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송범석 기자] “비정규직은 불쌍한 사람들이 아니에요. 게으르거나 못 배워서 비정규직이 되는 것도 아니에요. 우리나라의 많은 회사들이 점점 비정규직만 쓰려고 하니 정규직 일자리가 부족해서 비정규직으로 일할 수밖에 없는 거예요. 모든 사람들은 불안한 마음 대신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어야 하고, 일하는 동안 자신의 당연한 권리를 누릴 수 있어야 합니다. 일한 만큼, 생활할 수 있는 적정 임금을 받아야 하고요. 일하면서 다치지 않을 수 있는 안전한 환경이 마련돼야 하고, 만약 다치더라도 무사히 치료를 받을 수 있어야겠지요. 일하지 못하게 되는 경우에는 생계를 보장받는 게 당연하고요.”

비정규직의 신음을, 어린이책 작가들이 담아낸 책이다. 재미있는 그림체와 익살스러운 어투가 재밌게 다가오지만 사실, 그 안은 온통 비정규직의 눈물로 점철돼 있다.

이 책에 나오는 동네 마트 직원, 비정규직 ‘숙희’ 씨는 점심때 사 간 수박이 맛이 없다며 사 분의 일 쪽만 들고 와서 교환해 달라고 우기는 고객과 입씨름을 한다. 그러다가 팀장에게 “이런 식으로 할 거면 재계약 못 할 줄 알아”라는 호통을 맞는다.

숙희 씨는 “다음번에도 재계약될 수 있게 해달라”고 하늘에 기도하는 자신의 모습에서 비참함마저 느낀다. 그래도 일은 해야 한다. 집에는 기다리는 아이들이 있어서다. 그때 문자가 온다. 막내딸이다. 막내딸은 “오빠가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는 첩보를 남긴다.

숙희 씨의 속은 타들어 간다. 자신이 하는 고된 일을 아이가 한다고 생각하니 절로 눈물이 난다. 순간 왈칵 눈물이 쏟아지지만, 손님 앞에서는 울 수도 없다.

숙희 씨 사연 뒤에는 편의점서 일하는 ‘아들’ 이야기가 나온다. 사실, 이 책은 이렇게 구성돼 있다. 등장하는 가족 전체가 ‘비정규직’인데, 사연도 갖가지, 눈물도 여러 빛깔이다.

일하러 올 때는 인격을 내려놓는다는 ‘아들’은 주문한 물건을 나르다가 허리를 삐끗한다. 그래도 “걱정마세요. 절대 끊어지지 않으니까”라는 말로 자신을 위무한다. 얼마 뒤 점장이 온다. 인계를 해주는데 1만 8200원이 빈다. 최소임금도 받지 못하는데, 모자라는 돈은 아르바이트생이 토해내야 한다. 그것이 ‘편의점 알바의 룰’이다. 일당이 연기처럼 사라진다. 이어지는 ‘아들’의 독백은 많은 것을 생각나게 한다.

“그래요. 우리는 정신없이 바쁜 패스트푸드점에서, 언제나 웃는 얼굴로 주유소에서, 늦은 시간까지 게임방에서, 신속 배달 중국집에서, 가장 열악한 조건으로 일해요. 하지만 ‘일하는 게 힘들지 않은지?’ ‘억울한 일은 없는지?’ 그런 걸 물어봐 주는 어른은 없어요. 그래요. 우리는 학생이니까요. 학생은 학교에 있어야만 하니까요….”

이처럼 책은 서울의 어느 평범한 서민 지역에 위치해 있음직한 다세대주택에 사는 각 세대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간병인, 시간 강사, 계약직 방송작가, 마트 계산원, 편의점 아르바이트 청소년, 화물 노동자, 계약직 공무원 등 이곳에 사는 ‘엄마’ ‘아빠’의 대부분은 비정규직 노동자이다.

이 책은 비정규직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알려주면서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잘못을 꼬집기도 하지만, 어른들은 왜 일을 하며 살고 있고, 그 일이 힘들거나 어려워도 포기하지 않는지를 나직한 목소리로 뚝심 있게 전한다.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어린이책 작가 모임 지음 / 사계절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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