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3월 2일 국가지정문화재 보물 제1760호로 지정된 경복궁 ‘수정전(修政殿)’.

일제시기 행각 헐리고 본건물만 남아
지난 3월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지정

[천지일보=박선혜 기자] 전 세계에서 가장 독창적인 글로 손꼽히는 것이 한글이다. 세종대왕은 과학적이면서 독창적인 한글을 창제하기 위해 일부 대신들의 거센 반대에도 의견을 같이하는 충신 몇몇을 뽑아 비밀리에 연구에 몰두했다. 이렇게 한글이 창제된 곳이 바로 집현전, 지금의 경복궁 내에 있는 수정전(修政殿)이다.

‘수정(修政)’이란 의미는 ‘정사를 잘 수행함’이란 의미로 현판 글씨는 중건 당시에 조석원이 썼다. 그는 조선 후기 문신으로 도승지까지 올랐으며, 글씨에 조예가 깊었다.

왕과 신하 영역이 만나는 곳

수정전은 근정전 서쪽에 있는 건물로서, 북쪽으로는 경회루가 자리 잡고 있다.

수정전이 있는 권역은 세종시기에 학문을 연구하며 왕에게 주요 정책을 자문하고 건의하던 기관이자 한글을 창제한 집현전이 있던 궐내 각사에 해당한다. 동쪽으로 사정전(왕의 영역)과 신하들의 영역이 만나는 접점이기도 해 이곳에 궐내의 관청인 각사들이 자리 잡았다.

수정전, 견고한 짜임새 돋보여

조선시대 후기의 문헌인 ‘궁궐지’에는 수정전과 이에 부속된 행각의 명칭, 규모, 양식 등이 비교적 소상히 기록돼 있다. 기록에 따르면 수정전은 정면 10칸, 측면 4칸의 비교적 긴 장대한 건물로, 이익공 양식 단층 팔작지붕이다.

수정전은 건물 외관, 가구 부재 등 다른 궁궐 내 건물에서 볼 수 없는 넓은 월대(月臺)를 갖춘 것이 특징이다. 정면에 네 벌대의 넓은 월대가 조성돼 있는데, 월대에는 정면에 계단을 3곳 설치했고, 중앙의 계단은 소맷돌을 둬 좌우계단과 차별화시켰다. 이는 임금의 출입이 자주 있는 편전임을 의미한다.

다섯 벌대나 되는 높은 건물기단 위에는 4각 초석 위에 각 기둥을 세우고 띠 살창 분합문과 빗살창교창을 사방 전면으로 둘러 설치했다.

높은 기단의 좌우 측면에는 불을 넣는 아궁이를 설치해 온돌방을 뒀다. 또 도리방향 10칸이 모두 대청으로 트여 있으며 좌우 및 후면의 퇴칸이 연결돼 있다.

공포는 길게 뻗은 쇠서의 이익공 위에 소로를 놓고, 양봉한 보머리를 받으며 주심도리를 받쳐준다. 또 지붕의 용마루 및 내림마루에는 양성을 하고 취두·잡상을 배열했다. 건물의 짜임이 견고하고 창의력이 돋보이는 구조다.

일제시기에 행각 소실돼

경복궁 수정전은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소실됐었으나 고종 4년(1867)에 근정전, 사정전, 경회루 등과 함께 중건됐다. 잠시 왕의 편전으로도 사용됐으며, 1894년 갑오개혁 때에는 대한제국의 군국기무처를 이곳에 뒀고 이후 내각청사로 사용됐다.

고종 때 중건 당시 수정전은 4면에 행각, 남쪽에 외행각이 일곽을 형성하고 있었다. 하지만 일제시기를 거치면서 내부 벽체와 창호가 훼철됐고, 일곽도 1915년 가을에 일제가 조선총독부를 세우기 위해 전초작업으로 시정 5주년 기념사업인 조선물산공진회를 경복궁에서 개최하면서 모두 헐리고 현재는 본건물만 남은 상태다.

지금 경복궁 내에 있는 수정전은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근정전 서편의 궐내 각사에서 유일하게 남아 있는 건물로 역사․건축적 가치가 높다.

한편 경복궁 수정전은 지난 3월 2일 국가지정문화재 보물 제1760호로 지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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