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태권도협회 심판분과 박용범 부위원장

태권도, 세계적으로 상향평준화… 그래도 한국이 최고
국가대표 선수 빨리 뽑고 경험 쌓게 하는 것이 중요해

[천지일보=송범석 기자] 지난 런던올림픽에서 태권도 종목은 여러 가지 의미를 남겼다. 일단 8체급 금메달 주인공들의 국적이 전부 달랐다는 점에서 흥행에는 성공했다는 평가다. 특히 연일 태권도 경기장 8천여 석이 매진돼 눈길을 끌었다. 전자호구제와 비디오판독 도입으로 판정시비도 거의 없었다.

문제는 우리나라 선수의 성적이었다. 세계적으로 상향평준화가 이뤄지면서 4체급에 출전해 금 1개와 은 1개 수확에 그쳤다. 당시 국내 언론들은 한국 선수들이 전자호구제 도입으로 인해 확 달라진 시스템에 적응하는 기간이 너무 짧았다는 자조 섞인 성토를 내놨다. 단조로운 패턴과 소극적인 공격이 부진의 원인이라는 목소리도 많았다.

이에 대해 대한태권도협회 심판분과 박용범 부위원장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소리”라고 꼬집었다. 14일 기자와 만난 그는 “태권도는 이미 세계적으로 기술도 보편화됐고, 실력도 평준화가 됐다”고 인정하면서도 “그래도 우리나라 선수들은 세계 최고 수준임이 틀림없다”고 자신했다.

그는 무엇보다도 국가대표 선수들을 빨리 뽑고, 코치와 감독진을 일찍 구성해서 선수들이 경험을 많이 쌓도록 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단 올림픽 같은 세계적인 대회를 준비하려면 1년 정도는 대비 기간을 가져야 해요. 좋은 선수를 선발하고 교육을 최소 1년은 해가면서 선수와 코치가 교감을 갖는 게 중요해요. 그런데, 지금은 6개월 전쯤 뽑아서 대비를 하니까 아무래도 시간이 모자라죠. 시간이 짧으면 코치가 선수의 특성을 제대로 파악하기도 힘든 게 당연하고요. 일찍 선발된 선수들에게 세계대회에 자주 나가게 해서 경험을 쌓도록 하는 것도 꼭 필요하죠.”

태권도가 강세인 외국의 경우, 스타급 선수 몇 명을 일찌감치 선발해서 여러 세계대회에 출전을 시키고 있다. 그렇다 보니 한 선수가 많은 경험을 축적하게 되고 다른 나라 선수의 여러 스타일에도 잘 적응을 할 수 있게 된다는 것.

“그 정도로 시스템 구축이 중요해요. 우리는 너무 급하게 준비하는 감이 있어요. ‘태권도 종주국이니까’라는 생각을 버리고, 외국의 좋은 시스템이 있다면 받아들여야 해요. 물론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예산은 정부 차원에서 지원을 해야 합니다. 우리 선수들 실력은 최고이기 때문에 시스템만 갖추면 얼마든지 더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습니다.”

외국 심판진의 운영 미숙도 개선해야 하는 부분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외국의 경우엔 한 나라에 국제적인 태권도 심판이 소수가 있어요. 그 심판들이 세계대회를 나가게 됩니다. 그런데 참가 포인트제가 있어서 대회에 참석하면 할 수록 소수에게만 점수가 몰리고, 점수가 높아지면 그 사람이 계속 국제 대회에 나가게 돼요. 그런데 외국 심판들은 객관적으로 우리나라 심판에 비해 상당히 실력이 달립니다. 한국의 C급 정도 심판 수준이랄까요. 그런 문제가 올림픽에서 발생하죠.”

올림픽에는 각 나라에서 1명의 심판만 나올 수 있다. 그렇다 보니 실력이 좋던, 좋지 않던 일정하게 세계대회에서 심판을 본 경험이 있으면 국가대표 심판으로 올림픽에 나가게 된다. 문제는 그러한 심판이 제대로 판정을 내리지 못해 태권도 선수들이 많은 피해를 입어왔다는 점이다. 전자호구제가 도입된 것도 사실 이런 맥락에서 기인한다.

“이제 전자호구제 무용론이라든지, 이런 것은 말이 안 돼요. 이미 실시하기로 했으니까 할 수밖에 없어요. 전자호구제를 놓고 갑론을박하지 말고 심판부터 체계적인 교육을 시켜야 돼요. 우리나라는 그런 시스템이 상당히 잘 갖춰져 있습니다. 일정한 교육을 받아야 심판자격을 얻을 수 있죠. 외국 심판들도 이런 교육을 받아서 정확한 지식을 습득해야 합니다. 국제 심판이 한 번 실수를 하면 선수에게 씻을 수 없는 큰 상처를 남깁니다. 상대 선수에게 1점을 더 주고, 경고를 안 받을 것을 경고를 주면 선수는 엄청나게 위축이 됩니다. 따라서 국제 심판 교육이 중요해요.”

한편 박 부위원장은 서울 동대문구에서 1989년부터 지금까지 태권도장 관장으로 일해 왔다. 지금은 전농2동에서 ‘태비박사 경희대 태권도장’을 운영하고 있다. 심판으로서 느끼는 태권도와, 관장으로서 느끼는 태권도는 비슷하면서도 또 다르다는 게 그의 말이다.

“태권도 시합에 전자호구제가 도입된 것처럼, 태권도장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어요. 지금은 태권도가 생활스포츠로 자리 잡아서 태권도 외에도 성장촉진체조, 축구클럽 등 여러 가지를 곁들여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요소를 같이 진행하고 있습니다.”

물론 예나 지금이나 달라지지 않은 게 있다. 태권도의 근본인 ‘예(禮)’다. 사실, 태권도는 격투기가 아니다. 본디 태권도는 예절을 배우고 법도를 몸에 익히기 위한 수행법의 일종이다. 그래서 박 부위원장은 아이들을 위해 태권도 수업 종료 5분 전에 음악을 틀고 명상을 하게 한다. 명상 주제는 효도, 인내, 극기 등이다.

인터뷰 말미에 박 부위원장은 시대가 변해도 달라지지 않는 게 있는 반면, 시대에 적응해야 하는 것도 분명히 있다고 강조했다.

“억지로 아이들에게 주입식 교육을 하는 것보다 명상을 통해 자연스러운 인성교육을 하니 반응이 참 좋습니다. 예절이라는, 변하지 않는 가치를 지키면서도 여러 가지 새로운 요소를 곁들여 태권도를 딱딱하게 느끼지 않도록 애를 쓰고 있습니다. 물론 태권도만 하는 것을 원하시는 분도 있지만, 대부분 부모님들이 이런 프로그램을 좋아해요. 시대가 변해도 분명히 지켜야 할 것이 있는 반면 시대에 맞게 변화해야 할 것도 있습니다. 우리 태권도계가 이 점을 분명히 인식하면 훨씬 더 발전할 게 틀림없습니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