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   랍

이우걸(1946~  )

인내를 갈무리해온 고요한 명상의 나라, 밀회처럼 숨겨온 달콤한 비밀의 나라,
희망을 가꾸기 위해 간직해온 지혜의 나라…

시든 꽃다발은 꽃다발이 아니다
또 다시 빚어야 할 신생의 아침을 위해
수없이 열고 닫으며 나는 나를 다그친다.

자기만의 서랍을 갖고 살아간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아무도 모르게 열어보고는 또 닫고, 그러면서 키워가는 꿈. 그 꿈의 서랍을 지니고 산다는 것이 어쩌면 행복인지도 모른다.
어느 사람은 그 서랍 속 자신의 머나먼 미래에의 희망이 담겨져 있을 것이고, 어느 사람은 빛바랜 흑백사진 같은 소중한 추억이 담겨져 있을 것이다. 또 어떤 사람은 하루하루 커가는 적금통장이 담겨 있을지도 모른다.
마음 깊은 곳 간직한 서랍. 오늘도 남모르게 열어보고는 닫는 나만의 비밀의 서랍. 그리하여 꿈꾸는 나만의 밀회처럼 숨겨둔 비밀의 나라. 마음 깊은 곳 자기만의 서랍을 지니고 살아간다는, 그리하여 여닫을 수 있는 행복, 하나쯤 지닌다는 것. 삶의 또 다른 기쁨이 아니겠는가.

윤석산(尹錫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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