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우 소설가 문화칼럼니스트

중국 춘추시대에 거문고를 기가 막히게 잘 타는 백아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에게는 자신의 거문고 소리를 기가 막히게 알아듣는 친구 종자기가 있었다. 백아가 산에 오르고 싶은 마음으로 거문고를 타면, 종자기는 “참으로 근사하구나, 하늘을 찌를 듯 멋진 산이 눈앞에 펼쳐지는구나!” 하였다. 백아가 또 강물을 떠올리며 거문고를 타면, 종자기는 또 “참으로 근사하구나, 아름다운 강물이 흘러가고 있구나!” 하였다.

그런 종자기가 죽고 없자, 백아는 거문고를 부숴버리고는 더 이상 거문고 연주를 하지 않았다. 이제 세상에는 자신의 거문고 소리를 알아주는 사람이 없다며 한탄했다. 소리를 알아 듣는 것처럼, 속마음을 알아주는 친구를 지음(知音)이라 하는 말이 여기서 나왔다. 지기지우(知己之友)도 같은 말이다.

친구하면, 우리나라에선 오성과 한음이 대표적이다. 한음(漢陰) 이덕형(李德馨, 1561∼1613)과 오성(鰲城) 이항복(李恒福, 1556~1618)은 조선 중기의 명신들이다. 둘은 막역한 친구사이였다. 이항복이 다섯 살 위지만, 그들은 나이를 잊고 사귀었다. 장난기가 대단하고 기지가 넘쳤던 둘은 숱한 일화들을 만들어냈다.

서당에서 공부할 때 스승이 졸자, 불이 났다고 외쳤다. 깜짝 놀라 눈을 뜬 스승은 제자들 보기가 무안했다. 그래, 한다는 소리가 “내가 잔 것이 아니라 공자님을 만나고 왔다”였다. 그러자 이번에는 오성과 한음이 함께 졸았다. 스승이 나무라자, 둘은 입을 맞춘 듯 자신들도 공자님을 뵙고 왔다고 했다. 스승이 “그래, 공자님께서 뭐라고 하시더냐?” 하고 물었다. 그들은 입을 모아 이렇게 말했다. “공자님께서는 스승님을 본 적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스승이 더욱 무안해졌다.

오성이 한밤중에 전염병으로 일가족이 몰살한 집으로 염습을 가게 되었다. 한창 염습을 하고 있는데, 시체 하나가 벌떡 일어났다. 오성이 깜짝 놀라 나자빠졌다. 알고 보니, 한음이 시체놀이를 한 것이었다.
이번에는 오성의 차례. 오성이 한음에게 “변소에서 불알을 당기는 도깨비를 만나 정승이 되는 예언을 들었으니, 너도 변소에 가서 앉아 있어 보라”고 했다. 오성은 노끈으로 한음의 불알을 매어 당겼다. 한음이 아프다 소리 하지 않고 견뎌내자, 오성은 “장차 정승까지 하겠구나” 하고 말해 주었다. 그리고는 오성이 그 일을 본 것같이 말하자, 한음은 그제야 속은 줄 알았다.

재치 넘치는 오성도 제 꾀에 넘어가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오성이 한음에게 “네 아내와 내가 정을 통하였네” 하였다. 이 말을 들은 한음 부인은 오성을 집으로 초대해, 똥이 든 떡을 먹였다. 그리고 이렇게 말하였다. “거짓말 하는 입에는 똥이 들어가야 제격이랍니다.”

현대에 들어서는 전 아무개 씨와 노 아무개 씨가 친구로 유명하다. 이 양반들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대통령을 하고, 감방에도 같이 다녀왔다. 이걸 두고 아름다운 우정이라고 말할 순 없지만, 친구를 잘 만나야 좋은 일도 생기는 법이라는 걸 ‘역사적으로’ 증명했다.

영화 <친구>에서 건달인 준석이가 이렇게 말한다. “건달이 쪽팔리면 안 된다 아이가.” 건달에도 급이 있어, 건달이면 건달다워야지, 양아치가 되면 안 된다는, 참으로 건달다운 말을 한 것이다.
지금 정치판에 때 아닌 친구논쟁으로 시끄럽다. 이 친구들은, ‘쪽팔리면 안 된다’는 건달만도 못하구나.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한다. 만약 한음의 아내가 다시 살아난다면, 똥이 든 떡을 만들어 먹일지도 모른다.
“거짓말 하는 입에는 똥이 들어가야 제격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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