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우 소설가 문화칼럼니스트
TV에서 소주를 마시는 이효리의 모습을 보지 못하게 된다는 반가운 소식이 전해졌다.
보건복지부가 최근 발표한 음주와 흡연 규제를 강화한 국민건강증진법 개정안에 따르면, 술 광고 규제가 대폭 강화돼 지하철이나 버스, 택시 등 대중교통수단과 지하철역이나 버스 정류장 등 대중교통 시설에서 술 광고가 전면 금지된다는 것이다. TV 광고에서도 직접 술을 마시는 모습을 보여주면 안 되고, 대학교 동아리방이나 병원의 병실에서 술을 마시는 것도 금지된다고 한다.
잘한 일이다. 지금까지 우리 사회는 술에 대해 지나치게 관용적인 태도를 취해 왔다. 술로 인해 빚어지는 사건 사고가 속출하고 그로 인한 사회적 비용이 엄청남에도 불구하고 술 문화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던 것이다. 심지어 요즘 우리 사회에 큰 문제가 되고 있는 성폭행 사건 역시 대부분 술과 관련이 있고, 술에 취한 상태에서 저지른 범죄는 처벌을 약하게 해주는 관행도 있어왔다. 그 때문에 범죄자들이 일부러 술을 마시고 범행을 저지르거나 술에 취한 상태에서 범죄를 저질렀다고 진술하기도 한다. 대단히 잘못된 것이다.
밤마다 치안센터에서는 취객들이 경찰을 상대로 행패를 부리거나 폭력을 행사하는데도 경찰이 강경하게 대응하지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것도 그에 대한 처벌이 약하기 때문이다.
청소년들이 쉽게 술에 익숙해지는 것도 문제다. 자신들이 우상으로 여기는 인기 스타들이 춤을 추고 술병을 흔들며 “술을 마시라.”고 하니 술에 대한 경계심이 사라지고 오히려 마시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국민영웅 김연아 선수가 맥주 광고를 한 것이 비난을 받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해마다 여름철이면 전국의 유명 해수욕장들이 술로 인해 난장판이 되는 것도 우리들의 술에 대한 인식과 태도가 어느 수준인지 극명하게 보여준다. 청소년들이 아무런 죄책감 없이 술을 사 마시고 취해 비틀거리고 폭행 사건을 일으키기도 한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술에 취해 정신을 놓는다. 앞으로는 지방자치단체에서 해수욕장이나 공원 등에서 술을 마실 수 없도록 할 수 있다고 하니, 다행이다.
술과 함께 담배에 대한 경각심도 높여야 한다. 이상하게도 술과 담배가 한 세트로 묶여 소비되는 특징이 있다. 평소 담배를 피우지 않다가도 술을 마시면 담배를 피우는 사람도 있고, 술을 마시면 흡연량이 훨씬 늘어난다는 이들도 많다.
앞으로는 담뱃갑에 경고 그림이 도입되고 ‘저타르’나 ‘마일드’ 같은 표현도 쓸 수 없게 되고, 담배회사가 판매 장소 외에서 전시나 진열 행위를 하거나 담배를 무상으로 나눠주는 판촉 행사도 하지 못하도록 한다고 한다. 캐나다, 호주 등 56개 나라에서는 벌써부터 담뱃갑에 경고 그림을 넣고 있다. 늦었지만 잘한 일이다.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에는 술에 취하는 것이 부끄러워 술을 마신다는 주정뱅이가 등장한다. 이 주정뱅이는 그래도 술에 취하는 것이 부끄러운 걸 안다. 부끄러움을 잊으려고 술을 마시는, 모순되는 행동을 하지만, 그래도 부끄러움을 안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술 취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술에 취해 비틀거리고 범행을 저지르는 것이 얼마나 부끄러운 것인지, 다른 사람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 아무 곳에서나 담배를 피워 무는 것이 얼마나 부끄러운 것인지, 알아야 한다.
어느 정치인이 ‘저녁이 있는 삶’을 공약으로 내세웠는데, 술 담배 대신 가족들과 ‘저녁이 있는 삶’을 사는 것이야말로 자신은 물론 우리 사회를 건강하게 만드는 지름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