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조선일보가 나주 어린이 성폭행 사건 범인 고종석이라며 실었던 사진이 사건과는 무관한 사람으로 밝혀져 논란이 되고 있다. 조선일보의 이번 오보사건으로 성폭행범으로 몰릴 뻔한 피해자 A씨는 범인이 잡혔음에도 불구하고 생활이 엉망이 됐다고 한다.

개그맨 지망생이던 피해자는 이번 사건으로 이미지에 타격을 입을까봐 노심초사 걱정이 많아 잠을 이루지 못한다고 한다. 피해자에 따르면 조선일보가 사진을 잘못 낸 것을 알고 나서도 바로 사과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는 조선일보의 두 번째 실수다. 한 사람을 매장시킬 수도 있을 만큼 큰 실수를 저지르고도 즉각적인 사과가 없었다는 것은 언론으로서도 그리고 인정상으로도 다시없는 실수다.

이번 오보사건은 언론의 신중함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는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잘못된 보도로 인해 무고한 시민이 상처를 받고 피해를 입을 수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조선일보의 오보사건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7월 19일 조선일보 1면에 실린 태풍 카눈 관련 사진이 알고 보니 3년 전 태풍 때 찍은 사진이었다는 사실이 알려진 지 이제 겨우 두 달이 지났다. 조선일보 입장에서도 난처할 것이다.

비단 이런 오보 사태가 조선일보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특종을 좋아하는 언론의 특성상 ‘이슈가 될 것 같다’고 생각하면 사실 확인에 앞서 무턱대고 기사부터 내다보니 오보가 나기 일쑤다. 그저 남들보다 앞서, 다른 언론보다 앞서 보도하고 기사를 실어야 하니 다른 것이 눈에 들어올 시간이 없는 것이다. 이번 조선일보 오보사건처럼 뭔가 큰 실수를 하고 나서야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 또한 오늘날 언론의 현실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 이 시대 언론은 너무도 많다. 지면신문부터 시작해 인터넷언론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언론의 전성시대다. 미디어의 범람은 언론의 범람을 가져왔고, 언론의 범람은 외려 언론의 질을 향상시키는 데 걸림돌이 되었다고도 할 수 있겠다. 우후죽순 생겨나는 언론들 틈에서 살아남기 위해 선정적인 기사를 쓰거나 광고에만 의존하다 보니 제대로 된 기사를 접하기 힘들 때도 있다. 경쟁구도 속에서 기사의 질을 높이기보다 인터넷 유입량을 늘리기 위한 기사에 치우치다보니 자극적인 기사에 눈을 돌리게 되는 것이다.

기자라면 언제, 어디서, 어떠한 일이 일어나더라도 늘 사실에 입각한 기사를 써야 한다. 아무리 특종이 좋다지만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지레 짐작으로 쓰다보면 결국 실수를 하게 된다. 베테랑 기자라고 해도 말이다.
어느 한 쪽의 입장만을 듣고 마치 사실 검증이라도 한 듯 기사를 내보내고 기자로서의 의무를 다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만이자 직무유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일은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다. 이런 일은 방송에서도 마찬가지다. 오보와 왜곡이 상대방에게 어떤 피해를 입히고, 상처를 낼지 생각하지도 않고 오직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보도, 혹은 다른 한 쪽의 입장만을 옹호하는 보도행태는 결코 용납될 수 없는 범죄다. 왜곡된 방송과 보도가 이슈가 되고, 그것이 진실인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허나 그것은 아주 잠시잠깐뿐이다. 거짓은 반드시 드러나게 돼 있다. 어두움은 결코 빛을 이길 수 없다.

거짓과 왜곡으로 잠깐의 부귀와 영달을 누릴 수 있을지언정 그 허물이 드러나고 나면 그 죄에 대한 대가는 반드시 치르게 되어 있다.

언론이 언론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그 언론은 서서히 사장될 수밖에 없다. 기자 또한 마찬가지다. 기자가 기자로서의 사명을 망각한 채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보도하고 싶은 것만 보도한다면 편견과 거짓, 왜곡으로 가득한 기사만을 접하게 될 것이다.

누가 만들어냈는지도 모르는 편견과 오해로 인해 정작 보도해야 할 것을 보도하지 않고, 참과 거짓을 구분하고, 진실을 알려야 할 언론이 외려 권력자나 기득권자의 편에 서서 여론을 조작하고 있다면 이는 국민의 알 권리를 짓밟은 행위와 다를 바 없다. 아무리 인터넷이 발달하고 미디어가 범람한다고 해도 언론은 끝까지 남아 자기의 사명을 다해야 한다.

오히려 미디어가 발달할수록 진실을 찾고, 올바른 가치관을 심어주기 위해 더욱 힘써야 하는 것이 바로 언론과 기자의 역할이다.

기자가 더 이상 발로 뛰지 않는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발로 뛰고 가슴으로 전하면 반드시 진실을 찾아낼 수 있고, 국민은 언론을 신뢰할 수 있게 된다. 언론이 바로 서야지만 나라가 바로 설 수 있다. 한마디로 말해 언론의 사명이 막중하다고 할 수 있다. 시청률, 구독률, 유입량 경쟁에만 신경 쓰는 것이 아닌 진정한 특종, 언론을 바로 세우고 나라를 바로 세우는 일에 집중한다면 그렇게 바라고 원하던 특종을 잡을 수 있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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