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현 주필

 
선거날을 겨우 50여 일 앞둔 시점임에도 유권자들의 심중을 헤아리기가 어렵고 판세가 오리무중이다. 다만 이런 정도의 짐작이라면 가능하다. 즉 새누리당 후보와 야권 단일 후보의 양자 대결일 때는 그야말로 초접전, 초박빙의 승부여서 섣부른 전망이 아예 불가능하다는 것과 야권 단일화 없이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의 박근혜와 문재인 후보 그리고 무소속 안철수 후보, 이렇게 3자 대결일 때는 박근혜 후보가 무난히 이긴다는 정도다. 들쭉날쭉하고 오락가락하긴 하지만 각 기관의 여론조사가 그려내는 전망도 얼추 이와 비슷하다. 대통령 선거에 관한한 이렇게 헷갈리는 선거판은 처음 본다는 것이 이구동성에 가깝다.

남의 말을 알아들을 줄 아는 사람은 약간의 전략적 고려를 해 사람들을 만난다면 그리 많은 사람들을 만나보지 않고도 민심의 흐름을 대강은 짐작할 수 있다. 만나는 사람들이 성실하게 사는 책임감 있는 시민이라면 그 개인의 얘기는 개인의 얘기로 그치지 않는다. 그 개인의 얘기는 이웃의 얘기이고 마을의 얘기이며 사회 전체의 공론을 구성하는 중요한 일부다. 그런데 확신 있게 선거 전망을 말하는 그런 개인을 만나기가 어려워졌을 뿐만 아니라 혹여 그런 사람을 만나 확신 있는 얘기를 들었다 하더라도 그 말을 확신할 수 없는 것이 요즘의 형편이다. 말을 듣는 사람 스스로 빠져 있는 혼란 때문이다. 그렇다면 참으로 기이한 선거판을 모두가 경험하고 있다.

선거판이 이렇게 오리무중인 것은 몇 가지 이유를 들어 설명이 가능하다. 무엇보다 과거처럼 영남 호남 충청을 분할해 할거하던 정치적 지역 맹주가 사라진 탓이다. 지역 맹주가 사라졌다는 것은 지역 표심을 응집시켜 ‘묻지마’식으로 투표하게 했던 지역 표심들을 방황하게 했다는 것을 뜻한다. 그러니까 지역 맹주들의 ‘구속’으로부터 자유스러워진 것이 표심의 혼란을 초래했다는 말이다. 이런 양상은 후보를 내지 않은 지역은 더 심해 보이고 같은 지역 연고를 가진 후보들이 경합하는 지역 역시 마찬가지로 보인다. 바로 호남 충청이 더 심하고 영남도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다.

그렇다고 지역 연고로 투표하던 과거의 악습이 후보들이나 유권자의 의식으로부터 아주 뿌리가 뽑혀 그런 것은 아니다. 어쩌면 2촌 형제가 사라졌다면 4촌 형제를 찾고 그마저 없다면 사돈네 8촌이라도 찾아내어 인연을 교감하고 뭔가 상부상조하려는 연고 의식은 아직도 표심 속에 여전히 살아있다. 따라서 과거처럼 정치인들이 부추기고 조장하려든다면 과거의 지역 대결 풍토가 되살아나 재현될 가능성은 얼마든지 상존한다.

실제로 과거에 대한 향수를 떠올리면서 다른 경쟁자에 대한 지역적 몰표는 견제하면서도 자신에 대한 몰표는 은근히 기대하는 모순되고 이기적인 심리가 후보들에게 진하게 작동하고 있음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그렇기에 지역적 연고가 동일한 후보들이 경합하는 지역에서는 특정인에게 가던 기존의 고정 몰표는 분산시키고 이를 통해 자신의 득표력을 높이려 하며, 후보가 나오지 않은 ‘무주공산’ 지역에 가서는 실낱같은 인연이라도 만들어내어 그 지역 연고에 호소하려 애를 쓰는 모습을 허다하게 본다.

