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윤 소설가

진나라 왕 정과 개인적 감정이 있는 연나라 태자 단은 여러 가지로 보복할 방법을 찾았으나 여의치 않았다. 진나라가 주변국들을 차츰 침략하자 연나라도 불안해졌다. 그즈음 진나라 장군 번어기가 죄를 짓고 연나라로 망명해왔다. 태자 단이 시종 국무에게 의논하자 장군 번어기를 흉노로 보내고 주변국들과 맹약을 맺으면 길이 열릴 것이라고 조언을 했다.

“당신의 계략대로 하려면 시일이 걸릴 것이오. 나는 지금 초조한 상태요. 그리고 번 장군은 몸 둘 곳이 없어 나를 찾아왔소. 지금 진나라의 위협을 받는다고 해서 그를 흉노 땅으로 쫓아 버릴 수는 없는 일이오. 내 목숨을 내놓고라도 감싸 주고 싶소. 그러니 다른 방법을 생각해 주시오.” 국무가 다시 말했다.

“눈앞의 사소한 일에 사로잡혀 원한을 사게 됩니다. 한 사람과의 교제를 중시하여 국가의 큰 해를 돌보지 않으십니다. 지금 태자께서 하시려는 일은 이와 같습니다. 그렇게 하시면 진나라의 반감을 사고 화를 초래합니다. 강대한 진나라로서는 연나라를 공격하는 것은 쉬운 일입니다. 그런 야수와 같은 진나라에게 개인적 원한으로 무모한 행위를 한다는 것은 납득이 가지 않습니다. 저에게는 별다른 방책이 없습니다만, 다행히 연나라에 명성이 높은 전광이라는 인물이 계십니다. 그는 사려가 깊고 용감한 분이니 그 분과 상의해 보십시오.”

국무의 말이 끝나자 태자 단은 전광을 꼭 만나고 싶다고 소개해 달라고 요청했다.

전광을 찾아간 국무가 선생을 모시고 태자가 나랏일을 상의하고 싶어 한다고 하자 그는 정중하게 허락하고 궁전으로 들어갔다. 태자 단은 전광을 공손하게 안으로 안내하여 무릎을 꿇고 객석의 먼지를 손수 털었다. 그 자리에 전광이 앉자 태자는 주위를 물리고 자리에서 내려와 말했다.

“연나라는 강대국 진나라에 맞설 수가 없습니다. 선생의 높은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전광이 대답했다. “준마는 하루 천 리까지도 달립니다. 그러나 늙고 나면 노둔한 말보다 못합니다. 태자께서 알고 계시는 저도 역시 옛날의 제가 아니고 이렇게 늙었습니다. 그러나 국사에 관한 일이고 보면 그냥 있을 수가 없습니다. 제가 가까이 하고 있는 형가라면 도움이 될 줄 압니다.”라고 말하자 태자는 그 사람을 소개해 달라고 요청했다. 전광은 흔쾌히 승낙하고 그 자리에서 물러나갔다. 태자는 그가 떠나는 자리의 문간에 서서 전송하며 당부했다.

“저와 나눈 말은 모두가 나라의 큰일이니 누구에게도 말하지 마십시오.” 전광은 고개를 숙이고 웃으며 명심하겠노라고 말했다. 전광은 궁전을 나와 바로 형가를 찾아갔다. 형가가 반갑게 그를 맞이했다. 자리에 좌정한 전광이 형가에게 말했다.

“나는 지금 태자의 부름을 받고 만나고 오는 길인데, 태자께서는 젊은 시절의 나를 알고 있을 뿐 이렇게 늙은 것도 모르고 계셨습니다. 태자는 연나라가 진나라에 결코 맞설 수 없는데 어떻게 하면 좋으냐고 물으셨습니다. 그래서 나는 당신을 생각하고 태자께 당신을 추천했습니다. 그러니 태자를 만나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형가가 공손히 승낙했다. 그러자 전광은 형가에게 덧붙여 말했다.

“태자는 나라의 큰일에 관한 것이니 남에게 말하지 말라고 나에게 말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나는 일단 태자에게 의심을 받은 것입니다. 남에게 자신의 행동을 의심 받는다면 이미 의사라고 할 수 없습니다. 태자를 만나거든 이렇게 전해 주시오. 전광은 이미 이 세상에 없으며 비밀은 영원히 지켜졌다고.” 그렇게 말한 전광은 칼로 목을 바로 찔러 자결해 버렸다.

형가는 태자를 만났다. 그는 우선 전광의 자결과 그가 남긴 말을 전해 주었다. 태자는 머리를 깊이 숙이고 무릎을 꿇더니 형가를 잡고 눈물을 흘렸다. 태자는 이렇게 말했다.

“전광 선생에게 비밀을 지켜달라고 부탁한 것은 나라의 큰일을 성취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런데 죽음으로서 비밀을 지킬 줄이야, 어찌 그런 일이.” 하고는 말을 잇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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