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우 소설가 문화칼럼니스트

한국과 중국, 일본은 같은 문화권으로 공통점이 많다. 젓가락을 사용하는 것도 그중 하나다. 그런데 삼국의 젓가락은 저마다 모양이 다르다. 중국의 젓가락은 끝이 뭉툭하고 일본은 가늘고 날카롭다. 한국은 그 중간쯤 된다. 젓가락이 중국에서 건너와 한반도를 거쳐 일본으로 건너간 것이라면, 젓가락은 한 번 건너 뛸 때마다 그 끝이 더욱 뾰족해진 셈이다.

일본의 음식은 손이 굉장히 많이 가는 것들이 많다. 조리 과정뿐 아니라 음식을 차려낼 때 마치 그림을 그리거나 조각품을 빚는 것처럼 공을 많이 들인다. 그래서 젓가락을 들이대는 것이 부담스러울 정도다. 젓가락질을 하려면 섬세한 손놀림이 필요하고, 젓가락 끝이 뭉툭 해서는 먹기가 힘들다.

그래서인지 일본 문화를 규정하는 특징 중 하나로 섬세함을 꼽는다. 작은 것에 신경을 쓰고 그것을 통해 상대를 배려하고 신뢰를 얻는 것이다. 독도 문제 등 나라 차원에서는 영 아니지만, 그들이 오늘날 이만큼 성장하고 성과를 이룬 것은 그들 문화 깊숙이 뿌리 내린 섬세함 때문이기도 하다.

일본의 화장품, 건강식품 회사인 긴자마루칸의 사이토 히토리 회장도 작은 것의 차이, 즉 섬세함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는 자신의 저서 ‘철들지 않은 인생이 즐겁다(비전코리아 간)’에서 이렇게 말한다.
“아무리 회사가 크고 연간 매출이 몇 십 억, 몇 백 억이니 해도 하는 일을 들여다보면 그 차이는 아주 미미합니다. 작은 차이를 추구해 왔기 때문입니다. 사장님은 좋은 사장이 되기 위해, 사원은 좋은 사원이 되기 위해 작은 차이를 만들어내기만 하면 됩니다. 이 세상은 생각보다 훨씬 단순합니다.”

그는 라면 가게를 예로 들어 이렇게 설명한다. 라면은 어느 집에서나 면과 국물, 건더기가 들어간다. 차이라면 손님을 대할 때 항상 웃는 얼굴인지, 친절하게 대하는지, 청소는 깨끗하게 했는지 정도일 뿐이다. 다행히도 이런 차이는 누구나 노력만 하면 따라잡을 수 있다. 따라서 불가능한 일은 이 세상에 없다. 무엇이든 가능하다. 선발주자가 벌려 놓은 작은 차이를 부지런히 좁혀 나가다보면 어느새 여러분이 앞지르는 날이 온다.

이런 소신 덕분인지 그는 일본에서 유일하게 1993년부터 2005년까지 12년간 일본 사업소득 전국 고액납세자 총합 순위 10위 안에 들었다.

중국인들은 뭉툭하게 생긴 젓가락처럼, 세밀함이 부족하다는 인식이 퍼져 있다. 메이콴시(沒關系)라 하여 ‘상관없다’거나 차부뚸(差不多)라 해서 ‘별 차이 없다’라는 말이 그렇다. 하지만 최근 ‘디테일의 힘’이란 책이 무려 400만부나 팔리고 기업에서도 디테일 경영을 도입하고 있다.

중국의 공항 검색대에 승객들의 서비스 만족도를 체크하는 서비스 버튼을 설치해 무뚝뚝하기로 유명한 출입국 관리국 직원들의 얼굴에 미소가 돌도록 하고, 은행에서 번호표를 나누어 주어 혼잡을 피하도록 한 것도 ‘디테일의 힘’ 덕분이라고 한다.

중국 사람들도 이런 마당에 우리는 여전히 사소한 것을 ‘너~무’ 사소하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 입을 꾹 다물고 대꾸하지 않는 택시 기사, 주문을 해도 들은 척 만 척 하는 식당 종업원, 위압적인 자세로 운전자를 다그치는 주차 관리원 등 사소한 것 때문에 기분 상하는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런데도 ‘사소한 것에 목숨 걸지 말라’거나, 섬세한 것을 ‘쫀쫀하다’거나 남자답지 못하다며 비웃기도 한다.

돈을 많이 벌어 부자가 되거나 좀 더 행복해지기 위해선, 더 많이 ‘쫀쫀해져야’ 한다. 티끌 모아 태산이라는 말도 맞고, 부뚜막의 소금도 넣어야 짜다는 말도 맞고,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는 말도 맞다. 다 맞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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