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역아동센터 아이들의 공부를 봐주고 있던 박영식 대표(가운데)가 아이들과 활짝 웃어보이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아이들이 꿈에 다가가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개천에서 용 만들겠다는 마음으로 아이들 꿈 지원
“칭찬·지지 해주니 반 1등 넘어 전교 1등하기도 해”

[천지일보=김예슬 기자] 개천에서 용 난다는 속담이 있다. 어려운 가정환경을 딛고 성공한 사람에게 사용되는 이 말은 빈곤의 대물림, 교육 격차 등으로 옛말이 된 지 오래다.

그러나 이러한 사회분위기에 아랑곳하지 않고 꿈을 위해 한 발 한 발 내딛고 있는 아이들이 있다. 우스갯소리로 자연지형조차도 건천이라 용이 나기 어렵다는 제주특별자치도에 자리한 아동복지시설 ‘제일지역아동센터’ 아이들이다.

박영식 대표는 ‘개천에서 용을 만들겠다’는 각오로 2005년 자신의 고향이기도 한 제주도에 이 센터를 설립했다.

맞벌이와 가정형편 등으로 부모의 관심과 지원이 부족했던 아이들은 박 대표의 관심과 사랑 속에 꼬물꼬물 꿈을 키워나가고 있다. 센터는 이런 아이들을 위해 야간에도 문을 활짝 열어 놓는다.

“올챙이도 촐랑촐랑거리는 얕은 물에서 살잖아요. 우리 아이들도 지금 있는 곳에서 열심히 하다보면 육지 아이들 못지않게 높이 뛸 수 있을 거라 믿습니다.”

박 대표의 이러한 믿음을 지켜준 것은 다름 아닌 아이들이었다. 그는 아이들이 변화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면 일찍이 좌절하고도 남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 대표는 아이들이 놀이와 공부를 병행하면서 또래와 어울리는 방법을 배우고 각자의 꿈과 희망을 키워가기를 바라고 있다. 이에 열악한(?) 지역아동센터라는 게 의아할 정도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한 예로 이곳에는 유소년 축구단과 밴드부, 전국 아동센터 최초 공식야구단인 제일드래곤즈가 있다. 축구단의 경우 해피드림킥 축구대회에서 연속으로 우승하고 CJ컵도너스캠프 전국축구대회에서도 종합우승을 차지해 실력을 입증했다.

박 대표는 “공동모금회, CJ도너스캠프, 지역사회단체, 후원자 등의 도움으로 이러한 활동을 꾸준히 해올 수 있었다”며 이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내비쳤다.

이어 “또 재정상 아이들 공부를 돌봐줄 정식 직원을 여러 명 둘 수 없는데 자원봉사자와 재능기부자, 제주외고, 제주과학고 ‘자바’ 봉사단에서 도와주고 있다”면서 “함께하는 사람이 많아 든든하고 행복하다”고 덧붙였다.

이렇게 많은 이들이 도움의 손길을 뻗어주고 관심을 갖자 아이들도 꿈을 꾸고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축구화를 신기고 유니폼을 입히니까 학교 축구선수가 되고, 공부 잘한다고 칭찬해주니까 반에서 1등, 더 잘해주니까 전교 1등까지 하는 아이도 생겼습니다. 또 ‘한자를 하나도 모르겠다’고 말하던 애들이 3~4급 자격증을 거뜬히 따는가 하면 조리사 자격증을 딴 학생도 있습니다. 아이들이 잘 따라와 줘서 한편으로는 놀랍고 늘 고맙죠.”

센터에는 아이들이 받아온 상과 자격증이 한가득 있다. 상이 너무 많아서 한 사람당 파일을 만들어줬을 정도다.

그에게 아이들을 대하는 특별한 방법이 있는지 묻자 그저 칭찬과 지지, 기회를 제공해준 것일 뿐이라는 겸손한 대답이 돌아왔다. 한 가지 다른 것이 있다면 단순한 칭찬과 관심을 넘어 아이들이 그 분야에서 최고가 될 수 있도록 의미를 부여하고 기회를 제공해주려고 노력한다는 거였다.

박 대표는 “야구경기장에서 시구를 한 아이에게 ‘제주도에서 네가 최초로 시구를 했다’라는 말을 해줬는데 후에 자기도 야구선수가 되겠다고 해서 뿌듯했다. 또 한 아이는 공부 대신 미용 헤어디자이너 공부를 하도록 지원하고 있는데 일류 헤어디자이너를 만들 생각이다”며 아버지 같은 푸근한 미소를 지었다.

그는 또 지역아동센터가 어렵다는 현실에 안주해있지 않고 아이들을 위한 것이라면 사업 계획서를 정성스레 작성해 사업을 따왔다. 부지런히 활동하다보니 아이들은 다른 지역아동센터 아이보다 더 많이 듣고 체험할 수 있었다.

때론 같은 직종에 있는 사람이 사업 계획서 작성에 어려움을 느끼면 직접 발 벗고 도와주기도 했다.

그가 사업 계획서 작성에 별 어려움을 느끼지 않은 이유는 25년간 해온 공무원 영향이 컸다. 정부중앙기관 중견관리자로 안정적인 직장생활을 해오던 박 대표는 1999년 일찍 명예퇴직을 했다. IMF로 인한 구조조정도 거뜬히 넘기고 몇 년 뒤 승진을 바라보고 있던 박 대표였기에 이러한 행동은 동료와 가족을 당황하게 했다.

하지만 사회복지사업에 종사하는 친구 아버지와 친구의 모습을 평소에 봐오며 제2의 인생을 일찍이 생각하고 준비해왔던 터라 박 대표는 자신의 결정에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더 늦기 전에 제2의 인생을 설계할 때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평소 생각해오고 준비해오던 사회복지사업에 뛰어들었습니다.”

뒤늦게 사회복지 관련 공부를 한 그는 젊은 대학생보다 더 열심히 즐기며 공부했다. 이후 자격증을 따고 관련 시설을 둘러보기도 했다. 직장을 그만둔 후에는 포천요양원, 성혜원, 아동학대예방센터 등 다양한 곳을 거쳤다. 그러던 중 먼저 세상을 뜬 친구를 대신해 친구 아버지의 권유로 자선단에서 본격적으로 일을 배웠다. 그러다가 편찮은 모친을 돌보기 위해 어머니가 계신 아파트 상가에 지금의 센터를 세우게 됐다.

그가 제주도에 자리 잡을 때까지만 해도 지역아동센터는 3곳뿐이었다. 지금은 70곳으로 늘어났다. 지역아동센터의 필요성이 대두되면서 수는 점점 커졌으나 정부의 지원과 기업의 기부활동은 저조한 편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박 대표는 “대한민국 국민은 감정이 풍부하고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한다. 그러나 다들 여유 없이 살아가고 있어 행동으로 옮기지 못할 때가 많다”면서 “이러한 가운데 운영이 잘 되는 기업이 있다면 국민을 대신해 사회에 기업의 이익 일부를 환원하는 활동을 활발히 해야 한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어디에 후원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이 있다면 한번쯤은 지역아동센터로 눈을 돌려줬으면 좋겠다”면서 국민들에게도 지역아동센터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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