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한우물 전기정수기 강송식 대표 ⓒ천지일보(뉴스천지)

(주)한우물 전기정수기 강송식 대표 인터뷰

‘내 몸에 가장 좋은 물’ 만들기 위해 각고의 노력
홍익인간 정신으로 모두가 부담 없이 마시게 할 것

[천지일보=김예슬 기자] “모든 것을 어떻게 생각하는가는 네 마음에 달렸다. 행복한 생활이란 많은 물건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항상 기억하라. 모든 것을 사리하라. 그리고 물러가 네 자신 가운데 침잠하라.”

이는 옛 고등학교 국어교과서에 실렸던 ‘페이터의 산문’에 나오는 말이다. 이제는 교과서에서 볼 수 없는 이 글을 지난 2004년 10개 일간지 광고 면에 실어 중·장년층의 추억과 향수를 불러일으킨 이가 있다. 바로 (주)한우물 대표 강송식(75) 씨다.

부항과 한우물 전기 정수기, 마음의 평안을 자신에게 있어 ‘3가지 보물’이라고 말하는 강 씨. 그중에서도 마음의 평안을 제일로 꼽는 그를 지난달 말 경기도 고양시에 있는 (주)한우물 사무실에서 만났다.

◆교직생활보다 뿌듯한 물 전도사의 삶
“교직생활을 하면서 ‘내가 과연 좋은 선생인가, 남의 귀한 자식을 가르칠 자격이 있는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했어요. 그러다가 내가 직접 효과를 본 부항의 효능을 알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과감히 교단을 떠났죠.”

지난 1982년 강 씨는 20년 가까이 몸담은 교단을 떠났다. 건강이 나빠지면서 접하게 된 부항과 자연요법의 효능을 사람들에게 알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술보다 사람이 좋아 젊은 시절부터 술자리를 즐겼다던 그는 어느 순간 간염과 고혈압, 동맥경화에 걸려 수업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불과 40대 초반에 벌어진 일이다.

이후 그는 집과 병원을 오가며 치료를 받았으나 별 차도가 없었다고 한다. 그러던 중에 지인의 소개를 받아 부항과 자연요법을 알게 됐고 이를 시작한 지 20일 만에 건강을 되찾을 수 있었다.

강 씨는 건강을 회복한 뒤 학교로 돌아왔으나 이전에 느낀 교직생활에 대한 단순한 회의감 이상으로 자신의 진로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하게 됐다.

“당시만 해도 부항에 대해서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어요. 고심 끝에 내 담당 과목이던 영어는 내가 아니더라도 가르칠 사람이 많겠다 싶어 선생을 그만뒀죠.”

그렇다고 그의 교직생활이 무료했던 것은 아니다. 그도 서울 시내에서 알아주던 교사였다. 이 때문에 강 씨의 퇴직(?) 소식은 당시 여러 교사와 언론의 관심대상이 되기도 했다.

부항에 대한 확신으로 교직을 떠난 강 씨. 그러나 그는 지금 부항 전도사가 아닌 물 전도사로 26년째 일해오고 있다.

물 전도사의 길을 걷게 된 것은 부항과 자연요법을 병행하던 중에 물에 대한 관심이 많아지면서부터다.

“부항을 뜨면서 먹는 것에도 신경을 쓰면 건강이 빨리 회복되니까 자연요법도 병행하게 됐습니다. 그러면서 물에 대한 관심이 많아졌어요. 물을 끓이면 산소도 영양소도 파괴돼 ‘죽은 물’이 되는데 이러한 물은 아무리 먹어도 건강에 이로울 게 없으니까요.”

그때부터 ‘어떻게 하면 끓이지 않고 좋은 물을 먹을 수 있을까’를 고민해왔다. 당시에는 정수기도, 파는 물도 많지 않았던 때.

이 같은 고민을 할 당시 그는 한 물 연구가와 인연이 닿았고 누구나 마음 놓고 먹을 수 있는 물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전기분해를 통해 약알칼리수가 나오게 하는 지금의 한우물 정수기다.

한우물 정수기는 2004년 미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의료기기로도 인정을 받았다. ‘몸에 가장 좋은 물’을 공급하기 위해 수년간 노력한 강 씨의 마음이 세계에서도 통한 것이다.

◆‘정심운동’ 벌이고 싶어
한우물 시음용 생수병에는 ‘한우물을 만나는 날은 복 받는 날’이라는 문구가 프린트돼 있다. 병에 복을 담아 건네는 강 씨지만 사실 그에게 있어 가장 큰 보물은 따로 있다. 바로 마음의 평안이다.

오죽하면 ‘페이터의 산문’ 전문을 광고로 실을 때에도 ‘한우물의 전해 약알칼리수가 아무리 몸에 좋다 해도 마음의 평안보다 더 좋을 수는 없습니다’라는 문구를 삽입했을 정도. 그의 사무실에 걸린 액자에도 ‘정심’이라는 글자가 담겨있다. 직원들은 이 두 글자를 강 씨로부터 하도 많이 들어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다.

강 씨가 ‘마음의 평안’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 때는 고등학생시절이다. 그는 얽매이기 싫어하는 다소 엉뚱한 소년이었다. 이러한 점은 중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부터 드러났다.

“군산에서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졸업했어요. 그러다가 그 지역에서 2번째로 좋다는 고등학교에 입학했는데 3일 만에 그만뒀지요. 그때부터 제 엉뚱함이 드러난 것 같아요.”

강 씨가 학교를 자퇴한 이유는 정말 간단하다. 담임교사가 별일 아닌 것에 혼을 내는 것을 보고 앞으로 학교생활이 어렵겠다는 판단에서다.

그 길로 그는 어머니에게 가출을 허락(?)받고 서울로 상경했다. 그러나 서울에 연고가 없던 그는 1년간 고생을 하며 틈틈이 공부해야 했다. 배가 고파 기절도 해봤다.

그는 인쇄소 공장에서 일을 배우면서 모퉁이에 있는 교정책상에서 새우잠을 자고 짬짬이 영어 단어 등을 외웠다. 그렇게 일과 공부를 병행한 그는 1년 뒤 경기고등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다.

그렇게 어려운 환경 속에서 스스로 공부해 경기고에 입학한 그는 흔히 대학생이 많이 하는 입주가정교사를 했다. 그가 입주가정교사를 한 곳은 이른바 ‘회장님댁’이라 할 정도로 부유한 곳이었다. 그러나 입주가정교사를 하면서 잘사는 것과 행복의 관계성에 대해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부자임에도 가족관계가 좋지 않은 곳도 있었기 때문.

고등학교 때 극과 극의 생활을 겪은 그는 고3 국어교과서에 실린 ‘페이터의 산문’을 즐겨 읽었다. 이 글을 좋아해 늘 가지고 다니고 지인들에게 나눠주기도 했다.

“이 글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마음 편한 게 최고’라는 겁니다. 보통 어렵게 생활한 사람들이 부자가 되겠다고 악착같이 일하는데 저는 회의감이 들어 일찌감치 ‘마음 편한 게 최고다’라는 생각을 한 것이죠.”

그에게 있어 그러한 생각은 지금도 변함없다. 그는 “100만 원이나 있는 사람과 1000만 원밖에 없는 사람은 차이가 난다. 마음이 편하기 위해서는 항상 사물이나 상황의 긍정적인 면을 보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우리나라도 정심운동을 벌여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모두가 편안한 마음으로 행복하게 잘 살았으면 좋겠다. 나도 물을 통해 사람들에게 복을 나눠주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겠다”고 진심이 담긴 포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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