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송범석 기자] “기억은 기록이 아니라 장기 기억이라는 퇴비 더미에서 우리가 끌어올리는 이야기이다. 우리는 우리가 경험한 사건들을 이해하려고 이런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시간이 흐르면서 왜곡되거나 뒤집히고 다른 경험들과 뒤섞여 결국에는 흐릿해진다. 하지만 일부 기억들은 마치 그날의 경험처럼 생생하게 남아 있다. 퇴비 더미에서 썩지 않고 그대로 보존돼 있는 듯하다.”

인간에게 기억이란 무엇일까? 이 책의 저자는 “엄밀히 말해 인간의 기억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새로운 정보를 만날 때마다 역동적으로 계속해서 바뀐다”고 설명한다. 이런 의미에서 기억이야말로 우리를 우리로 만드는 것이 아닐까? 그 예로 치매 환자를 들 수 있다. 사랑하는 사람이 치매로 기억을 빠르게 잃어가는 과정을 지켜본 사람이라면 정체성과 자아의식이 어떻게 와해되는지 충분히 알 수 있다. 기억을 잃으면 주위 사람들을 더 이상 알아보지 못하게 되고 그러면 내가 나일 수 있는 이유도 잃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자아’라고 칭하는 개념도 결국엔 뇌라는 매개체가 운용하는 하나의 ‘기억’에 불과할 수 있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이 책은 이런 이야기를 들려준다.

사회발달심리학 교수인 저자 브루스 후드는 이 책에서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자아’란 고정된 것이 아닌, 뇌와 환경적 요인에 의해 얼마든지 변하고 흩어질 수 있는 것이라 이야기한다. 우리가 생각하는 ‘자아’란 영원불변한 존재가 아니며, 단 하나의 실체가 아닌 감각과 지각, 사고의 다발들이 겹겹이 쌓여 있는 것이라 말한다.

이런 맥락에서 평소 선량한 모습의 사람이라도 돌변해 범죄를 저지르는 이유를 설명할 수 있다. 왜냐면 뇌의 작용에 따라 다변할 수 있는 자아의 허술한 속성이 그 사람을 변하게 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뭐든 고정된 것은 없다는 소리다.

저자에 따르면 우리의 자아는 뇌의 내적인 변화와 마찬가지로 외부의 영향에 따라서도 바뀐다. 이는 유아기 때부터 시작되며 또래집단, 소유물, 취향, 정치적 성향 등 인류의 구성원이 되는 과정을 통해 자아의식을 형성한다. 즉, 우리의 성격을 바꾸게 만드는 것은 바깥세상이며 우리가 상황의 반영이라는 이런 생각을 ‘거울 자아 이론’이라고 한다.

궁극적으로 이 책은 우리가 우리 자신에 대해 너무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우리가 ‘자신’이라고 알고 있는 자아는 사실 착각에 지나지 않는다고 저자는 말한다. 실제로 ‘우리’라는 존재를 규정하는 속성을 담고 있는 것은 어떤 ‘초월적인 정신’이 아니라 우리의 ‘뇌’일 뿐이다. 자아는 결국 뇌가 만들어내는 이야기이다. 뇌가 손상되면 사람 성격이 달라지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설명이 가능하다.

이 책을 관통하는 메시지는 우리가 지금까지 내 안의 영원불변한 것이라 생각했던 ‘자아’가 곧 ‘착각’이라는 것이다. 책을 넘겨보는 동안 평소 자신의 이해되지 않는 행동,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타인의 입장 등을 좀 더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브루스 후드 지음 / 중앙북스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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