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심현정 영화음악감독. (사진: 박선혜기자) ⓒ천지일보(뉴스천지)

영화 속 선율로 관객 울리는 ‘감동’ 마술사
어려운 시기 때 마다 새로운 길 개척해
풍부한 감수성과 예술인의 강단 겸비

[천지일보=이현정 기자] 영화 속 선율로 관객의 가슴을 울리고 웃기는 감동마술사 ‘영화음악(film music)’. 장면의 리듬과 색조를 표현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보이는 영화음악은 영화의 또 다른 해설자로 관객의 슬픔과 행복, 서사적인 감정을 끌어낸다. ‘이 음악엔 이 장면!’으로 영화를 떠올릴 만큼 영상미학적 매력을 한층 돋보이게 하는 영화음악은 현대인들에게 새로운 ‘힐링캠프’로 부상했다.

특히 올해 초 안방극장을 눈물과 감동으로 물들였던 MBC 다큐멘터리 ‘남극의 눈물’에서는 황제펭귄의 희로애락이 다양한 선율과 만나 두 배의 감동을 선사했다. 이처럼 영상미학적 완성도와 감동을 끌어내는 데 탁월한 힘을 불어넣어 주는 것이 영화음악이다.

가을장마가 뜨거웠던 9월 초, MBC 다큐 ‘눈물 시리즈’와 영화 ‘올드보이’ ‘아저씨’ 등 다수 작품의 음악을 작업한 심현정 음악감독을 만나 음악이 주는 ‘힐링’에 대해서 들어보았다.

◆“5살 취미로 시작한 피아노, 가장 힘든 시기 함께해”

“5살 때 동네 피아노학원에서 처음 피아노를 쳤어요. 취미로 하다가 얼마 후 다니던 성당에서 파이프오르간을 배우면서 서양음악을 공부하기 시작했죠. 고등학교 때 ‘서양음악을 전공해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오르간과를 지원했었죠.”

평범한 가정에서 자라 취미로 피아노를 시작하게 됐다는 심 감독은 자신이 다니던 성당에 파이프오르간이 생기면서 자연스럽게 서양음악을 배우고 연주하게 됐다.

지금도 흔하지 않은 파이프오르간은 당시에도 보기 드문 악기로 일반 피아노보다 연주하기 까다롭기로 유명하다.

몇 시간씩 넓은 성당 안에서 서양음악을 연주하며 청소년기를 보낸 심 감독은 어릴적부터 감수성이 풍부하고 때로는 소심한 소녀였다.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나서 본격적으로 서양음악을 전공해야겠다고 마음 먹고 서울에 있는 오르간과를 지원했다.

파이브오르간을 10여 년간 연주해온 그지만 대학진학에서 뜻밖의 난관에 봉착했다. 당시 오르간이 귀하던 시절 대학에서 실기용으로 오르간을 내놓지 못해 피아노로 대신해 시험을 치르게 했다. 그동안 피아노에서 손을 뗀 심 감독은 실기를 보기 위해선 다시 짧은 시간 안에 피아노 실력을 쌓아야만 했다.

단기간에 피아노 실력을 높이는 데 주력했지만 주변에서는 ‘안 된다’라는 부정적인 시선이 많았고 자문을 구했던 선생님조차 기대했던 대답을 들려주지 않았다. 심 감독 음악인생의 첫 좌절을 대학실기에서 맛본 것이다. 그래도 주저앉을 수 없을 만큼 음악을 좋아했던 심 감독은 작곡과를 지원했고 새로운 선택이 지금의 ‘영화감독’ 타이틀을 얻게 했다.

 

▲ 홍대 근처 작업실에서 심현정 영화음악감독. ⓒ천지일보(뉴스천지)
사실 돌이켜 보면 작곡과 지원은 우연같지만 운명적으로 이뤄졌던 일이다. 심 감독 친오빠의 친구가 작곡가를 다니고 있었고 심 감독에게 청감(聽感)테스트를 시도했다.

심 감독은 피아노를 보지 않고 귀로 들리는 계이름을 정확하게 말하면서 작곡가의 기질을 주변에 나타냈다. 작곡가는 연주기술보다는 자신이 생각하는 음을 악보에 그려낼 줄 알아야 하는데 심 감독은 이것이 탁월하다는 것이다. 숨겨진 ‘절대음감’이 그를 새로운 인생으로 인도했다.

