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송범석 기자] 기술과 기술시스템을 인간 역사의 일부로 접근해온 미국의 기술사학자인 저자 루스 슈워츠 코완이 인간의 특징 중 하나인 ‘물건 제작’에 초점을 맞춰 기술의 역사를 소개한 책이다.

저자는 인간이 살아가면서 만들어내는 복잡한 삶과 역사 그 자체를 ‘기술사’로 읽을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특히 가정과 산업체, 과학계와 정부와 대학, 예술가와 발명가 같은 다양한 사회적 행위자들 사이에 존재하는 복잡한 관계망을 세심하게 살핀다. 이를 통해 코완이 궁극적으로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우리의 삶이 복잡한 만큼 기술이 복잡하다는 것이다.

아울러 이러한 기술 발전은 한 영역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여러 영역이 엮이면서 이뤄져 왔다는 데 방점을 찍고 있다. 특히 미국 정부가 기술발전에 관여했던 부분들이 그렇다.

미국사를 보면, 군대의 여러 부문들은 언제나 기술변화의 중요한 후원자 역할을 했다. 미 정부는 전쟁에 관여하거나 전쟁 준비를 할 때면 이전까지 한 번도 밟아보지 않은 기술적 경로를 창출하는 데 돈을 쓰곤 했다.

이러한 기술변화에서 군대가 차지하는 역할의 중요성과 복합성을 이해하고, 아울러 과거에 그러한 역할이 어느 정도 변화했는지를 알아보는 좋은 방법 중 한 가지는 항공우주산업의 역사를 살피는 것이다.

사람들 대부분은 1903년 12월에 유인비행 시대가 시작됐다고 생각한다. 1903년은 라이트 형제가 여러 해에 걸친 끈질긴 연구와 실험 끝에 노스캐롤라이나 주 키티 호크의 모래언덕 위로 날아오른 순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라이트 형제에게는 선배들도 있었고 동시대의 경쟁자들도 있었다. 1903년 이전까지 한 세기가 넘는 기간 유럽과 미국 사람들은 기구와 글라이더를 가지고 실험을 해왔던 것이다. 이 경쟁자들은 라이트 형제가 비행에 성공한 이후 진보된 기술을 계속 내놓았다. 그 중 한명이 경험 많은 엔진제작자였던 글렌 커티스였다. 그는 1908년 자신과 몇몇 투자자들이 설립한 민간회사인 항공실험사 소유의 비행기를 타고 380m를 비행하는 데 성공했다.

그 뒤 1차 대전이 모든 것을 바꿔놓았다. 1914년에 영국‧프랑스‧독일이 전쟁에 돌입했을 때, 각국이 보유한 비행기의 수는 적었고 모두 정찰용이었다. 그러나 2년 반이 지나서 미국이 참전을 결정했을 때쯤에는 공중전은 일상적인 것이 됐고, 항공기 생산이 가속화했으며 공중전에 맞춰 개조된 기관총도 나왔다. 1차 대전 동안 미국 정부는 최대 소비자로서 가진 힘을 이용해 항공산업과 항공기 기술 모두의 발달을 도왔다. 항공산업의 탄생은 총력전을 가능케 했고, 총력전의 도래는 항공산업의 성장과 발전을 공수 모두에서 필수적인 요소로 만들었다.

1918년에 전쟁이 끝날 무렵에는 미국 군대와 미국의 항공산업 사이에 강한 연결고리가 형성돼 있었다. 군대에 몸담은 대다수의 식견 있는 사람들은 국방을 위해 항공산업을 제대로 유지해야 한다고 믿었다. 이런 맥락에서 국가항공자문위원회(NACA)가 설립됐다.

이후 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다. 2차 대전은 군사전략가들이 공중에서의 우위가 승리의 핵심 요소 중 하나가 될 것으로 가정한 최초의 전쟁이었다. 1941년 미국이 선전포고를 한 직후 새로운 공장이 지어졌고 나중에는 새로운 생산기법들이 도입됐다. 폭격기와 수송기는 점점 커졌고, 적재량도 늘어났으며, 작전범위도 넓어졌다. 전투기는 기동성이 더 좋아졌다. 마이크로파의 반사를 이용해 물체의 위치를 탐지하는 레이더가 처음 개발됐고, 회전날개를 이용한 최초의 성공적 항공기인 헬리콥터도 선을 보였다.

특히 2차 대전 이후에 관리연구 프로젝트들은 인류에게 수소 폭탄, 대륙간 탄도미사일, 더 거대하고 출력이 큰 원자로, 핵추진 핵미사일 장착 잠수함, 인공위성, 유인 궤도비행, 우주탐사선, 우주왕복선의 생산이 가능하게 해줬다. 이 모두는 복잡한 구성요소들의 조율을 필요로 하는 거대 프로젝트들이었다. 그 속에서 정부, 민간산업체, 대학 교수의 노력은 납세자들의 돈을 가지고 군사적 내지 정치적 목표를 달성하는 방향으로 맞춰졌다.

이렇듯 책은 다양한 기술이 어떻게 사람들이 일하고 통치하고 요리하고 이동하고 의사소통하고 건강을 유지하며 재생산하는 방식에 영향을 미쳐왔는지 설명하는 기술의 ‘사회사’를 표방하고 있다. 궁극적으로 기술변화가 우리 삶의 방식에 얼마나 심대한 영향을 미치는지 뿐만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이 기술변화에 얼마나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지도 일깨워주는 책이다.

루스 슈워츠 코완 지음 / 궁리 펴냄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