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작소방서 배민지 소방대원이 구조대 출동 준비를 하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화장실·욕실에 있다가도 신고 접수되면 ‘즉시’ 출동
“일부 시민, 택시 부르듯 119 구급차 불러… 황당해”

[천지일보=강수경 기자] 최근 구미 불산 누출 사고로 진압과 구조를 위해 현장에 투입된 소방대원은 180명. 영문도 모른 채 피해를 당한 주민과는 달리 이들은 불산이 누출된 사실을 알면서도 희생을 각오하고 현장으로 달려간 소방대원들이다.

화재뿐 아니라 다양한 사고 현장과 일상 구급상황에서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사람들은 119를 누른다. 사고 당사자에게 그때만큼은 119대원이 가장 귀하고 소중한 사람이다.

자신의 생명보다 남을 위해 먼저 달려가야 하는 소방대원들의 삶은 어떨까. 지난해 말 입사한 동작소방서 응급구조대 새내기 소방사 배민지(32, 여) 씨를 만나 소방대원의 삶을 잠시 들여다봤다. 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했던 그는 위급한 사람을 위해 언제든 달려가는 소방사로 변신해 있었다.

건장한 남자도 힘들어하는 소방대원이지만 그는 도전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사건‧사고 현장에서 활동하는 소방관들이 TV에서 보면 힘들지만 참 보람될 것이라고 생각해서 지원했죠. 소방이라는 분야가 강인한 체력과 정신력을 요구하는데 여자로서 힘들지만 도전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구급‧구조‧화재 등 분야도 많고, 발전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했지요.”

하지만 실제 소방대원으로서의 삶은 녹록치 않았다. 행정업무, 구조지원 등 업무에서 오는 스트레스도 있지만, 속이 상하는 것은 119구조대를 택시 부르듯 하려는 몇몇 시민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한 가지 예를 들면 한 시민이 밤늦게까지 술을 마시고는 배가 아프다며 119에 신고를 했어요. 저희는 긴급하게 출동을 했죠. 신고한 시민은 자기 집 근처의 병원으로 이송을 요청했고 그 병원으로 갔어요. 하지만 이송 후에는 병원에서 빠져나와 곧장 집으로 가버린 거예요. 정말 황당한 경우죠. 들어주지 않으면 시민의 요청을 거절했다고 불평이 접수될 것 같아서 울며 겨자 먹기로 도와야 했어요.”

그렇기 때문에 그는 시민의 의식 수준이 높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개인의 편의를 위한 신고 때문에 정말 위급한 사람에게 달려가는 게 지체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는 제도적인 장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소방대원을 하면서 보람을 느낀 경우도 많다.

“정말로 소방관의 도움이 필요한 곳에 도움을 줬을 때는 보람되죠. 도움을 받은 시민이 고맙다고 말하면 그 말 한마디에 피로가 녹아요(웃음).”

 

 

▲ 동작소방서 배민지 소방대원. ⓒ천지일보(뉴스천지)

또 밤새도록 현장에서 일을 하고 아침을 맞을 때에는 자부심까지 느껴진다고 한다. 친구들이랑 놀거나 공부하느라 밤을 새웠을 때와는 전혀 다른 느낌이란다. 하지만 늘 기쁘고 즐거운 것은 아니다. 신고를 받고 현장으로 필사적으로 달려갔는데도 환자를 구하지 못했을 때는 무거운 짐을 어깨에 얹고 돌아서야 했다.

“작년 말부터 소방대원 일을 하면서 세 번 목숨을 건지지 못했어요. 심장 발작으로 갑자기 숨이 멎은 사례였죠. 긴급하게 출동해 응급 심폐소생술을 시도했지만 살려내지 못했어요.”

언제 어떤 사람이 신고를 할지 몰라 소방대원으로서의 삶은 사적인 영역보다 공적인 영역이 더 많다. 쉬어도 쉬는 게 아니다.

“이를 닦고 있어도,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다가도, 심지어 샤워하려고 몸에 비누칠을 다 해놓은 상황에서도 신고가 들어오면 그 상태로 당장 나가야 해요. 늘 긴장의 연속이죠. 그러다 보니 스트레스가 늘 있는 것 같아요.”

소방대원은 사고현장에서 늘 안전사고의 위협도 느낀다. 문제는 인원부족이다. 규정 인원에 못 미치는 인원수가 안전사고를 부른다는 지적도 나온다. 배 대원도 이에 공감했다.

“가장 큰 문제는 인원 부족이죠. 지금 근무하는 구급센터만 해도 구급차가 2대 있지만 인원은 규정 인원에 미달한 5명이에요. 화재진압 파트도 마찬가지죠. 출동차량은 10대가 넘지만 하루 일할 수 있는 인원은 6~7명에 불과하니 차량이 출동불능 상태로 방치되는 때가 많아요. 최근에는 신규채용을 늘려서 서울시 소방서들이 3교대로 전환 중이지만 아직도 인원이 부족한 것이 현실이에요.”

근무여건도 바뀌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현재 서울에 있는 소방서들이 3교대 근무체제로 전환하고 있는 과정이어서 2교대가 섞여 있다. 24시간씩 2교대로 근무를 하다 보니 신체리듬이 맞지 않아서 피로가 누적돼 업무 능력도 떨어진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배민지 대원에게는 근무여건보다 더 빨리 변화가 됐으면 하는 부분이 있다. 바로 시민들의 의식이다. 소방관의 희생에 대해 너무 무관심하다는 것이다. 그는 “미국과 캐나다 같은 나라의 소방관들이 부럽다”며 “정확히 말하자면 처우가 부러운 것보다 국민이 생각하는 소방관에 대한 의식이 부럽다”고 강조했다.

소방관이 희생을 당하면 그 유족들이 자부심을 느끼고 살아갈 수 있도록 정부와 국민들이 관심을 둬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정부에는 소방관들의 희생에 조의를 표하고, 유족들의 생계가 힘들어지지 않도록 국가가 정책적으로 대책을 세워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근 소방관들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대한 치료 문제가 이슈가 된 데 대해서는 “국가적인 차원에서 치료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개발됐으면 좋겠다”고 요구했다.

오늘도 어려움에 처한 시민에게 도움을 줄 준비를 하느라 배민지 대원은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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