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신부수업’ 중 한 장면이다. 사제서품식을 앞두고 신학생 규식이 신부에게 고해성사를 하고 있다.

[천지일보=장요한·박준성·이혜림 기자] 천주교 신앙을 하는 신자는 누구나 1년에 두 번 의무적으로 고해성사를 해야 한다. 하느님께 용서를 구하는 신앙 행위인 고해성사가 갖는 의미는 무엇이고, 고해성사는 신앙에 어떤 영향을 줄까.

◆고해성사 의미와 유래
천주교 신자들은 자신이 지은 죄를 뉘우치고 신부를 통해 하느님에게 고백하여 용서받는다는 의미로 고해성사(告解聖事)한다. 고해성사는 천주교에서 말하는 칠성사(7개의 종교의식) 중 하나다.

천주교 신자들은 1년에 두 번 정도 고해성사하는 것이 의무이나 ‘죄를 용서받아야겠다’는 마음이 설 때면 언제든지 치를 수 있다. 성사는 어른 입교 예식인 성세성사(천주교 세례)를 한 신자만 참여하도록 자격이 제한돼 있다.

천주교 교리서에 따르면 고해성사는 고백자의 세 가지 행위와 사제의 사죄로 이루어진다. 고백자의 행위는 통회(뉘우침), 고백, 보속이다. 천주교에서 보속은 지은 죄를 적절한 방법으로 ‘보상’하거나 ‘대가’를 치르는 것을 말한다.

고해성사를 집전하는 신부는 ‘사죄권(赦罪權)’을 가지고 있다. 천주교에선 신부가 되면서 ‘사죄권’이 부여된다. 신부들은 고해성사 시 고백받은 내용을 함부로 발설할 수 없다. 이 권한은 “누구의 죄든지 너희가 용서해 주면 그들의 죄는 용서받을 것이고 용서해 주지 않으면 용서받지 못한 채 남아 있을 것이다(천주교성경 요한복음 20장 19~23절)”라는 구절처럼 예수가 12사도들에게 줬으며, 사죄권이 주교들과 신부들에게 계승됨으로써 죄를 사하는 직무가 존속되고 있다는 게 천주교의 주장이다. 천주교에서는 직접 죄인들을 용서한 예수로부터 고해성사가 시작했다고 믿고 있다.

고해성사의 유래를 살펴보면 초기 고해성사는 지금과 달리 죄를 용서받는 조건이 상당히 까다로웠다. 당시에는 공개적으로 고해성사가 이뤄졌고 중죄를 지은 죄인은 정해진 기간 안에 공개적으로 속죄행위를 해야 용서받을 수 있었다.

이후 6세기까지 주교가 죄인에게 안수를 하는 형태로 변형돼 고해성사가 거행됐다. 당시 대죄는 일생에서 한 번만 용서받을 수 있어서 다시 죄를 범하면 용서받을 길이 없었다. 오늘날 고백하는 형태의 고해성사는 6세기 아일랜드 교회에서 시작됐으며 현행 개인 고해성사를 ‘모든 신자를 위해 일 년에 한 번은 지켜야 하는 의무’로 정한 것은 제4차 라테란 공의회(1215년)였다.

공개적 고백방법에 대해 불만을 품고 있던 평신도들은 은밀한 신앙고백을 환영했다. 즉시 죄를 용서받을 뿐아니라 다른 사람 앞에서 죄를 고백하지 않아도 됐기 때문이다. 이러한 방식은 유럽대륙에 유행처럼 번졌고 오늘날까지 자리 잡았다.

◆천주교 신자 중 15%가량만 고해성사… “자칫 형식적일 수 있어”
어느 날, 나다 퀘백의 한 천주교 성당에 근무하는 젊은 신부 마이클은 자정이 가까운 시간 성당 안으로 사람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 그 뒤를 쫓아간다. “거기 누구신지요? 이 밤중에….” 어둠 속에서 나온 남자는 이 성당에서 잡일을 하면서 살고 있는 청년 오토켈러였다. “신부님 전데요. 제가 신부님에게 고해성사 할 일이 있어서 찾아왔습니다.” 신부는 거절할 수가 없어서 고해실로 들어갔다.

