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락현 간도되찾기운동본부 명예회장

중국의 동북공정에 맞서 설립된 동북아역사재단이 자신의 본분을 저버린 채 우리 역사의 기점인 단군의 건국사실을 부인하고 간도 영유 사실조차 인정하지 않는 자해행위를 함부로 벌이더니 이번에는 검인정 교과서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국사편찬위원회(국편)가 ‘수정 권고’라는 이름으로 일본 편향적인 기술을 사실상 강요하는가 하면 최근 중국이 자국의 관할구역임을 명시, 실효적 지배를 하고 있는 한국에 대해 공세의 수위를 높여가고 있는 이어도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 언급조차 없다. 공교롭게도 역사를 다루는 두 정부기관에서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이 같은 역사비하와 왜곡을 서슴지 않는 이유와 배경이 자못 궁금하다. 역사는 동네북처럼 함부로 치는 그들만의 전유물이 아닌데 말이다.

지난 8일 국회(교육과학기술위원회)가 국편으로부터 제출받은 국감자료에 의하면 한 출판사(지학사)의 중학교 역사교과서에 원래 ‘을사늑약(勒約, 1905)’으로 기술되어 있던 것을 ‘을사조약’으로 수정할 것을 권고하여 처음엔 항변도 하였으나 결국에는 따를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늑약의 ‘늑(勒)’이 ‘억지로 할 늑’이니까 억지로 맺은 조약이라는 뜻이다. 국편에서는 조약으로의 수정에 대해 ‘개념을 정확히 하기 위해서’라고 하는데 사용빈도가 좀 낮은 한자이긴 하나 늑약, 즉 ‘억지로 맺은 조약’이 그냥 조약이라고 하는 것보다야 민족 정서에도 부합하고 개념 정리도 훨씬 더 깔끔하게 해주고 있다. ‘한일협상조약’이라는 원명을 사용하지 않을 바에야 을사늑약이 역사 사실에 훨씬 더 가깝다고 보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늑약이 힘을 얻는 것은 역사 사실 자체와 부합한다는 점일 것이다. 을사조약은 총에 착검을 한 군대를 동원하여 궁궐안팎을 에워싼 공포분위기 속에서 대등한 국가관계의 조약 체결이라기보다는 강제적 불법적 일방통행으로 밀어붙인 일종의 약탈결혼과 같은 것이었다.

또 다른 출판사(교학사)가 펴낸 역사교과서는 일본역사를 설명하는 ‘국왕 중심의 새로운 정부’란 대목에서 이를 ‘천황(天皇, 일본말로 덴노)’으로 고쳐 부를 것을 권고 받아 그렇게 교과서에 반영하였다는 것이다. 천황하면 하늘의 아들인 천자에다 황제까지 겸한 극존칭에 해당한다. 똑같은 입헌군주제를 채택하고 있는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도 아직 이런 호칭을 사용하는 나라를 본 적이 없는데 유독 일본만이 단순한 일본통합의 상징으로서뿐만 아니라 국가대표 이상의 마치 신성불가침의 성역처럼 한 단계 격을 더 높여 부르고 있는 것이다. 정작 일왕은 종전 후에 인간선언을 했는데 단지 정치적 이용을 위해 조작(操作)한 이 말을 왜 우리가 굳이 따라해야만 하는지 납득할 수가 없다. 그리고 그것은 앞서 을사조약에서처럼 개념을 정확히 하기 위해서 확보하지 않으면 안 되는 객관성도 부실한 가장 일본적인 일본 중심의 용어인데 말이다.

혹여 이와 같은 일련의 사태가 지난번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순시 이후 언급한 일왕 사과발언과 관련이 있다면, 즉 일본의 스와프 협정 파기와 같은 경제적인 보복이 두려워 일본에게 보이기 위한 제스처라면 더더구나 용인할 수 없는 일이고 해서도 안 될 일이다. 설사 경제적인 불이익을 당한다손 치더라도 영혼까지 팔 수는 없지 않은가.

전설의 섬(섬이라기보다 수중 암초) 이어도는 그동안 중국이 직접적인 관할권 주장을 하지 않고 경제적 배타수역(EEZ)의 중첩 문제로만 접근해오다 최근 들어 이를 자국의 관할 구역으로 명시하면서 수면위로 떠오르게 되었다. 때맞추어 현재 동북아 일대에서는 독도와 댜오위다오(일본은 센카쿠 열도), 간도문제와 동북공정 등으로 영토분쟁이 격화되고 있어 그 와중에 있는 이어도에 대한 중국의 공세에 맞서 그 부당성과 진실을 학생들에게 알리고 더욱 굳건한 영토의식을 심어주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중고교의 국정과 검인정 역사교과서가 한결같이 이에 대한 언급을 단 한마디도 하지 않고 있는 사실이 역시 9일 국감 자료에서 밝혀진 것이다. 이는 이어도 문제를 교과서에서 일률적으로 배제하고 있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아무리 우리가 지금 실효적으로 지배하고 있다 하더라도 당장 발등의 불로 다가오고 있는 문제를 이렇게 나 몰라라 하고 방치하다시피 하는 것은 가뜩이나 저상(沮喪)된 국민의 영토 수호의지를 꺾는 무책임한 처사라 아니할 수 없다.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국력의 소장(消長)과 주변 정세가 언제 어떻게 변할는지 모르는 격동의 시대를 대비하여 특히 영토문제에 관한 한 항상 긴장의 끈을 놓아서는 안 될 것이다. 그것은 우리 세대에서 끝나는 문제가 아니고 우리 민족이 생존하고 있는 한 영속되는 문제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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