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송범석 기자] “하늘이 테무친을 택한 것은 그에게 꿈과 이상이 있었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기꺼이 귀족의 신분을 버리고 하층 유목민들과 뜻을 같이한 데 있다고 할 수 있다.” (p533~534)

사람들은 ‘칭기즈칸’을 말하면 으레 ‘야만적인 군주’ ‘사람들을 무자비하게 살육하는 사람’ ‘기마 군단으로 세계를 정복한 자’ 등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칭기즈칸이 걸어온 궤적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가 정복 군주의 이미지와 달리 영적으로 대단히 심지가 깊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실제로 그는 자신을 벌레보다 낮출 줄 알았으며, 전쟁터에서는 병사들과 똑같이 식사하고, 똑같은 모포를 덮고 이슬을 맞으며 생사고락을 함께했다. 약속을 하면 반드시 지켰고, 병사들과 백성들에게 대칸의 칭호 대신 자신의 이름을 부르게 했다.

이 책은 이처럼 칭기즈칸의 새로운 면모를 밝히고 있다. 오랫동안 동북아시아 역사를 연구해온 저자는 몽골 초원을 직접 답사하며 칭기즈칸의 탄생과 성장, 발자취와 흔적 등을 낱낱이 기록했다. 이를 통해 분열된 몽골 고원을 통일하고 세계 제국 건설의 정신적, 물질적 토대를 닦은 칭기즈칸 리더십의 비밀을 밝히고자 하였다.

아울러 저자가 직접 찍은 250여 장의 사진과 지도는 쉽게 접근할 수 없는 몽골 초원의 풍광을 생생하게 전해준다.

저자에 따르면 칭기즈칸은 순박하고 정직한 하층 유목민들을 통해 인간의 참된 모습이 무엇인지 깨닫고 감격했으며, 그들을 ‘평생 동지’로 삼았다. 이런 맥락에서 칭기즈칸을 한낱 전쟁 영웅이나 정복 군주로 치부하는 것은 그의 본모습을 놓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칭기즈칸은 자신을 따르는 유목민들에게 믿음과 신뢰를 잃어버린 자는 새 시대의 주인공이 될 수 없다고 역설했다. 그리고 믿음과 신뢰를 지킨 자는 적군일지라도 포상했으며, 믿음과 신뢰를 저버린 자들은 아군일지라도 반드시 징벌했다.

사실 칭기즈칸 이전의 몽골 사람들은 부족이나 씨족 단위로 움직였다. 그리고 각 부족이나 씨족의 귀족들이 그들을 지배했다. 그런데 몽골 고원의 패권을 차지하려는 치열한 제로섬게임 과정에서 수많은 부족들과 씨족들이 힘센 부족이나 씨족의 예속민으로 전락했다. 그것은 노예의 삶이나 다름없었다.

오랫동안 그 폐악을 지켜봐오던 칭기즈칸은 몽골 고원에서 귀족과 평민, 예속민의 차별을 영원히 없애버렸다. 몽골을 지배했던 상위 1%의 귀족과 그에 예속됐던 나머지 99%의 몽골 사람들 사이의 경계가 사라진 것이다. 그것은 혁명이었다.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는 것을 만천하에 선포한 사건이기 때문이다. 당시의 모든 나라들이 봉건 체제를 고수하고 있을 때, 신분제도를 철폐하고 민주화의 이념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칭기즈칸의 혜안은 남다르다.

또한 그는 사람들이 자신의 능력을 마음껏 펼치고, 또 그것을 인정해주는 사회를 만들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케식텐’이라는 제도를 운용했다. 케식텐은 각 분야의 최고 전문가를 칭기즈칸의 호위 무사로 뽑아 그들로 하여금 각 분야의 일을 하게 하는 한편 젊은이들에게 노하우를 전수함으로써 보다 많은 사람들이 각 분야의 전문가가 되게 하는 시스템이었다.

케식텐으로 선발된 이들은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창조적으로 일할 수 있었으며, 곧 칭기즈칸의 가장 탄탄한 조직이 됐다.

한편 이 책에서 저자는 칭기즈칸에 대한 새로운 조명과 함께 고구려와 몽골이 바이칼의 코리족으로부터 기원한 두 민족임을 여러 가지 사실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백두산의 옛 이름인 ‘불함산’이 바이칼의 길승지 바르코진에 있는 불함산(보르칸 칼돈 산)에서 유래했을 것이란 사실, 몽골족의 시조인 알랑 고아의 신화와 고구려 유화 부인과 주몽 신화가 놀랍도록 일치한다는 사실도 제시한다.

서정록 지음 / 학고재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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