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예부터 참으로 우여곡절이 많았다. 그래서 응어리진 질곡의 역사를 가진 한(恨)이 많은 민족이라 흔히들 말하고 있다. 그러한 한 많은 역사는 언제나 끝이 오려나 하는 마음과 함께 늘 우리의 소망이 되고 바람이 되어 오늘날까지 이어져 왔다. 또 그러한 소망과 바람은 우리의 사상이 되고 문화가 되어 오늘이 있게 한 ‘이김의 원천’이 돼 왔다.

비근한 예로 우리의 문학은 우리를 힘들게 하는 악을 배척하고 선을 갈망하는데서 오는 ‘권선징악(勸善懲惡)’적 요소가 늘 소재가 돼 왔으며, 지금은 힘들고 슬프고 괴롭지만 이기고 나면 언젠가 좋은 일이 있을 거라는 희망적 메시지를 담은 ‘해피엔딩’적 요소가 주를 이루고 있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을 것이다.

우리의 역사를 보면 이처럼 늘 힘들고 고단한 삶의 연속이라 할지라도 언급한 바대로 희망과 소망을 불어 넣어주며 백성들과 하나 된 시대마다의 정신적 지주가 존재했다는 역사를 추억해 볼 수 있다.

힘든 시대를 살아갈 때 과연 백성의 마음을 헤아리며 흩어진 마음을 하나로 묶고 내일의 희망과 용기를 잃지 않게 했던 선각자(先覺者)들은 역시 영성을 가진 종교인이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는 우리에겐 누구에게나 잠재된 종교성이 있기 때문이다. 힘들고 어려울수록 우리의 내면을 주관하는 종교에 의지하고 싶은 우리 인간의 약한 본성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어떠한 극한 상황에 처하면 반드시 그 본성인 종교성에 귀의(歸依)하게 돼 있다. 그래서 시대마다의 곤란한 때엔 언제나 그 시대의 정신적 지주인 종교 지도자에 의지해 왔던 것이다. 그리고 실제 그 종교 지도자는 백성들의 어버이가 되고 선생이 되어 곤란한 시대를 함께 극복해 낼 수 있었던 것이 바로 우리의 역사다.

한마디로 곤란한 때를 맞게 한 장본인은 당 시대를 지배하던 지도자 내지 위정자들이요, 곤란한 때를 벗어나게 한 장본인은 백성들과 함께 고난을 같이한 영적 지도자였다는 역사적 진실이 오늘의 우리에게 분명히 교훈하고 있다.

지나온 역사 속에서 그 예는 헤아릴 수 없이 많겠지만 가까운 근대 역사 속에서 가장 치욕스런 때를 만나 민족과 백성에게 눈을 뜨게 하고 힘과 용기와 희망을 줬던 것은 바로 3․1운동이다.

이때 3․1독립선언서를 통해 이 민족이 자주독립국가이며, 장래에 새로운 새 세상이 도래할 것임을 천명한 선언문을 낭독한 민족의 지도자 33人도 종파를 초월한 종교지도자들이었음을 우리는 분명히 기억하고 있으며, 당시 암울한 시대의 백성들은 이들을 믿고 따랐던 것이다. 그러나 당시 33人은 스스로를 종교지도자들이라 말하지 않았고, 백성들도 이들을 종교지도자들이라 부르지 않았다.

여기서 우리가 깨달아야 하는 것은 시대마다 찾아온 위기의 원인은 과연 무엇이었을까를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한다. 그것은 명백한 국론 분열이다. 또 국론이 분열될 수밖에 없는 원인은 백성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아는 지도자 즉, 구심점이 없거나 미약했기 때문에 일어났던 역사적 진실임을 다시 한번 그 역사를 통해 배운다.

이제 말하고자 함은 오늘의 현실을 보자는 것이다.

주변국들은 민족주의와 우경화로 회귀(回歸)하며 군비증강에 열을 올리고 있으며, 세계는 경제공황상태 직전의 어지러운 때를 만나고 있음에도, 국내적으론 내적 외적 대응책과 정책은 실종되고 나라와 백성은 방향을 잃고 있음에도 이전투구와 당쟁 그리고 권력쟁취에만 혈안이 돼 있는 정치 현실을 정확히 목도하고 있는 것이다.

경제는 괄목할 정도로 성장했다지만 백성들은 늘 고단하고 힘이 든다. 그래서 백성들은 어딘가에 있을 이상향을 그리워한다. 그곳으로 날 인도해 줄 인도자를 찾고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백성들의 마음을 하나로 묶어 희망의 곳으로 인도할 정신적 지도자는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는 기막힌 현실이 안타깝고 슬프기만 하다.

오늘날도 그 언제처럼 종교는 없지 않다. 그러나 종교인은 찾아 볼 수 없다. 세상보다 못한 종교가 돼 버린 지는 이미 오래다. 이들에게선 회복의 기미가 도저히 보이지 않는다. 그 어느 종파도 다르지 않겠지만 우선 이 시대에 가장 종교가 돈이 되고 명예가 되고 권력화 돼 있는 기독교만 보자.

다문화·다종교 시대를 살아가는 나라에서 종교의 가장 기본적 가치인 ‘상생(相生)’은 사라졌고 서로 물고 뜯는 사투(死鬪)의 현장으로 전락해 버렸다.

자칭 정통이라 하지만 갈라지고 분열되어 서로 이단이라 헐뜯는 난맥상은 기독교를 넘어 종교계 나아가 사회에 지탄과 함께 조롱거리가 돼 버렸다.

이처럼 종교든 사회든 혼란의 극치를 달리고 있는 마당에서 우리의 정신적 지주가 될 만한 영적 지도자 하나 없는 세상에서 백성들은 어디로 가야 하는가. 대답할 이가 있으면 대답을 해야 할 것이다. 그래도 늘 그랬듯이 또 ‘해피엔딩’이라 했듯이 하늘은 이 민족을 버리지 않을 것이란 믿음만은 버리지 말아야 할 것이다. 오늘의 ‘진정한 이김’을 위해 그동안 그토록 처절했던 ‘훈련의 이김’이 필요했었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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