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혜진 숙명가야금연주단 예술감독(사진=이현정 기자). ⓒ천지일보(뉴스천지)

“가야금 연주 필요한 곳이면 어디든지 가고파”
음악실서 본 가야금에 빠져 맺은 인연
숙가연 예술감독 맡아 새로운 길 개척

[천지일보=김성희 기자] 기차를 타고 떠난 여행길. 종착역에 도착하면 비틀스의 ‘Let It Be’가 흘러나온다. 익숙한 멜로디지만 그 음색은 서양 악기가 아닌 우리네 가야금 선율이다. 천오백 년이나 되는 역사를 가진 가야금이 현대의 음악과 어우러져 우리 삶에 스며들어 있다.

이 곡은 숙명가야금연주단(숙가연)을대중에게 알리는 교두보 역할을 했다. 덕분에 이들 음악은 국악에 관심이 있는 이들뿐 아니라 대중에게도 널리 알려져 사랑을 받고 있다.

이 숙가연을 이끌고 있는 예술감독이 바로 숙명여자대학교 전통문화예술대학원 송혜진 교수다. 송 교수가 숙가연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1999년 창단 당시 고문 역할을 하면서다.

“대학원 교수로 활동하던 저에게 갑작스럽게 숙가연 예술감독직이 맡겨졌어요.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해야 하는 일이었기 때문에 책임감을 갖고 시작했죠.”

송 교수는 전통문화가 현대에 살아남아 미래의 전통이 되게 하고 싶다고 말한다. 그런 그의 생각을 이루기 위해 여러 가지 일을 하던 중 숙가연을 맡게 됐고 그 생각을 연주단에 녹여 내고 있다.

“과거에 비해 오늘날 한국 전통문화는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어요. 그래서 전통문화를 지키기 위해 무언가를 한다는 것이 노력한 만큼 효과를 보이진 않죠. 하지만 숙가연을 통해 ‘저 사람만큼은 다르구나’라는 말은 듣고 있는 것 같아 다행스럽기도 해요.”

숙가연 하면 사람들은 캐논퍼포먼스나 비틀스의 음악을 떠올린다. 하지만 대중이 알고 있는 것보다 숙가연의 활동 영역은 넓다. 대중성도 중요하지만 숙가연만이 할 수 있는 음악세계를 펼치고 싶다는 것이 송 교수가 숙가연을 이끌고 있는 방향성이다.

“비틀스 음악 등을 통해 숙가연이 많이 알려지긴 했죠. 하지만 이를 모방한 많은 팀도 생겨났어요. 숙가연이 앞으로도 싸이 노래와 같은 대중성 있는 음악을 할 수는 있지만 그것만 하는 것은 의미가 없어요. 다른 팀과 차별성이 있어야 하죠.”

송 교수는 가야금 음악이 쓰일 수 있는 곳, 필요로 하는 대상을 찾아가고 싶다고 말한다. 가야금 음악이 존재할 수 있는 곳을 찾아가는 것, 즉 현대에서 들을 수 있는 음악을 만들고 싶다는 것이다.

그가 가야금을 처음 접한 건 학생 시절 학교 음악실에서다.

“저는 음악을 좋아하는 평범한 학생이었어요. 어느 날 음악실에 들어갔는데 가야금이 놓여 있었죠. 생전 처음 본 가야금에 호기심이 생겨 배우기 시작했고 전공까지 하게 됐어요.”

대학에서 가야금을 전공한 그는 남들보다 뒤늦게 시작한 터라 연주 재능이 부족한 것을 알았다. 주변 사람들은 그를 보며 ‘왜 가야금을 공부하느냐’며 비웃기도 했다. 이 좋은 가야금을 몰라보는 사람들에게 오기가 생겼다. 가야금에 대해 제대로 알려주고 싶어 그는 학자의 길을 걷게 됐다.

“현대에는 가야금을 곡 중심으로만 보는 경향이 있어요. 이 때문에 역사‧문화적으로 얼마나 중요한지는 증거를 들어 설명해 줄 사람이 없었어요. 그래서 한국문화로써 음악의 관점에서 가야금에 대해 공부하게 됐죠.”

주업이 학자인 그가 숙가연 예술감독직을 맡으면서 우려의 목소리도 컸다. 예술가가 아닌 학자가 공연단을 이끌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송 교수는 남들이 자신의 단점이라 여기는 부분을 장점으로 활용해냈다.

“숙가연이 한 사람의 예술적 성향을 담는 것은 원치 않아요. 제공자의 입장에서가 아닌 향유자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원하는 것을 제공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죠. 제가 예술가가 아니기에 오히려 객관적으로 듣는 이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함께 소통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쓸모 있는 가야금 음악을 보여주는 것이 목표라고 말하는 송 교수의 고민 끝에 나온 공연이 태교콘서트 ‘달콤한 하품’이다. 과거 궁중에서 가야금과 거문고로 태교를 했던 것을 알게 된 그가 태중 아이와 부모를 위해 기획한 공연이다.

“생명을 위해 가야금 음악을 들려주는 것은 숙가연에게도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공연이 횟수를 거듭하면서 반응도 좋아 10월 중에는 음반도 나올 예정이고요. 숙가연의 메인아이템으로 키우고 싶은 욕심이 납니다.”

이 밖에도 송 교수는 국악 교육을 위해 어린이를 대상으로 공연을 준비하고 있다. 지금까지 쌓은 공연 노하우를 바탕으로 내년 2월경 동화책을 기반으로 한 음악극 형태의 공연을 올릴 예정이다.

송 교수는 아이들이 ‘브레멘 음악대’ 공연을 통해 클래식과 악기를 접하고 배울 수 있었던 것처럼 숙가연의 공연을 통해 국악과 국악기를 접할 수 있길 기대했다.

“숙가연은 내가 하고자 했던 일도 아니고 예상했던 일도 아니에요. 하지만 삶을 살아가면서 주어진 한 부분이기 때문에 열심히 하는 거예요. 우리가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선택할 수 있는 일이 아니듯 숙가연이 저에게 그래요.”

숙가연 예술감독직이 선택에 의한 것이 아닌 당연한 삶의 부분이라고 말하는 그의 모습에서 든든함을 느꼈다. 송혜진 교수와 숙가연이 들려주는 가야금 선율을 통해 우리 모두가 문화를 공유하고 새로운 전통을 만들어 나갈 수 있기를 기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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