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영훈 한국산업개발연구원(KID) 원장 (사진=이승연 기자) ⓒ천지일보(뉴스천지)

쓰레기통에서 피어 올린 장미꽃, 기적 뒤 숨은 이야기
파독 광부·간호사 피눈물이 경제성장 ‘종자돈’ 돼
망국 백년 지나고도 분단문제 미극복 ‘부끄러운 일’

[천지일보=송태복 기자] G20 의장국, 세계수출 7위 경제대국이 된 대한민국은 불과 50년 전만 해도 ‘쓰레기통’이라는 굴욕을 당했다.

1955년 한국을 돕기 위해 파견된 유엔한국재건위원회(UNKRA)의 인도 대표 메논은 ‘쓰레기통에서 과연 장미꽃이 피겠는가?’라고 묻기도 했다. ‘런던타임스’ 사이몬즈 기자도 같은 표현을 헤드라인에 올렸다. 그러나 한국은 ‘쓰레기통’에서 ‘장미꽃’을 피워냈다.

세계인들은 한국이 피워낸 이 장미꽃을 ‘한강의 기적’이라 부른다.

대한민국 경제학 박사 1호, 백영훈(83) 한국산업개발연구원장의 눈은 인터뷰 중간중간 눈물로 반짝였다. 일제 치하에 태어나, 고려대학교에 입학한 그해에 6.25를 겪었다. 전란 후 무너진 조국을 일으키기 위해 독일 유학에 나섰던 그의 삶은 파란만장이란 표현으로는 모자랐다. 역사의 한 획을 긋고 새로운 100년을 내다보며 통일 한반도를 준비 중인 백 원장을 지난 22일 서울 서초동 KID 집무실에서 만났다.

휴전이 선언된 후 이승만 정부는 인재를 육성하기 위해 국비유학생을 선발했다. 백 원장은 당시 18대 1의 경쟁을 뚫고 국비유학생으로 선발됐다. 모두가 미국을 택할 때 그는 유일하게 독일을 택했다. ‘라인강의 기적’을 배워 조국을 일으키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우리나라 경제학 박사 1호가 되어 고국에 돌아온 그는 스승의 요청으로 중앙대학교 교수로 재직했다. 그러다 군사정권이 들어서면서 병역기피자 1호로 낙인찍혀 징집됐다.

논산 훈련소에서 3개월여가 지난 어느 날 군부에서 그를 남산 중앙정보부로 데려갔다. 군사정권에 대해 정신교육을 받은 후 그에게 내려진 첫 번째 과제는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만들라는 것이었다. 이유는 독일에 경제지원을 받기 위해서였다.

그후 독일어에 능통했던 백 원장은 상공부 장관 특별보좌관으로 임명돼 경제원조를 받기 위해 독일로 급파됐다. 독일에 도착한 그는 독일 친구들과 대사를 찾아갔지만, 에르하르트 경제장관을 만날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그는 답답한 마음으로 매일 새벽 스승 포크스 교수를 찾아가 “교수님, 조국이 나를 보냈습니다. 제발 도와주십시오”라며 울부짖었다.

그러던 중 독일 노동부에 근무하던 백 원장의 친구가 제안한 것이 바로 한국의 광부 5000명과 간호사 2000명 파독이었다. 1961년 한국의 광부와 간호사가 독일에 도착하자 그들의 임금을 담보로 3000만 달러의 경제 원조가 이뤄졌다.

파독 광부와 간호사의 임금은 그렇게 대한민국 경제의 종자돈이 됐다. 피 같은 임금을 담보로 받은 차관을 3년 안에 갚기 위해선 당장 수출 가능한 품목을 찾아야 했다.

백 원장이 세계 백화점을 돌며 처음 발견한 아이템이 바로 가발이었다. 보고를 받은 박 대통령은 다음날 바로 전국에 단발령을 내렸다. 공장이 만들어지고, 일자리가 창출됐다. 손재주 좋은 한국인이 만든 가발은 불티나게 팔렸다.

뒤이어 런던백화점에서 발견한 아이템이 밍크 목도리였다. ‘쥐의 머리만 자르면 밍크와 똑같다’는 의견을 받아들여 대통령께 보고했다. 다음날 바로 전국에 ‘쥐잡기 운동’이 시작됐다. 마침내 수출 1억 달러라는 기적을 이룬 1964년 11월 30일, 온 국민은 ‘해냈다’는 자긍심으로 충만했다. 그리고 그 역사의 중심에 백 원장이 있었다.

