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송범석 기자] “평전은 마땅히 연암이 말한 이 ‘틈의 역학’을 읽어야 한다. 이 틈의 역학이 누구에게 연암은 전염병을 옮기는 문둥이요 오랑캐며 삼류선비였고, 누구에겐 천하의 명문장가요 청렴한 벼슬아치이며 조선의 미래를 이끌 이요, 누구에겐 한없이 자상한 아비요 남편이며 선생을 만들었다.”

연암에 대해 기술하고 있는 이 책은 일반적인 평전 형식을 취하지 않고 있다. 연암과 동시대를 산 인물과 그의 후손을 포함한 11인의 필자를 내세워 다방면에서 연암을 조명한다. 11인 중, 어떤 사람은 연암에게 한없는 신뢰감을 보이지만 또 어떤 사람은 극단적으로 연암을 비난한다. 이렇듯 책은 한 인물의 여러 모습을 다 담고 있다.

이런 작업을 통해 저자는 “평전을 쓰는 자로서 평전 대상에게 애당초부터 품고 있는 내밀한 경애의 감정도 이 과정에서 적절한 틈을 확보하게 됐다”고 고백한다.

한편 <당신, 연암>은 인간다운 세상을 꿈꾼 연암을 문장, 성정, 학문, 그리고 미래의 네 개 단어로 그리고 있다. 연암과 평생 등을 돌린 유한준, 문체반정으로 각을 세운 정조 등을 통해 조선 최고의 문장가로 남았던 연암의 ‘문장’을 따라잡았으며, 연암이 평생 사랑한 이씨 부인, 둘째 아들 박종채의 눈에 비친 ‘성정’에 대해 이야기한다. 또한 연암의 처남인 이재성과 호협한 제자인 무사 백동수, 평생지기 유언호를 통해 연암의 학문인 실학을 논하고, 인문학을 공부하는 저자의 입장에서 오늘날 연암 정신과 연암학이 필요한 이유를 살폈으며, 갑신정변으로 이어진 연암학의 미래를 조망한다.

이 책의 백미는 연암을 대하는 상반된 태도다. 연암을 몹시 미워한 유한준의 경우 연암으로부터 “그대의 문장은 몹시 기이하다”는 편지를 받고 펄펄 뛴다. 그는 “나에게 감히 ‘문자의 법도’를 가르치려는가. 도대체 겸양과 예의를 모르는 자”라고 연암을 꼬집는다.

사실 연암과 유한준이 애초부터 사이가 멀었던 것은 아니다. 유한준이 밝히듯이 두 사람은 동산에 올라 시문을 주고받을 정도로 친분이 있었다. 유한준은 “내가 가난한 그에게 술, 종이, 먹, 붓, 심지어 땔나무를 보내준 적도 있다”고 설명한다.

그는 연암의 글이 엉터리인 이유도 공을 들여 기술한다.

“나는 문장을 음식이라 생각한다. 입에 맞으면 어느 것인들 음식이 아니겠는가마는 유독 좋아하는 음식이 있듯이 글도 그렇다. 마음으로 숭상하는 사람의 글이라면 어느 글인들 문장이 아니겠는가마는 유독 좋아하는 사람의 글이 있잖은가. ‘좋아하면 배우고 배우면 비슷해지고, 고인의 글과 비슷해진다면 이 또한 고문이다’라는 것이 내 문체관이다. (…) 개개인의 문체와 문장이 다름을 두고 왈가왈부할 이유가 없다. 문체는 입맛처럼 기호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연암의 문체는 이와 다르다. (…) 연암은 패관소품체를 가까이해 자질구레한 말단까지 저토록 세세히 핍진하게 그려내니 영 천하고 천박하기 그지없다. 그러니 연암의 글에는 늘 불미한 풍문이 돌 수밖에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연암은 ‘실사구시’를 중요시 여긴 선비다. 당대의 유학자들이 보기에 어딘지 못마땅한 구석이 있는 게 당연해 보인다. 이를 두고 일반적으로는 연암이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당시 허위의식에 빠진 세태를 비판하면서, 당시 중국의 선진 문물을 배우고 실천하려고 하였던 북학의 선두 주자였다고 칭송하기도 한다. 그러나 어쨌든 당대 선비들에겐 ‘삼류’일 뿐이었다.

반면 연암의 아들인 박종채는 아버지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개를 기르지 말라는 아버지의 말씀은 아버지의 성품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결절이시다. 나는 이 말씀이 아버지 삶의 동선이라고 생각한다. (…)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개는 주인을 따르는 동물이다. 개를 기른다면 죽이지 않을 수 없으니 처음부터 기르지 않느니만 못하구나. 이 시대, 누가 저 견공들에게 곁을 주겠는가. (…) 아버지께서는 또 기러기는 형제를 뜻한다고 잡숫지 않으시고 까마귀는 반포지효의 새라며 애틋하게 대하셨다. 나는 아버지 외에 이런 분을 뵌 적이 없다.”

드라마로 이름이 많이 알려진 무인 백동수의 경우 연암을 ‘스승’이라고 부른다.

그는 “연암 스승께서는 적서뿐 아니라 겸종들에게도 관심을 보이셨다. 그 사람을 유심히 보았다가 재능과 기술을 찾아 생계를 영위할 방도를 마련해 주기도 하셨다. 개인의 재능과 기술은 작게는 개인의 삶을 영위하는 수단이지만, 넓게 본다면 우리 조선을 부국으로 만드는 자산이기 때문이라고 하셨다”고 설명한다.

이처럼 책은 조선 후기 대표적인 실학자이자 당대의 시대정신을 비판한 역사적 인물로 바라볼 때 놓쳤던 연암의 입체적인 얼굴을 길어올린다. 웃음과 역설 뒤에서 우울증과 불면증에 시달리는가 하면 ‘세상이 돌아가는 꼴이 미워 소설을 썼던’ 역사 밖으로 나온 개인 연암과 마주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럼으로써 연암이 꿈꾼 인간다운 세상이 과연 어떤 의미였으며 현재 우리에게 무엇을 제시하고자 했는지에 대해 되묻는다.

간호윤 지음 / 푸른역사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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