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송범석 기자] “커다란 산 속에 나만의 ‘아주 작은 숲’을 만들고 그 숲 앞에 처음 섰던 날, 금빛으로 빛나던 귀룽나무와 가랑잎 더미를 뚫고 올라온 산괴불주머니의 꽃봉오리가 가슴을 설레게 하던 그 느낌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그 설렘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반디지치나 백선의 꽃에 떨리는 손끝을 처음으로 갖다 대던 어린 시절의 마음을 다시 살아나게 했습니다.”

자연을 관찰하고 그것을 일기로 쓰는 일은 부지런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1년에 단 몇 번을 가더라도 사랑하는 마음으로 주변을 살펴보고 사진을 찍거나 글로 기록해 둔 다음 잊지 않고 가끔씩 찾아 읽어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멋진 생태일기가 된다.

2009년 3월부터 2010년 2월까지 서울특별시에 위치한 북한산 정릉탐방센터의 숲 한 자락에 자라고 있는 식물들을 섬세하고 다정한 시선으로 그려낸 책이다. 매일매일 숲을 체험하며 관찰한 저자가 작은 생명들의 소소한 변화를 생생하게 그려낸 130여 컷의 세밀화와 함께 숲의 풀과 나무들을 들여다본 시간들을 새겨넣었다.

책 서두에서 ‘봄’을 맞이한 저자는 어떤 신비한 섬에 온 것만 같다고 고백한다.

“부서질 듯 가련한 것들이 드문드문 살며시 고개를 내민다. ‘아, 올라오는구나’라고 생각하는 그때, 내 머리 위 허공에 팔을 벌리고 선 것들에게서 연하고 둥글고 봉긋봉긋한 것들이 느릿느릿 터져 나온다. 나무들은 가지마다 온갖 형상을 한 손을 달고는 손가락 하나하나에 온 신경을 곤두세운 춤꾼처럼 느릿한 춤을 추기 시작한다.”

가을은 ‘연주의 계절’이다.

“내가 푸른 꽃 곁에 앉아 웃음소리를 듣는 동안 허공에 팔을 벌리고 선 것들에게서 색을 조율하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거칠 대로 거칠어진 청록을 곱게 다듬어 내는 소리, 노란 물 두 방울, 빨간 물 (아주 작은 방물로) 세 방울쯤, 주황물 한 방울… 이렇게 떨어뜨리는 소리, 섞어 보는 소리. 이 소리는 어느 날 늦은 날부터 박자를 당기기 시작한다. 이 갑작스런 당김음은 한숨 돌릴 틈을 좀처럼 주지 않는다. 박자가 안 맞는 것 같은데도 술술 넘어가기도 하고, 어떤 음은 더 짧게, 어떤 음은 더 길게 연주하면서 그 틈을 이용한 사이음을 치기도 하다가 마침내는 박자도 세지 않는다.”

이처럼 책은 계절을 유쾌하고 화려하게 즐기는 숲의 풀과 나무들의 이야기를 통해 숲을 체험하는 법, 숲과 교감하는 법, 관찰일기 쓰기는 법 등 숲과 친해지는 방법을 수록했다.

강은희 지음 / 현암사 펴냄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