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보수동 아련한 추억 사고파는 ‘힐링 장터’
[천지일보=이현정 기자] 영화의 바다가 넘실거리는 부산에서 BIFF광장이 있는 국제시장을 따라 보수동 쪽으로 올라가면 책 냄새가 물씬 풍기는 책방골목이 나타난다. 한국전쟁 때 형성된 보수동 책방골목은 전국에서 유일하게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 헌책방 골목이다.
지난 7일 기자가 찾은 보수동 책방골목에서는 ‘책은 살아야 한다’는 슬로건 아래 다양한 문화행사가 진행됐다.
트럼펫과 색소폰, 드럼이 환상조합을 이뤄 라이브 재즈 공연을 선보였고 보수동 책방골목엔 어느새 젊은이들과 중장년층이 함께 소통하며 축제를 즐기고 있었다.
현장을 찾은 기자는 한쪽에서 흘러나오는 재즈음악을 들으며 저마다 자신의 컬렉션처럼 다양함을 뽐내고 있는 50여 개의 헌책방을 둘러보았다.
각각의 책방을 천천히 들여다보면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세상에, 이 책이 여기 있었다니!’라는 놀라움이다. 1910년대에 출간된 소설책부터 국내에선 찾아보기도 어려운 전문원서 등이 보수동 책방골목에 나란히 진열돼 있었기 때문이다. 한 곳이 아닌 보수동 책방골목 서점 대부분이 ‘찾고 싶었고 갖고 싶었던 그 책’들로 가득했다.
보수동 책방골목은 한국전쟁 이후 부산에 모여든 피난민 중 손정린 씨 부부가 보수동 사거리 건물 처마 밑에서 박스를 깔고 미군부대에서 나온 헌잡지나 만화, 고물상에서 나온 각종 헌책을 모아 노점을 시작하면서 지금의 모습이 형성됐다. 전쟁으로 국민 대다수가 힘들던 시절, 서적 하나 구매하는 것도 어렵던 당시에 보수동 책방골목은 그야말로 보물창고였다.
또 신학기가 되면 책을 내다 팔거나 살수도 있었고, 피난민들을 위한 만남의 장소로도 활용됐다. 젊은 청춘들의 데이트 코스이기도 했던 보수동 책방골목은 60년이 지나도 본래의 모습을 머금고 여전히 헌책과 추억을 선사하고 있다.
골목을 모두 답사하고 사고 싶었던 책을 구매하기 위해 들른 어느 책방에서 ‘아뿔싸!’라는 말이 절로 나오고 말았다. 점찍어 뒀던 책이 금세 팔려버렸기 때문이다.
아쉬움에 애꿎은 주인에게 넋두리를 풀어놓던 기자는 아쉬움을 뒤로 하고 다른 책으로 눈을 돌렸다. 부친의 책방을 물려받았다는 젊은 사장은 자신만의 컬렉션으로 헌책방을 꾸며 놨다. 전문서적이 주를 이르고 간간이 80만 원대에 이르는 고서까지 보유하고 있는 젊은 사장은 컴퓨터처럼 손님이 원하는 책을 수천 권이 넘는 책 사이에서 척척 찾아냈다.
그의 모습을 보며 ‘책은 살아야 한다’라는 행사 슬로건이 다시 떠올랐다. 우리네 추억이자 문화유산인 헌책의 가치를 젊은 사장의 열정을 통해 느끼게 된 것이다.
보수동 책방골목은 참고서부터 아동도서, 대학교재, 소설책, 만화책, 각종 잡지와 고서적 등을 담고 있는 길 위의 보물창고다. 여기다 추억을 덤으로 팔고 있어 세상 어디에도 보기 드문 ‘힐링 장터’가 된다. 더불어 보수동 책방골목은 느긋하게 걷고 추억에 잠겨보는 시간을 통해 현대인에게 힐링의 시간을 선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