지하 1000미터 갱도에서 목숨 걸고 일하는 한국 광부들과, 희생적인 간호사들의 모습이 독일 언론에 방송되며 독일 국민을 감동시켰다. 1964년 12월 5일 박정희 대통령은 뤼프케 대통령의 초청을 받아 독일에 도착했다.

12월 9일 박 대통령은 에르하르트 수상과 정상회담 중 “각하, 군인은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도와주십시오”라며 경제원조를 눈물로 호소했고, 에르하르트 수상은 박 대통령의 눈물을 닦아주며 원조를 약속했다.

독일은 회담 후 담보가 필요 없는 재정 차관 2억 5000만 마르크(약 4770만 달러)를 한국 정부에 제공하기로 결정했다. ‘아우토반을 적신 대통령의 눈물’을 담은 당시 현장 사진은 백 원장의 집무실 한켠에 자리하고 있다.

다음날 파독 광부들이 일하고 있는 광산을 찾은 박 대통령은 준비한 연설문을 끝내 읽지 못했다. 시커먼 얼굴에 눈만 동그란 이들이 이역만리에서 찾아온 대통령 내외를 맞았다. 한복을 차려입은 간호사들도 보였다. 애국가가 울려퍼지자 모두가 흐느꼈다.

육영수 여사를 붙잡고 ‘어머니, 가지 마세요’라며 매달리는 간호사들과 ‘못 간다’며 통곡하는 박 대통령 그리고 그를 달래는 에르하르트 수상 사이에서 백 원장은 통역을 하며 함께 눈물을 훔쳤다.

그토록 가난했던 나라 대한민국이 50년이 흘러 세계 석학들의 연구 대상이 됐다.

선진국도 150년이 걸려 일군 선진화를 대한민국은 불과 50년 만에 이뤘다. 백 원장이 있던 독일 대학에도 한국학과가 생겼다. 세계 석학들이 발견한 대한민국의 저력은 무엇일까.

백 원장은 지난해 일본 도쿄에서 열린 강연에서 폴 케네디가 “21세기는 동북아시아 시대이며, 21세기 리더는 일본도 중국도 아닌 한국(Never Japan, never China, only Korea)”이라고 말해 깜짝 놀랐다고 전했다.

폴 케네디는 대한민국이 21세기 리더인 이유로 ▲사회적 도덕성 ▲문화의 혼 ▲자유민주주의 역량을 제시했다. 폴 케네디는 사회적 도덕성의 요건으로 종교적 도덕성을 들었다. 일본은 잡신 국가이며, 중국도 종교성이 빈약하나, 한국은 불교․기독교․천주교 등 정체성 있는 종교가 뿌리를 내리고 있어, 종교에 기반한 도덕성을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우리 문화에는 혼이 담겨있다고 했다. 여기에 일본은 군주주의, 중국은 사회주의에 기초하나 우리나라는 자유민주주의가 정착해 세계 리더의 요건을 모두 갖췄다는 것이다.

백 원장은 “세계적인 사가(史家)들이 한민족이 겪었던 지난 100년을 지구상의 가장 비극적인 역사로 규정하고 있다. 지난 100년 동안 무려 500만 명의 한민족이 비극적 최후를 맞았다. 미국의 남북전쟁 당시 사망자가 120만 명이라는 사실을 고려해 봐도 한국전쟁이 얼마나 비참한 전쟁인지 알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국방위산업학회 초대 회장을 지내기도 한 백 원장의 요즘 관심사는 평화통일이다. 그는 망국 100년이 지나고 새로운 100년이 시작됐는데도 여전히 분단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몇 년 전 독일 대사를 만났을 때 곧 닥칠 통일을 준비하지 않는 한국에 대한 우려를 들은 후 통일을 위해 무엇을 할지 검토하고 고민했다. 그 결과 백 원장은 통일기금 조성에 힘을 쏟고 있다. 통일기금 조성을 피력한 뒤 그 성과가 뚜렷이 나타난 곳이 고흥이다.

“3년 전 내 강의를 들은 고흥의 모 교장 선생님이 주축이 돼 고흥 군민들이 담배‧커피 값을 모아 통일기금 3200만 원을 모았습니다.” 마음으로 통일기금을 조성한 고흥 군민에 대한 보답으로 그는 오는 11월 2일 고흥을 ‘통일기금 성지’로 선포할 계획이다.

백 원장은 모든 국민이 통일의 필요성을 인식해야 통일을 기쁨으로 맞이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독일과 대한민국의 평화의 다리가 되었던 백 원장, 그의 풍부한 경험과 혜안이 이제 한반도 평화통일의 촉매제가 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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