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이 있다. 과거가 없었다면 지금의 우리가 있을리 만무하고, 지금의 우리가 없다면 미래 또한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우리 민족처럼 숱한 외세의 침략에도 불구하고 고유의 역사와 문화를 지켜온 민족은 드물다. 인내와 끈기, 애국심으로 지금의 우리를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쉬운 것은 아직도 일본과의 역사적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일제강점기 당시 일제가 우리 민족에게 저질렀던 숱한 만행들과 수탈해간 문화재만 해도 어마어마하다. 아직도 우리 앞에 산재한 이런 숙제들을 풀지 못한다면 우리는 이미 67년 전에 광복했다 하더라도 반쪽짜리 광복밖에 하지 못한 것이 된다. 진정한 광복을 위해서는 역사의식이 무엇보다 제대로 박혀있어야 한다.

최근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군 침략 역사를 담고 있는 제주전쟁역사평화박물관이 자금난에 시달리다 일본 측과 매각 절차를 밟기 시작했다고 한다. 9일, 제주평화박물관은 지난달 30일 일본 측 한 인사와 일본 도쿄에서 박물관 매각에 대한 각서를 체결했다고 밝혔다. 발표한 날도 하필이면 한글날이다. 일제강점기 당시 민족문화를 말살하기 위해 우리말, 우리글도 쓰지 못하게 만들었던 때를 생각하면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제주평화박물관이 체결한 각서에는 일본 측이 평화박물관 자산을 매입하거나 대행할 수 있다는 내용이 담겼다. 대신 일본 측은 평화박물관 측이 처한 경제적 어려움을 해소해주고 자산도 충분히 보상해주기로 했다.

또한 ‘일본 측 요청이 있을 시 제주평화박물관은 등록문화재 제308호 가마오름 동굴진지 등의 자산을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전쟁유산)으로 등록하는 데 적극 협조해야 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우리 민족의 뼈아픈 역사가 그 역사를 제대로 인정하려 들지 않는 일본에 의해 좌지우지될 수도 있는 상황에 처한 것이다. 그동안 제주평화박물관이 자금난에 시달렸다고는 하지만 일제강점기의 뼈아픈 역사를 기억하고 다시는 그러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제대로 된 역사관을 심어줘야 하는 입장에 있는 박물관이 일본 측과 매각을 진행하고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가슴 아프다.

무조건 박물관 측만 탓할 수도 없는 것이 자금난에 시달리고 있는 것을 알면서도 우리 안에서 해결하자는 움직임이 적었다는 것이다. 제주평화박물관 이영근 관장은 일본 측과의 매각 절차에 대해 “지난 3월 자금난으로 일본 측과 매각을 진행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진 뒤 문화재청이 매입에 나서줄 것을 기다렸으나 별다른 조치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처음 박물관이 일본에 넘어갈지도 모른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당시에는 박물관을 지키기 위한 온라인 서명운동이 진행되는 등 활발한 움직임이 일 것으로 보였으나 별다른 효과를 보지는 못했다. 서명운동이 진행될 당시 제주도가 나서 문화재청에 국비로 제주평화박물관을 매입해줄 것을 요청했고, 문화재청은 자산 감정평가에 나섰지만 감정평가 결과 문화재로 지정된 가마오름 일대 토지 약 1만 5800㎡에 대해 2억 7천만 원밖에 나오지 않았다.

동굴 복원에 투입된 20억 원의 10%밖에 되지 않는 금액으로 이는 진지동굴 내부 전시시설에 대한 평가가 제외된 데다 진지동굴이 갖는 문화재적 가치가 반영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문화재청의 감정평가에 박물관 측이 문화재적 가치를 반영해 다시 평가해줄 것을 요구했으나 지난 8월 문화재청은 “관련 사례가 없다”며 토지에 대한 매입 의사만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문화재청이 평가의 기준으로 삼는 문화재적 가치가 무엇인지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드는 대목이다. 문화재의 가치 중에는 분명 우리의 민족의식과 역사의식 등 우리 민족이 우리 민족다울 수 있는 의식의 가치 또한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유형의 자산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물론 문화재청이 터무니없이 적은 금액을 제시하며 토지에 대해서만 매입하겠다고 해서 우리 민족의 수난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긴 박물관을 일본 측에 매각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하는 박물관 측의 처사도 옳다고 할 수는 없다.

역사적 사실도 은폐하고 왜곡해서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만드는 일본이 박물관을 사들인다면 지나간 역사적 사실을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만들 수도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제주시 한경면 청수리 소재 제주평화박물관은 이 관장의 사비로 지난 2004년 개관, 이곳에는 국가기록원 등록 280권의 자료와 유물 등 2천여 점의 역사 자료가 전시·보관돼있다. 또한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군이 태평양전쟁 준비를 위해 파놓은 등록문화재 제308호 가마오름 동굴진지가 있다.

한 개인이 역사를 바로 알리기 위해 사비를 들여 개관하고 운영해왔으나 자금난에 처하게 된 것에는 우리의 무관심도 한몫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나간 역사를 제대로 이해하고 올바른 역사관을 갖는 것은 우리 민족의 밝은 미래를 위해서도 꼭 필요한 일이다. 제주평화박물관이 지금의 이 상황에 올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다른 곳에서 찾거나, 다른 이들에게 돌린다는 것은 책임회피나 다름없다. 이번 일은 우리의 의식이 빚어낸 가슴 아픈 결과임을 인정하고 다시는 이러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역사에 대한 끊임없는 관심과 함께 올바른 역사관을 갖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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