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칼럼] NLL에 관한 불편한 진실과 한심한 논란
[국방칼럼] NLL에 관한 불편한 진실과 한심한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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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순휘 호국문화문학협회 사무총장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국가에는 제왕이, 가정에는 가장이 엉뚱하면 백성과 가족이 고달픈 것이다. 우리도 대통령 한 사람 잘못 선택하면 그의 임기 내내 여러 가지 엉뚱한 정치행위로 시달렸던 체험이 여러 차례 있었다. 그만큼 훌륭한 지도자를 만난다는 것은 그 시대의 복이라고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아무튼 작금의 NLL(Nothern Limit Line;북방한계선)에 관련한 문제에는 불편한 진실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우선 그 근본적인 문제의 시발점은 6.25전쟁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할 것이다. 북한 김일성의 불법남침으로 시작된 1950년 6월 25일부터 1953년 7월 27일까지의 6.25전쟁이 바로 NLL을 태생시킨 배경과 원인이라고 볼 수 있다.

결과적으로 1953년 7월 27일 전쟁의 당사국이었던 유엔군 측과 중공군 측 그리고 북한군 측이 휴전협정에 서명을 하면서 정전(停戰)이 되었는데 이 역사적인 휴전조약에 한국군은 대표를 철수시키면서 끝내 서명을 하지 않고 1953년 7월 27일 22시에 휴전협정이 발효됐다.

당시 7월 28일 아침부터 총성이 멎은 휴전선으로부터 철수를 시작했고, 군사분계선(MDL;Military Demarcation Line)과 비무장지대에 관한 공산 측과 유엔군 측과의 합의에 따라 각기 2km씩 철수해 비무장지대(DMZ;Demilitarized Zone)가 설정됐다. 비무장지대는 우발적인 적대행위로써 무장충돌을 방지하기 위한 완충지대로써 의미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군사분계선이 육지를 중점적으로 설정이 되었다는 데 문제의 소지가 있었으나 당시에는 양측이 모두 휴전 그 자체를 군사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더 중대하게 고려하였기 때문에 해양군사분계선에 대하여는 분명한 명시를 하지 않았던 것으로 사료된다.

<휴전협정 제1조 군사분계선과 비무장지대 제1항, 제2항, 제3항 및 제2조 정화 및 정전의 구체적 조치 제13항(ㄴ)>에도 군사분계선의 위치는 선으로 명확히 식별을 했고, 한강하구에 대해서는 한쪽 강안이 일방의 통제하에 있으면 쌍방의 민간선박 항행을 위해 중립제대를 개방하도록 하였는데 사실 그곳은 사실상 상호가 적대행위가 발생하기가 어려운 곳이었다.

문제는 해상에서의 군사분계선인데 이것을 유엔군 측과 공산 측 모두 잊었던 개연성이 있다는 것이다. 사실상 북한 공군과 해군은 개전과 동시에 유엔군이 참전하면서 궤멸상태로 3년간 그 존재조차 유명무실했으며, 휴전 당시에는 군사적 위협으로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물론 상기 휴전협정상에 연해제도(沿海諸島)에 관하여 협정이 발효되는 시점에 비록 일방이 점령하고 있더라도 1950년 6월 24일 상대방이 통제하고 있던 섬들에 대해서는 상대방의 관할권을 인정하였다.

단, 백령도, 대청도, 소청도, 연평도 및 우도(서해5도)를 제외한다는 것을 분명히 했으며, 유엔군 군사통제권을 명시하였다. 그런데 이 서해5도와 관련한 해상군사분계선을 휴전협정에 쌍방이 누락함으로써 훗날 군사충돌의 시비거리가 된 것은 안타깝지만 유엔군사령부에서 한국 해군의 북진한계선을 내부적으로 설정할 필요가 있어서 지금의 NLL을 결정해주었고, 이 선을 북한도 특별한 항의나 재협상요구없이 수용해 서해상의 군사적 충돌을 방지하는 남북간의 해상군사분계선으로 자리잡아 왔다.

그러한 북한의 NLL수용의 증거로 1959년 11월 30일 북한의 <조선중앙연감>에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해상 군사분계선으로 표시하여 발간하였다. 그 후 잘 지내오다가 40년이 지난 1999년 6월 11일 북한이 상호주의적인 원칙을 깨고 일방적으로 북한식의 해상군사분계선을 불법선포하면서 서해상의 정전위반행위뿐만 아니라 군사적인 도발의 빌미로 삼고 남북 간의 무력충돌을 일으켜서 북한 내부통치수단으로 악용을 하고 있는 것은 참으로 치졸한 통치행위일 뿐만 아니라 그들이 입만 열면 떠벌이는 ‘동포’에 대한 최소한의 도의적 행위도 아닌 그야말로 야만적인 침략행위로서 우리의 응징대상에 불과한 것이다.

서해에서의 도발은 날이 갈수록 증가추세에 있으며, 제1연평해전이 1999년 6월 15일 발생한 의도된 도발이라는 것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적반하장(賊反荷杖)은 그 분수를 넘어서 1991년 12월 13일 서울에서 체결한 <남북기본합의서> 제2장에서 ‘남과 북의 불가침 경계선과 구역은 1953년 7월 27일자 군사정전에 관한 협정에 규정된 군사분계선과 지금까지 쌍방이 관할하여온 구역으로 한다. (11조) 남과 북의 지상불가침 경계선과 구역은 군사정전에 관한 협정에 규정한 군사분계선과 지금까지 쌍방이 관할하여온 구역으로 한다. (부속합의서 9조) 남과 북의 해상불가침 경계선은 앞으로 계속 협의한다. 해상불가침 구역은 해상불가침 경계선이 확정될 때까지 쌍방이 지금까지 관할하여온 구역으로 한다. (부속합의서 10조)’ 이렇게 합의를 해놓고 지금처럼 NLL을 침범하고 도발을 해온다면 결코 좌시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6.25전쟁 당시 이승만대통령이 휴전을 반대하면서 단독으로라도 통일을 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가졌으며, 남북 간에 새로운 분단이 이처럼 오래 갈 줄을 생각지 않았던 감성적인 분위기가 있었다. 물론 이 대통령의 휴전서명 불참결정에 대하여 국제법상으로나 실정법상으로 한국의 전쟁당사국으로서의 권리와 지위에 일부 부정적인 측면이 없지 않으나 당시 유엔군의 일원으로 참전한 전쟁당사국의 입장과 모든 전쟁기록에 근거한 역사적 사실(Facts)을 외면하고 한국정부에 대한 적대행위를 계속한다는 것은 NLL의 문제가 아니라 근본적인 북한의 남조선 적화전략이라는 관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더욱이 서해5도를 포기하라는 식의 일방적인 북한의 해상군사분계선은 절대 용납할 수 없는 국방의 최전선이다.

최근에 논란이 되고 있는 평화어로공동구역문제는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모르는 한심한 작태로서 더 중요한 것은 북한의 핵개발의 투명한 포기와 탄도미사일 생산중단과 화생방전 폐기 등을 포함한 대남적화전략의 근본 틀의 변화가 거론되어야 하는데 지엽적이고 쇼맨쉽적인 공동어로수역문제에 매달리는 모습은 본질이 왜곡된 바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지금 그 문제로 남남갈등 할 것이 아니라 북한에게 기본합의서대로 하면서 협의를 하자고 왜 하지 않을까?

지금 남북 간에 군사적인 갈등의 본질은 그게 아니라 상호신뢰하에 군비를 축소하고, 진정한 남북군사협력시스템의 구축인 것이다. 북한이 우선 변해야 우리가 변하고 세계가 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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