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논 한가운데 서있는 ‘굴산사지 당간지주’의 정면과 측면 모습. ⓒ천지일보(뉴스천지)

당간지주, 사찰 행사 때 걸어 두는 깃발 고정 역할

[천지일보=박선혜 기자] 강원도 강릉시 구정면 학산리 논 한가운데에 당당하게 서 있는 돌기둥 두 개가 눈길을 끈다. 상단과 하단에 각각 뚫어진 구멍이 같은 위치에 있는 것으로 보아 무엇인가를 끼워 사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 돌기둥의 이름은 ‘당간지주’다. 예부터 절에서 행사가 있을 때에는 입구에 ‘당(幢)’이라는 깃발을 달아두는데, 이때 깃발을 달아두는 장대를 당간(幢竿)이라고 하며 이 당간을 양쪽에서 지탱해 주는 두 돌기둥을 지주(支柱)라고 한다. 당간지주는 사찰 앞에 세워지며 신성한 영역을 표시하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특히 강릉시 구정면 학산리 논 한가운데 있는 이 당간지주는 정식 명칭이 ‘굴산사지 당간지주’로 국가 보물 제86호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규모를 자랑한다.

원래 이곳은 신라 말 범일국사에 의해 크게 중창됐다고 알려진 ‘굴산사’라는 사찰이 있었던 터이다. 당시 굴산사는 강릉 인근에서 가장 큰 절이었다. 이는 국내에서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당간지주의 크기를 고려했을 때 사찰의 규모도 짐작할 수 있다.

▲ 당간지주에 뚫린 구멍으로, 깃발을 걸었던 깃대를 고정시키는 역할을 했다(위). 논 한가운데 서있는 ‘굴산사지 당간지주’의 정면 모습(아래). ⓒ천지일보(뉴스천지)
굴산사지 당간지주는 현재 밑 부분이 묻혀 있어 지주 사이의 깃대 받침이나 기단(基壇) 등의 구조를 확인할 수가 없다.

두 지주의 4면은 아무런 조각이 없으며, 밑면에는 돌을 다룰 때 생긴 거친 자리가 그대로 남아 있다. 대부분의 당간지주가 측면 등 외부 각 면에 굵은 선문(線文)이나 음각의 홈을 파서 일반형의 양식을 보이고 있는데, 이 지주만은 그렇지 않고 가공도 매우 소박한 형식을 보인다.

서로 상대되는 내측 면과 외측 면은 수직을 이루고, 전후 양면은 거의 상부까지 수직으로 평면을 이뤘으나 상단에 이르러는 그 정상부를 양측에서부터 차츰 둥글게 깎아 곡선을 이루고 있다.

정상 끝은 뾰족한 형상이었을 것으로 보이나 지금은 남측의 끝 부분이 약간 파손된 상태다. 또 깃발을 걸었던 깃대를 고정한 구멍은 위․아래로 두 군데 있다. 상부에는 상단 가까이에 둥근 구멍을 파서 간을 시설하였고, 하부는 3분의 1쯤 되는 곳에 둥근 구멍을 관통해 간(杆, 당간을 고정하는 것)을 끼우게 했다.

현재 굴산사의 흔적은 당간지주만이 유일하다. 절이 언제 폐사됐는지 기록은 남아 있지 않지만, 이 지역이 역사적으로 지방 호족 세력의 근거지였다는 것으로 보아 고려가 왕권을 강화하면서 절을 없앤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한편 이 당간지주 위쪽으로 차 한 대가 지나가는 길을 올라가면 보호각에 둘러싸인 ‘석조비로자나불’을 볼 수 있다. 또 당간지주 아래 마을로 내려가면 범일국사의 것이라 전해지는 ‘부도(浮屠, 승려의 사리나 유골을 봉안한 묘탑)’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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