그렇게 작곡가의 길을 걷자고 다짐하게 됐고 졸업과 동시에 유학준비에 들어갔다. 본격적인 유학 전 어학연수를 위해 1년 반 동안 미국 현지에서 생활했다.

“어학연수와 유학생활 동안 가장 힘든 시기를 보냈던 것 같아요. ‘평범한 집에서 온실 속 화초처럼 조용하고 어려움 없이 자라왔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어요. 그만큼 그동안 겪지 못한 육체적․정신적 어려움을 몽땅 겪은 것 같아요.”

친분이 있는 지인이 미국 한적한 시골에 살고 있어 그 집에서 홈스테이하면서 어학연수를 시작했던 심 감독은 언어의 장벽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고 한다.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았던 유학절차도 마음을 애태웠고 현지에서 일어난 사건사고의 목격자가 돼 경찰서를 오가면서 받은 조사과정 등도 그의 마음을 무겁게 했다.

또 유학생 신분으로 아르바이트 하면서 겪었던 타향살이도 빼놓을 수 없지만 무엇보다 예술인으로서 대화가 통화는 사람이 없다는 게 그를 가장 힘들게 했다.

긴 터널 같은 1년 반의 어학연수 생활을 끝내고 심 감독은 뉴욕대학교 대학원에 들어갔다.

심 감독은 뉴욕에서 또 한번 새로운 인생의 터닝포인트를 맞는다. 바로 ‘영화음악’이다.

‘영상에 맞춰 자작곡을 삽입하는’ 영상음악 과제에서 교수와 동기들이 극찬을 하며 심 감독의 재능에 박수를 쳐줬다. 심 감독은 “‘아~ 내가 이런 재능도 있구나’라는 걸 그때 처음 알았어요.”라며 살며시 웃어 보였다.

◆‘음대 출신·유학파’ 타이틀 버리고 뛰어든 영화판

유학을 마치고 한국에 들어온 심 감독은 새로운 재능을 찾았지만 현실에 부딪히고 말았다.

귀국 후 가세가 많이 기울었다는 것을 피부로 와 닿을 정도로 집안이 어려웠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학생 때와는 확연히 다르게 사회인으로서 받아들이게 된 집안의 환경은 결혼도 마
다하고 영화판으로 뛰어들게 했다.

10년 전만 해도 영화음악 분야가 지금처럼 체계가 잡혀 있지 않았다. 지인의 소개로 스튜디오에서 스스로 걸레를 들고 청소하기 시작한 심 감독. 음대 출신에 유학파 그리고 여자가 영화판에서 일한다는 것이 좀처럼 쉬운 시기가 아니었기에 텃세도 만만치 않았다.

그럴수록 관계자와 더욱 친해지려 노력하고 매일같이 스튜디오에 나와 얼굴을 내비쳤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만나게 된 작품이 바로 ‘올드보이’다.

“‘올드보이’ 시나리오 보면서 눈물을 뚝뚝 흘렸어요. 그 정도로 시나리오가 매우 좋았고 그동안 마음고생 했던 게 주인공이처한 상황과 비슷했다고 할까요. 공감대가 생기니까 그에 맞는 음악을 만들게 됐고 영화에 입혔을 때 잘 스며든 것 같아요.”

영화 ‘올드보이’의 ‘미도의 테마: The Last Waltz’는 심 감독 음악인생의 전반이 녹아들어 탄생된 음악이었던 것이다.

심 감독은 이어 ‘아저씨’에 참여해 2010년 대한민국영화대상 음악상을 거머쥐었다. 연이은 홈런이 아니라 그 사이사이 사랑받지 못한 작품도 무수하다. 그래도 여러 경험을 소중히 여기고 끊임없이 창작이란 고통을 숙명처럼 받아들이고 사랑해온 심 감독은 음악을 통해 감동을 주는 현대인들의 새로운 힐링을 선사하고 있다.

“저도 내 안에서 날 찾으려고 하면 답이 안 나올 때가 있어요. 오히려 자신을 버리고 떠나보면 어떨까요. 조촐하게 짧은 여행이든, 템플스테이든 답이 없는 자신의 상황에 갇히지 말고 진짜 내 길이 무엇인지 돌아보는 시간이 큰 힘이 되곤 하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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