 ‘빨리 빨리’ 때문이었다는 주장도 설득력을 얻는다. 절대빈곤의 시절에는 느긋하게 기다리고 말고 할 여유가 없었고 그래서 죽기 살기로 서둘러야 했고 그것이 큰 효과를 본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느긋하게 기다려 줄 줄 아는 여유도 필요하다. 이제는 절대 빈곤의 시대가 아니라 좀 더 세련되고 성숙한 모습이 필요한 때이기 때문이다. 스포츠는 어쩌면 전쟁과 같다. 단기전에서 이길 전략도 필요하지만 길게 내다보는 안목도 필요하다. 성적뿐 아니라 야구 판 자체와 구단에 대한 팬들의 신뢰를 잃어버리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일본의 천하통일 주역 3인의 성격과 철학을 반영하는 말이 있다. 성격이 괄괄하고 급한 오다 노부나가는 “울지 않는 새는 죽여 버린다.” 했고, 꾀가 많은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울지 않는 새는 울게 만든다.” 했다. 성격이 느긋하고 인내심이 많았던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울지 않는 새는 울 때까지 기다린다.”고 했다.

오다 노부나가는 성격이 급하고 다른 사람의 처지를 잘 헤아려 주지 않은 탓에 결국 부하의 배신으로 목숨을 잃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임진왜란을 일으킨 장본인으로 원숭이상에 잔꾀가 많았고, 정적인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여러 차례 시험에 빠뜨렸지만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특유의 인내심과 느긋함으로 위기를 피해나갔다. 요즘도 일본의 경영인들은 3인의 영웅 중 자신이 가장 닮고 싶어 하는 인물과 데리고 쓰고 싶은 부하감으로 모두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꼽는다고 한다. 그 다음으로 오다 노부나가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이런 말도 했다.

“인생은 무거운 짐을 지고 먼 길을 가는 것과 같다, 서두르지 마라. 무슨 일이든 내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란 걸 알게 되면, 불만은 사라진다. 마음에 욕망이 일거든 곤궁할 때를 생각하라. 인내는 무사장구(無事長久)의 근원이요, 노여움은 적이라 생각하라. 이기는 것만 알고 지는 일을 모르면 해(害)가 그 몸에 미치게 된다. 자신을 책망할지언정 남을 책망하지 말라. 미치지 못함은 지나침보다 낫다. 풀잎 위의 이슬도 무거우면 떨어지게 마련이다.”

우리 중 누가 이기는 것만 알고, 자신이 아닌 남을 책망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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