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요무형문화재 100호 장주원 옥장. ⓒ천지일보(뉴스천지)

중요무형문화재 100호 장주원 옥장 인터뷰 
부친 영향으로 어릴 때부터 보석세공에 관심
“한국 옥 작품의 예술성 세계에서 인정받고파”

[천지일보=이지수 기자] 은은하고 순결하다. 화려하지 않지만 그 신비한 빛깔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감흥을 준다. 그리고 이내 손에서 놓지 못한 채 50여 년이 흘렀다. 중요무형문화재 제100호 옥장 장주원(75) 선생은 그렇게 삶의 반 이상을 ‘옥’과 함께했다.

“50년이 넘었지만 후회해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어요. 때론 작업이 피곤할 때도 있지만 옥과 함께 있으면 정말 행복해요.”

장 선생은 우리나라 옥 공예의 재현과 맥을 이어오고 창조적인 작품 활동에 매진해왔다. 특히 한국의 독창성과 우수성이 돋보이는 작품으로 세계인들로부터 찬사를 받고 있으며 특유의 장인정신으로 이뤄낸 환주(環珠)기법과 이중연결고리 등은 옥 종주국 중국의 제작기법을 한 단계 뛰어넘는 것으로 높이 평가받고 있다.

“옥을 다루기 전에 금속공예를 했는데 옥의 신비스러움에 매료됐죠. 옥은 보석 중에도 조각하기 까다로운 보석이에요. 그렇지만 남들이 하기 어렵고 까다로운 일에 도전하고 싶어서 옥을 택했죠. 제가 옥 공예를 시작할 당시에는 ‘옥 문화’는 있었지만 다루는 기술은 아주 미미했어요.”

장 선생은 1937년 전남 목포에서 태어났다. 그가 옥 공예를 하게 된 것은 부친의 영향이 크다. 금은 세공가였던 부친의 밑에서 자란 장 선생에게는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아버지 작업장을 들락날락하면서 반지와 목걸이 만드는 것을 어깨너머로 보며 자랐어요. 아버지께서 하시는 작업이 곧 저의 학습이었죠.”

금은 세공가인 부친의 피를 물려받은 그는 어릴 때부터 남다른 손재주를 보였다. 초등학교 때부터 고적대와 미술부에서 활동했으며 중·고등학교 때는 관현악을 하면서 미술과 공작활동으로 주목을 받기도 했다.

22세 되던 해인 1959년 서울 종로의 한 금은세공장에 들어가 부친으로부터 배운 금은 세공기술을 바탕으로 보석세공기술을 배웠고 27세 때부터 옥 공예를 주로 다루며 새로운 기술을 연마했다.

이어 41세 때부터 서울에 공방을 차리고 옥 공예 제품을 수선하며 자신만의 창의적인 기술을 개발하는 데 주력하기 시작했다. 이후 그의 창작품들은 많은 사람에게 인정받기 시작했고 1996년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제100호 옥장으로 지정됐다.

주로 춘천 옥으로 작품활동을 해온 장 선생은 미얀마 등 옥 생산지면 세계 어디든 직접 원석을 구하러 다닌다.

그가 말하는 ‘옥’의 매력은 ‘은은함’이다. “옥을 보는 시각은 각각 다르겠지만 옥은 동양의 보석이에요. 서양의 보석은 화려하고 빛을 받으면 아주 반짝거리지만 옥은 빛을 머금고 흡수해 은은하게 내면을 비추는 기묘한 아름다움을 지녔어요.”

예로부터 옥은 은은한 빛깔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우리나라 선사시대 유적에서도 출토된 것을 보면 그 역사의 깊음을 알 수 있다. 무엇보다 옥은 영험이 깃든 보석으로 통한다.

“우리나라 좋은 말 중에 ‘옥’ 자가 들어가는 경우가 많죠. 그만큼 우리나라 국민정서 저변에는 옥에 대한 애정이 깊이 깔렸어요. 귀한 보물이라 과거에는 주로 왕실이나 귀족들만의 장식품으로 애용됐죠.”

장 선생은 8000년 역사로 옥의 종주국이라고 자랑하는 중국에서조차 터득하지 못한 옥 작품 제작의 한 차원 높은 기법 등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특히 그동안 노리개, 비녀, 가락지, 옥패와 같은 장신구나 공예품에 머무르는 옥 제품에서 벗어나 작가의 창조성과 예술성이 담긴 대작들을 남겨 ‘옥 예술’이라는 새로운 길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장구한 옥 역사를 가지고 있는 중국 사람들이 제 작품을 보고 감탄하고 경이롭다는 표현을 해요. 그런 얘기를 들으면 보람 있고 자부심이 느껴지죠. 그들은 8000년 이상의 역사를 갖고 있지만 저는 50년 밖에 되지 않았거든요. 게다가 누구에게 배운 것도 아닌 독학으로 터득했죠.”

그는 재래적 과정을 고수하며 그의 절묘한 기술로써 역사에 남을 만한 걸작을 만들기에 이르렀다. 하나의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20여 년이 걸리기도 한다는 그의 끈기와 인내의 장인정신은 그의 작품에 고스란히 반영된다.

“눈을 감기 전 한국의 옥 작품의 예술성을 세계에 알리고 싶어요. 옥을 단순한 공예가 아닌 예술로 승화시켜 세계에서 인정받는 것이죠. 저는 이 일에 제 생명 이상을 걸었어요.”

그는 전통문화에 대한 애정도 각별했다. “우리의 전통문화에는 혼이 담겨 있어요. 판소리, 무용, 기악 연주 등 세계 어디 내놓아도 손색없는 우리의 전통문화에 정부의 지원이 따른다면 세계시장에서 분명한 경쟁력을 확보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의 바람은 많은 사람이 자신의 작품을 보고 옥 예술품이 전하는 우리나라의 멋을 함께 공유하는 것이다.

“어떤 작품을 보고 눈과 귀만이 즐거우면 기술이에요. 하지만 영혼을 울리는 것은 예술이죠. 제 작품을 보고 그러한 것을 느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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