“고해성사할 이야기가 무엇입니까.” “제가 방금 사람을 죽였습니다.” 고해성사로 시작하는 이 영화는 1953년 개봉한 ‘나는 결백하다’ 중 한 장면이다. 신부가 살인범의 고해를 듣게 되는데 천주교에서 신부는 고해 내용을 절대 누설해서는 안 된다. 이 작품은 이런 종교적인 신념으로 인해 갈등하는 신부의 심리가 담겨있다. 이와 함께 함부로 밝히지 못하는 신부를 오히려 범인으로 내모는 내용을 통해 인간의 사악한 모습이 표현돼 있다.

비단 흉악범죄자뿐 아니라 일반인도 ‘죄를 용서받아야겠다’는 결심이 서면 고해성사를 한다. 그런데 일각에서는 사죄제도인 고해성사가 자칫 형식적일 수 있다는 데 우려를 표하고 있다. ‘고별성사하면 된다’는 생각에 죄를 더 짓게 만들 수도 있다는 것이다. 죄를 거듭 짓게 되더라
도 거듭해서 용서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최근 통계자료에 따르면 천주교인 가운데 15~20% 정도만 고해성사를 한다.

고해성사에 회의감을 느꼈다는 김수진(가명, 27, 여) 씨는 10대 시절 천주교에서 운영하는 고등학교에 다녔다. 김 씨는 “주변 친구들이 너무 쉽게 ‘고해성사를 해야겠다’는 말을 반복했다”면서 “이성 혹은 동성 친구와 사이가 안 좋으면 자신의 감정을 털어내기 위한 수단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고 씁쓸해했다. 그러면서 김 씨는 모두가 그렇다고 볼 수는 없지만 진정으로 회개하려는 것보다 내 마음을 편하게 하기 위해서 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한평생 가까이 천주교 신앙을 해온 신현상(68, 남) 씨는 “고해성사를 하려고 하는 것 자체가 죄를 용서받으려는 마음의 준비를 하는 것”이라며 “죄를 뉘우치는 진실한 마음이 중요하고 이를 하나님께서 받아주신다는 믿음과 함께 또 죄를 짓지 않으려는 노력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신부도 죄를 짓는데 어떻게 사람이 사람의 죄를 사해줄 수 있느냐고 반문하기도 한다. 천주교 교리에 따르면 신부는 고해성사 시 성부 성자 성령 사제 기도문을 하며, 하나님의 이름으로 용서하는 것으로, 사람이 죄를 사하는 것은 아니다.

또 신부도 고해성사를 한다. 단 자신의 영적 지도자인 신부에게 가서 한다. 교황도 고해성사를 보는 신부가 따로 있다. 결국 사람이 사람의 죄를 사해줄 수 있는 것이 아닌 것이다.

◆잘못된 고해성사 죄의식 감소… 미워하는 삶 반복
천주교계 일각에서는 반복되는 고해성사가 도리어 신앙의 죄의식을 떨어뜨리고 잘못된 신앙으로 인해 죄에 대한 감각이 사라질 수 있다는 우려 섞인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특히 진실을 담지 못한 고해성사는 남을 미워하는 삶을 반복하게 하는 하나의 면죄부가 될 수 있다는 지적도 없지 않다.

종교학 박사인 강남대 문영석 교수는 반복되는 죄의 고백이 신앙의 질을 떨어뜨린다는 점을 우려했다. 문 교수는 “죄를 사함 받기 위해 천주교인들이 고해성사를 한다. 오늘날 신앙인들이 세속에 물든 경향이 있다. 죄의식이 많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라며 “고해성사만 하면 죄가 해결된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삶이 변화 안 되는 반복하는 신앙고백은 남을 미워하는 삶을 반복하게 하는 문제점을 낳게 한다”고 꼬집었다.

박정우(천주교 서울대교구) 신부는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는 죄의 고백 곧 고해성사와 같은 의식이 필요하다. 하지만 예수님이 오시면 고해성사가 필요하지 않는다”며 “진정성을 담고 올바른 삶을 살아가도록 노력하는 신앙을 해야 한다. 같은 죄를 반복하는 신앙인은 스스로 삶을 절제해서 더 이상 죄를 지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