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까지 ‘고속성장’ ‘자기계발’ 등을 외치던 국민들이 달라졌다. 서점가의 베스트셀러는 온통 ‘비워라’ ‘천천히’ ‘휴식’ 등을 주제로 삼고 있으며 새로 나오는 상품·프로그램마다 ‘힐링’이라는 단어가 붙기 마련이다. 또 주말에는 산을 찾는 도시인들이 점점 늘고 있다. 사회가 ‘힐링’을 외치고 있는 셈이다. 왜 이렇게 사람들은 ‘힐링’을 원할까? 또 이 ‘힐링’은 어떠한 모양으로 국민들의 아픔을 치유한다는 걸까?


▲ 인문학자 최준영 씨 ⓒ천지일보(뉴스천지)

 
[천지일보=김명화 기자] 물질적 풍요가 가져다준 정신적 빈곤 탓에 많은 현대인이 우울증과 같은 마음의 병으로 고통을 겪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치유’라는 뜻을 지닌 ‘힐링(healing)’이 하나의 문화적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다. 특히 심리적 안정과 위로에 목말라 있는 현대인에게 인문학은 주목받고 있는 치유의 수단이다.

이에 인문학자 최준영(46) 씨를 만나 인문학이 현대인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들어봤다. 최준영 씨는 지난 2005년 국내에서 처음으로 노숙인을 대상으로 인문학 강좌를 열었으며, 이후 관악인문대학, 경희대학교 실천인문학센터 등에서 여성 가장, 교도소 수형인들에게 글쓰기와 문학을 강의하기도 했다.

― 최근 ‘인문학 테라피’라는 용어가 나올 정도로 인문학의 치유 효과가 관심을 받고 있다. 인문학이 치유의 수단으로 효과가 있다고 보는가.

얼마 전부터 인문학을 통해 삶에 지쳐있는 사람들을 위로해주고 치유해 줄 수 있다는 사회적 담론이 형성되기 시작됐다. 이제 우리 사회에서 인문학이 효용가치가 있고 중요하다는 생각이 보편화된 것이다.

사실 인문학 강의를 듣는다고 당장 사람이 바뀌거나 우울증과 같은 질병이 금방 낫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인문학은 단기적인 성과를 노리는 학문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인문학은 치유하는 학문이라기보다 더 아프게 만드는 학문일 수도 있다. 인문학은 대충 생각하고 말았던 것을 다시 한 번 생각하도록 요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성찰의 과정이 자신을 반성할 기회를 준다. 또 이것이 치유의 첫걸음이기도 하다.

― 인문학 수업에서는 어떤 내용을 주로 배우는가.

일반적으로 인문학 수업은 어렵고 딱딱하고 고리타분할 거라고 오해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러한 생각은 인문학이라는 개념을 협소하게 보기 때문에 생겨난 잘못된 생각이다. 문학, 철학, 역사 과목만이 인문학이 아니다. 일상에서 나누는 모든 대화, 인간관계 속에도 인문학적 요소가 담겨있다. 인문학 강의에서 사서삼경, 플라톤, 소크라테스 이야기만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우리가 살면서 겪는 이야기도 중요한 소재가 될 수 있다.

‘인문(人文)’이라는 용어의 ‘문(文)’ 자를 지금은 ‘글월 문(文)’으로 쓰지만 원래 어원은 ‘무늬 문(紋)’이었다. 쉽게 말하면 사람이 어떤 무늬를 띄고 있는가를 연구하는 학문이 인문학이다. 사람이 하는 말, 행동 등 다양한 행위 전부가 인문학이라 볼 수 있다.

― 인문학 강의를 통해 마음의 병을 치유 받은 사람이 있다면 그 사례를 소개해 달라.

2005년부터 노숙인과 교도소 수형인들을 대상으로 인문학 강의를 했다. 당시 수업 시간에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교재로 사용해 가르치면서 거기에 인용된 니체의 말을 소개해 준 적이 있다. 그 말은 “삶의 의미를 아는 사람은 아무리 힘든 고통이 다가와도 견딜 수 있다”였다. 그런데 그 수업을 들었던 노숙인 중 한 분이 니체의 말을 통해 삶의 목표와 희망을 갖게 됐다. 그리고 그 이후 취업도 하고 가족과 재회한 사례가 있다.
그는 “힘들겠지만 노숙인 신분을 벗고 열심히 사는 모습을 가족에게 보여주고 싶다”면서 새롭게 세운 자신의 인생 목표에 관해 말했다.

― 현대 사회는 인간을 중심으로 연구하는 인문학이 보다 강화돼야 할 때라고 사회학자들은 말한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이라고 보는가.

사실 인문학 열풍과 관련돼 걱정되는 측면이 많다. 최근 인문학이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면서 새로운 강좌가 다양하게 열리고 있다. 하지만 인문학까지 자본주의 사회에서 마케팅 대상이 되는 것이 아닌지 우려가 된다. 인문학을 이벤트화해서 또 하나의 시장 논리로 가져가 상품화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이 발생하지 않고 인문학이 우리 사회에서 본연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다함께 노력해 나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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