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병 정치평론가

 

말들이 넘쳐난다. 정치의 절반은 ‘담론’이라 하지만, 그래도 정치담론에 진정성이 없으면 공허하다. ‘정치쇼’란 것이 괜히 나온 말이 아닐 것이다. 득표에 도움이 된다면, 정략에 유리하다면 앞뒤 가리지 않고 쏟아내는 말들은 한낱 정치쇼에 불과하다. 정치영역에서 특히 선거정치는 상당 부분 게임적인 요소가 강하다. 이런 이유로 유권자들의 마음을 얻으려는 경쟁은 가끔 오버 액션이나 실언 등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대선 후보의 발언은 그 자체가 공약이며 국정운영의 기조가 된다는 점에서 무게가 더 실린다. 여기저기 표 계산만 하고 다니거나 거짓 공약만 쏟아낸다면 최악의 후보에 다름 아니다. 물론 그런 후보가 국민의 선택을 받을 리도 만무하다. 이제는 그런 말장난에 놀아날 국민도 별로 없다. 그만큼 우리 국민의 수준도 옛날의 그런 수준이 아닐 뿐더러 따질 것은 따져보는 사람들이다. 더욱이 민생과 관련된 핵심 공약은 더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 삶의 질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꼼꼼한 검증은 깨어 있는 유권자의 당연한 몫이 아니겠는가.

반값등록금 우롱하지 말라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가 많이 바뀌고 있다. 좋은 뜻으로 변하고 있다는 얘기다. 김해 봉하마을에 가더니 며칠 뒤에는 ‘전태일 재단’도 찾았다. 물론 대선을 앞둔 상황에서 속이 뻔히 보이는 행보다. 그렇다고 비난만 할 일도 아니다. 그 정도로 변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강력한 권력의지가 없으면 불가능하다. 게다가 장수가 적진을 찾아갈 때는 그저 보여주기 위한 쇼라고 하더라도 내심 비장한 각오 없이는 쉬운 일이 아니다. 다만 진정성의 문제가 남아있지만 변화된 모습은 그 자체만으로도 긍정적으로 봐야 한다.

형식만 바뀌고 있는 것이 아니다. 내용에서도 진화가 보인다. 복지 이슈를 선점하기 위한 노력이라든지 부쩍 ‘경제민주화’ 담론에 치중하는 것도 돋보인다. 당내 정치쇄신특위가 아직 초안 수준이지만 정치부패에 대한 강도 높은 의지를 피력하는 것도 변화된 모습이다. 최종적인 결론을 봐야 알겠지만 일단 이러한 시도 자체는 높이 평가할 일이다. 반대편의 민주통합당은 여전히 공정성 논란으로 대선 후보 경선이 죽을 쑤고 있는 것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박 후보의 높은 지지율은 상당 부분 민주통합당이 기여하고 있는 셈이다.

반값등록금 문제도 예외가 아니다. 이명박 대통령의 공약이었지만 슬그머니 족보 없는 허언으로 밀려나더니 박근혜 후보가 다시 불씨를 지피고 있다. 지난달 23일, 대학생들과의 토론회에서 박 후보는 “등록금 부담, 분명하게 반드시 반으로 낮추겠다. 확실하게 약속하겠다”고 말했다. 이 뿐이 아니다. 지난 2일 이 대통령과의 오찬회동에서는 “학생이 마음 놓고 공부하면서 꿈과 희망 가질 수 있도록 등록금 부담을 절반으로 낮춰주는 정책이 필요하다”며 지원을 요청할 정도였다. 기존의 박근혜 후보의 컨셉으로 보면 파격적이다.

그러나 진정성 문제는 여전히 최대 약점이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서울시 무상급식을 놓고 ‘성전(聖戰)’이니 ‘사회주의적 발상’이니 하면서 포퓰리즘이라고 맹공을 폈던 새누리당이 아니었던가. 그런데 이제는 앞장서서 반값등록금을 당당하게 말하고 있다. 과연 믿을 수 있는 것일까. 아니면 이 또한 정치 쇼에 불과한 것일까. 박 후보를 향해 대학생들은 쇼하지 말라고 규탄시위까지 벌였다. 그렇다면 이제는 박근혜 후보가 각론을 내놓아야 한다. 반값등록금의 시기와 방법, 재원조달 방안에 대해 구체적인 계획을 제시해야 한다. 그래야 신뢰하게 된다. 부디 우리 학생들을 두 번 죽이는 일은 결코 없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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