말하자면 후보들 모두가 구호는 미래 지향을 외치면서 선거 방식은 과거에의 의존이며 과거로의 퇴행이다. 아무리 새 정치와 정치혁신, 변화를 부르짖는 후보일지라도 이 같은 모순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지역 정서를 이용하려하는 것, 그것은 결단코 필요악이 아니라 필요가 없고 없어져야 할 악인 것이 분명하지만 현실적으로 그것을 뿌리 뽑을 묘약은 없다. 통일이나 되어 땅이 넓어지고 인구가 지금보다 훨신 많아져 지역 패권이 불가능해진다면야 모르지만 말이다.

어떻든 표심이 극심하게 혼란을 겪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면 지역을 가릴 것 없이 팽배한 정치 불신이며 그것이 만들어낸 무소속 후보의 출현이다. 이른바 ‘안철수 현상’이다. 정치 불신만은 지역 편향이 없고 전국적인 현상이므로 안철수 무소속 후보에 대한 지지율은 그 것을 그대로 반영해 그에 대한 지지율이 전국적으로 고르고 높은 분포를 보인다. 더구나 그의 지지율은 고공행진에다 의외로 견고한 추세를 보여준다. 당초에 정당배경이나 정치 조직의 뒷받침이 없는 것이어서 아침 이슬과 같은 것이려니 했었지만 그런 예상은 빗나갔다. 이런 양상에 기성 정치권이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는 것은 더 말할 것이 없다. 당혹감을 감추지 못할 뿐만 아니라 그의 정치 쇄신 구호에 자극받아 경쟁적으로 정치 쇄신과 정당 쇄신책을 쏟아내는 것은 안철수 현상 덕분이다.

그렇지만 안철수 후보의 지지율이 뜬구름 같다는 느낌은 지워지지 않는다. 그의 지지율이 여전히 높긴 하지만 더 치솟음은 멈춘 답보 상태다. 그 때문에 다른 후보들에게 맹렬한 추격의 여유를 주었다. 급기야 그 격차가 오차범위로 좁혀졌다. 특히 야권 단일화의 대상인 문재인 후보의 추격이 무섭다. 대통령에게 전제권력이 주어지지 않는 민주공화정에서의 정치는 필마단기로 할 수 있는 게임이 아니라는 것은 상식이다. 안철수 후보가 필마단기로 혜성처럼 정치판에 등장했지만 현실의 정치 마당에서 그의 뜻을 펴는 정치를 하기 위해서는 역시 정당이라는 정치세력의 구축이 불가피할 수밖에 없다. 국민들이 이 점에 눈이 트이면서 안철수 후보의 지지율은 답보상태를 보였다. 정당의 배경이 없는 무소속 후보의 한계다. 그가 무소속으로 있는 한 그의 지지율이 뜬구름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는 이유 역시 그것이다.

그렇지만 정작 선거판세의 전망을 오리무중으로 만들고 있는 것은 야권 후보의 단일화 여부다. 이 역시 안개 속이다. 이것이 결말이 나야 좀 더 밝은 판세의 전망이 가능해진다. 단일화의 필요성은 공감하고 있는 것 같으나 기술적으로 쉽게 풀리는 일이 아니어서 난감해하는 분위기다. 과연 누가 대통령 후보를 양보할 것인가. 민주통합당이 후보를 양보한다면 당의 존립 명분은 사라진다. 그렇다고 안철수 후보가 입당한다면 그가 정치쇄신을 부르짖으며 무소속 후보로 정치판에 뛰어든 대의가 유명무실해진다. 진퇴양난이다. 설사 단일화를 이루어냈다고 하더라도 모이는 표도 있겠지만 떨어져 나가는 표도 있을 것이므로 어차피 선거판세의 전망이 조기에 밝아지기는 틀린 일이다.

그래서 선거판세가 어지러운 것이 문제라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선거판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건 국민들의 시선은 진정한 구세(救世), 구민(救民)의 참 지도자, 역량 있는 지도자를 얻게 될 것이냐에 가있다는 것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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