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송범석 기자] 우리나라와 터키는 문화적으로 유사한 점이 꽤 많다. 그런데 문화뿐만 아니라 초기 정치적 형태 역시 비슷했다. 가령 초대 대통령의 궤적이 그렇다. 우리나라의 이승만 전 대통령에 대한 명암이 엇갈리듯이 터키 공화국의 초대 대통령인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에 대한 오늘날의 상반된 평가를 받고 있다. 게다가 아타튀르크는 박정희 전 대통령과 유사한 면이 있어서 더욱 주목을 받고 있다.

1915년 군사적 영웅으로 떠오른 아타튀르크는 1919년 터키 독립전쟁의 선봉장이 됐다. 그는 1920년대 초부터 외세와의 전투에서 연이어 인상적인 승리를 거두며 터키를 자주독립 국가로 이끌었다. 그리고 마침내 1923년 민족을 대표하는 새로운 정부, 터키공화국을 건국했다.

우리에게 아타튀르크는 급진적으로 근대화와 서구화를 추진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일부분은 맞다. 그는 대체로 서구의 부국들을 따라잡기 위해 서구의 제도를 조국에 도입했다. 하지만 단순한 모방이 아니라 보편 문명에 참여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그는 유럽의 계몽주의 사상가들처럼 문명을 종교나 계급에 영향 받지 않는 인류의 진보라고 여겼다. 이처럼 아타튀르크는 낙관적인 시각을 가진 인본주의자였지만, 실천에서는 이에 못 미쳤다. 특히 서구인들이 민족적, 인종적 우월감을 드러내던 말년에는 이상도 변질되고 말았다는 평가다.

그는 유럽 문명이 ‘아름다운 시절’을 향유하던 시대에 태어났다. 19세기 말 유럽을 중심으로 한 서방 세계는 평화 속에서 세력을 넓혔고, 번영을 누렸다. 당시 오스만은 600년이 넘는 오랜 역사를 지닌 제국이었고, 그만큼 쇠약해져 있었다. 오스만은 이슬람적이고, 왕조적이고, 중세적인 원칙을 가지고 이었다.

아타튀르크가 대통령으로 등극하자 그런 이 같은 부분을 과감하게 개혁했다. 그는 술탄의 모든 묘지를 포함한 묘역을 폐쇄하고 성직자들을 해임했다. 특히 1925년 12월 26일에는 국제적인 기독교력과 하루를 24시간으로 나누는 양력 실시 법안이 의회를 통과했다. 이는 편의를 위해 시행되던 이슬람 음력과 일출 이후 다섯 차례의 기도 시간을 기준으로 시간을 계산하던 방식을 대체한 것이다.

이즈음 그는 대중들을 향해 미래를 향해 나아가자고 강조했다.

“모든 나라의 운명은 문명을 건설하는 능력에 달려있습니다. 문명화에 성공하려면 모든 것을 바꿔야 합니다. 수백년 전의 사고방식을 고수하고 과거에 집착해서는 안 됩니다.”

그는 이처럼 개혁을 진두지휘했지만 그러나 말년엔 독재자의 이미지를 스스로 구축해갔다. 특히 그는 자신이 이룬 것들에 대해 자기 자신은 어떤 생각을 지니고 있는지를 꼭 전하고 싶어하는 인물이었다. 심지어 자기가 한 연설을 모든 학교에서 배우고 외우도록 지시하기까지 했다.

그럼에도 터키인들이 그를 독재자보다 국부로 인식하는 가장 큰 이유는 그의 애국심과 민족애가 남달랐기 때문이다. 나아가 그는 민족의 문화를 믿고 민족의 저력을 믿었다. 무엇보다 철저히 외세 의존적인 생각을 배제했다. 다만 타 민족이 갖추고 있던 좋은 점만은 흡수하려고 노력했다. 때문에 그는 터키인들 뿐 아니고 세계의 모든 역사가들이 추앙하는 유일한 제3세계의 지도자로 남아있다.

이 책은 외세의 압력에도 굴복하지 않고 투르크 민족의 나라를 건설했으며, 이 과정에서 같은 처지의 여러 나라들에게 독립하는 방법을 알려준 아타튀르크의 애국심과 민족애에 초점을 맞췄다. 아울러 이스탄불 출신의 영국인 작가 앤드류 망고는 케말 아타튀르크의 영웅적인 면모는 물론, 나약하고 평범한 한 인간으로서의 삶의 모습도 조명했다.

앤드류 망고 지음 / 애플미디어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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