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송범석 기자] 서양 철학의 원류라고 할 수 있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구 1만 명 이하의 도시국가를 모델로 삼고 정치학을 전개했다. 하지만 시대가 변하면서 그리스 세계의 정치적 환경이 급변했다. 그 전환의 중심에는 알렉산드로스가 서 있었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그리스 세계의 숙적인 페르시아를 쓰러뜨렸고, 파죽지세로 이집트와 동부 지중해 연안의 도시들까지 정복했다.

그는 멀리는 중앙아시아와 인도 북서부까지 진출해 곳곳에 자신의 이름을 딴 알렉산드리아라는 도시를 수십 개나 건설했다. 이처럼 거대 제국을 건설하는 과정에서 그리스 문명은 커다란 변화를 겪었다. 이러한 제국의 팽창은 여러 사상과 문명의 융합을 이끌었다. 이렇게 새로 탄생한 문명은 후대에 헬레니즘 문명이라고 알려졌다.

후에 지식은 발전하고 분화됐지만, 헬레니즘 문명이라는 혼란기를 맞으며 냉소주의가 팽배해지게 된다. 지식인들은 마치 부자들의 사치스러운 생활을 비꼬듯이 자신들의 전문 분야인 지식을 풍자하게 됐다. 사회를 통합하는 구심점과 더불어 상상력을 저해하는 지적 권위마저 사라진 헬레니즘 시대에는 풍자와 불신의 지적 풍조가 더욱 뚜렷해졌다.

이러한 현상은 ‘신(神)은 없다’는 인식론에까지 다다른다. 이처럼 신이 사라지면서 이를 삶의 지표로 삼았던 사람들은 새로운 ‘구원론’을 원하게 된다. 그리하여 당시 사람들은 신에 의존하지 않고도 행복하게 살거나, 아니면 묵묵히 고통을 견디면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신을 대신할 만한 가치의 기준. 에피쿠로스가 생각한 그 기준은 바로 ‘쾌락’이었다. 맛있는 음식이 주는 쾌락, 즐거운 노래에서 얻는 쾌락…. 이러한 쾌락이 곧 행복이며, 선이라고 여겼던 것이다. 그러나 오해해선 안 되는 부분이 있다. 사실 에피쿠로스는 내내 절제를 하며 소박하게 살았다. 그가 강조한 것은 육체적 쾌락이 아니었고, 소극적인 의미의 쾌락, 즉 고통을 피하는 데서 진정한 쾌락을 찾았다. 그러한 고통을 피하고 쾌락이 충족된 차분한 상태를 그는 아타락시아라고 칭했다.

어쨌든 이러한 ‘쾌락주의’가 일어나게 된 것은 결과적으로 당대의 시대 상황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신을 부르짖었던 그리스 시대가 없고, 그 뒤의 헬레니즘 시대가 없었다면 과연 에피쿠로스의 이름이 후대에 남았을까. 자못 생각해볼 만한 문제다.

이 책은 이처럼 해당 철학자의 사상적 궤적은 물론, 동시대 사상이나 다른 시대의 사상들 사이에 연관이 있는 것을 조명해 나간다. 가령, 인간은 주어진 현상을 종합할 수 있는 능력을 이미 가지고 있다고 본 후설의 현상학과, 피카소가 그린 최초의 입체파 작품인 <아비뇽의 처녀들>을 연결해 사상의 동시대성을 설명하고 있다.

이 책은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길가메시 이야기에서부터 출발한다. 보통의 철학사가 고대 그리스 철학에서 시작하는 것과 확연히 다른 지점이다. 문자로 기록되어 있지는 않으나 초기의 철학은 종교의 형태를 취했고 고대의 종교는 오늘날의 그것과 좀 다르게 사회의 조직 원리, 생활방식, 세계관이었으므로 철학의 한 부분이 될 자격이 충분하다. 마찬가지 논리로, 현재의 지적 지형과 변화 과정 역시 현재 진행 중인 철학사에 속하기에, 20세기 후반 그리고 현재 생존한 철학자들의 사상까지의 흐름을 놓치지 않았다. 누구나 한번은 알고 싶고 읽고 싶지만, 접하기 부담스러웠던 서양 철학사를 가장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는 책이다.

남경태 지음 / 휴머니스트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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