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송범석 기자] “사람들은 누구나 꿈꾸는 자신의 모습이 있다. ‘나는 이러이러한 사람이 되고 싶어’라고. 그럴 때 우리가 자신을 대하는 태도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과거의 상처와 흔적들을 무시하고 완전히 새로운 나를 세워가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과거의 흔적과 결을 살려 그 위에 조금씩 더해가거나 줄여가는 것이다. 인격은 건축물로 비유될 수 있다. 우리가 흔히 성장하고 깨달음을 얻으려고 하면 내 안에 있는 과거의 아픔, 독특한 성격, 때로는 병리적으로 보이는 과도한 개성들을 모두 없애고 새로운 누군가가 되려 한다. 마치 바닷가에 난 소나무의 뒤틀린 결들을 곧게 만들어 버리려는 것처럼. 그러나 깊은 숨을 쉬고 그 안을 들여다보면 그 결 속에 길이 담겨 있다. 바닷가 소나무의 뒤틀린 결은 거친 환경 속에서 생존하고자 했던 몸부림이자 상처이자 훈장이다.” (p47)

이 책이 직시하는 ‘섬세’는 귀족풍의 고귀한 기품 따위를 칭하는 것이 아니다. 외려 ‘섬세’는 생존의 목소리이자 ‘삶’으로 나아가는 길이다. 한마디로 ‘섬세’란 내가 다른 존재와 깊이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 세상과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걸 느끼는 감수성이다. 이러한 ‘섬세’는 우리 인생이 맞닥뜨리는 수수께끼를 풀어주고 심연에 남아 있는 두려움의 낙인을 떨쳐내 줄 수도 있을 것이다.

저자는 한국 사회에 내재돼 있는 ‘성장 지상주의’와 ‘거칠고 독함’을 경계한다. 이제는 “독해져야 생존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섬세해야 생존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 섬세함을 찾아야 비로소 ‘1등주의’ ‘성공주의’의 잔상을 걷어내고 자신의 길을 찾아갈 수 있다는 깨달음인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에 불고 있는 바람의 결들을 가만히 바라보고 느껴보면 ‘섬세’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작음’ ‘연결’ ‘결’을 그 특징으로 하고 있다. 점점 사소한 것들이 보다 중요해지고 작은 감각의 차이가 큰 차이를 낳고 있다. 사람들은 점차 날줄과 씨줄처럼 서로 연결돼 가고 또 우리 존재가 본래부터 서로 깊이 연결된 존재라는 것을 자각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단편적이고 단면적인 것보다 독특한 ‘결’이 무엇인지 발견하고 그 ‘결’에 따라 살고자 하는 욕구가 점차 커지고 있다.”

이렇듯 저자는 ‘결’을 강조한다. 저자에 따르면 ‘결’은 맥락이요, 어느 시점에서 잘라서 본 단면이 아닌 긴 시간을 두고 전체의 사정과 흐름을 느끼고 파악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 모두는 각기 고유한 결을 갖고 있다. 그 결은 모두 제각기 다르고, 다르기 때문에 아름답다. 각기 다른 결이 어우러져 세상의 장엄한 아름다움을 만들어 간다는 것이다. 이 같은 관점은 ‘다원주의의 미학’에 맞닿는다. 이처럼 저자는 ‘다름’의 안에서 세계를 구축해 가는 힘을 느낀다.

그리하여 다른 사람의 결을 느끼기보다 내 머릿속에 있는 ‘이래야 한다’라는 관념의 렌즈를 통해 사람을 바라보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모든 사람, 모든 존재는 자신이 가진 독특하면서 유일한 결을 발견해 주고 아름다움을 이전해 주는 존재에게 감사와 매력을 느끼게 된다. (…) 결은 살아 있는 것이다. 고운 비단이 부드러운 바람에 날려 흔들려 생기는 결처럼 지금 여기서 살아 움직이는 것이다. 그것을 고정된 것, 확정된 것으로 보려고 하면 ‘지금 여기’의 생동감, 살아 있음을 놓치게 된다. 그래서 결은 머리로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 전체로 떨림을 ‘느끼는’ 것이다.”

한편 저자는 인터넷과 같은 ‘연결’ 역시 우리 세계를 어루만지는 가장 위대한 착한 위로자라고 강조한다.

“연결됨은 경계의 사라짐이다. 연결과 소통을 통해 경계가 허물어지고, 또한 경계를 허물어서 연결을 더욱 강화하고자 한다. (…) 경계를 넘어섬으로써 우리는 더 인간적이 될 수 있다. 경계만 뚜렷하고 초월과 소통이 없는 세상은 딱딱하고 인간성이 상실된 세계다.”

궁극적으로 책은 ‘섬세’를 통해 삶과 사회를 바라보고, 인생을 성찰하는 장에서 ‘섬세’해지면 좀 더 풍부하고 깊은 삶을 살아갈 수 있음을 보여준다. 김용철 사진작가의 감성어린 사진과 사색적인 철학 에세이가 더해진 이 책을 통해 잃어버린 섬세함을 회복하여 자신만의 길을 찾는 계기를 마련한다.

김범진 지음 / 갤리온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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