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옥랑 꼭두박물관 관장

1994년에 국내 최초의 디지털 음향시스템을 갖춘 300석 규모의 영화관을 두 곳에 설립했다. 그리고 이 영화관은 1996년 11월에 문화체육부로부터 ‘예술영화 전용관’으로 공식승인을 받았다. 예술영화 전용관을 열기까지 어려움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예술영화를 따로 수입을 하기 이전이어서, 무엇이 예술영화인지 구분하기도 어려웠을 정도였다.

1995년부터 영화사 백두대간과 손잡고 운영을 하기 시작했으나, 그 역시 쉬운 일이 아니었다. 더구나 동숭은 돈만 댈 뿐이라는 소문이 나면서, 직원들 사기에도 문제가 생기게 되었다. 그런 와중에도 기획 영화제는 꾸준하게 진행되었다. 1996년 ‘잉그마르 베르히만 감독 회고전’, 1997년 ‘피터 그리너웨이 회고전’이 열렸으며, 한국영화 걸작선으로 ‘김기영 감독 회고전’ ‘김수용 감독 회고전’, 1999년에 ‘헬로 김치 페스티벌’ 등이 다양하게 개최되었다.

이러한 기획전의 효과는 기대 이상이어서, 당시 영화계에 새로운 영화 감상의 바람을 불러 일으켰다. 기획 영화제는 단지 영화를 상영하는 데서 끝나지 않았다. 감독 초청 세미나, 유명 영화인 초청 강연회, 자유토론회, 특별 시사회 등 차별화된 프로그램으로 관객에게 가까이 가려는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경영난에 봉착하자, 새롭고 도전적인 프로그램을 계속 운영하기가 어렵게 되었다. 처음에는 한 곳만 운영하다가 그마저 문을 닫게 되었다. 그러나 나는 그대로 포기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2000년에 다시 도전하였다. 동숭아트센터 1층에 ‘나에 의한, 나를 위한, 나만의 영화란’ 이라는 표어를 내걸고 하이퍼텍나다가 문을 다시 열게 된 것이다. 하이퍼텍나다는 예술과 상업, 장르와 문법, 형식과 내용의 경계를 허무는 다양하고 재미있는 영화들이 365일 채워지는 영화관을 지향하였다. 또한 좌석제를 실시하여 좌석번호 대신 관객이 뽑은 문화대표의 이름을 새기고 좌석을 예매할 때 선택할 수 있도록 하였다. 개관식 때에는 인기투표로 선정된 문화대표 147인이 좌석 실명제 착석식을 가졌는데, 하이퍼텍나다가 관객중심의 영화관이라는 점을 보여주려는 조그만 퍼포먼스였다.

개관 이벤트로 ‘일본 영화 페스티벌’을 열어 ‘가미가제 택시’ ‘무사 쥬베이’ ‘오디션’ ‘으랏차차 스모부’ 등이 상영되었고, ‘나다 감독주간영화제’와 같은 중요 기획 영화제가 이어졌다. 이 기획전에서는 주요 영화감독 작품 및 세계영화사에 오래 남을 작품이 집중적으로 상영되었다. ‘기타노 다케시 영화제’ ‘대만 뉴웨이브 영화제’, 그리고 ‘2000년대 나다의 마지막 프로포즈’등이 연이어 개최되었다.

‘나다의 마지막 프로포즈’는 관객의 많은 호응을 받은 영화를 연말에 다시 볼 수 있게 기획한 독특한 프로그램으로 좋은 평가를 받았다. 이와 함께 우리 독자적인 힘으로 예술영화의 수입과 배급도 시작하였다. ‘아름다운 사람들’ ‘하나 그리고 둘’ ‘구멍’ 등의 작품이 우리 손을 거쳐 국내 영화시장에 배급되었다. 또한 동숭이 예술영화 못지않게 관심과 지원을 아끼지 않은 분야가 바로 당시 반상업주의 영화의 대표 주자였던 다큐멘터리였다. 변영주 감독의 ‘낮은 목소리’를 전격적으로 상영한 곳이 바로 하이퍼텍나다였다. 2003년 박기복 감독의 ‘영매’, 2004년 김동원 감독의 ‘송환’, 미국에서 화제가 되었던 마이클 무어 감독의 ‘화씨 911’, 2007년 김명준 감독의 ‘우리 학교’, 같은 해 8월에 다니엘 고든 감독의 ‘푸른 눈의 평양사람’ 같이 작품성 있는 작품들이 하이퍼텍나다의 스크린에 올랐다. 이렇듯 뜻 깊은 문화실천을 한다는 각오로 예술영화 전문 영화관을 운영하였으나, 현실적으로 부닥치는 어려움은 결코 만만치 않았다.

그러는 과정에서 결정적인 것은 거대자본을 앞세운 대기업이 예술영화에 개입하면서 타격을 입게 된 것이었다. 대규모의 멀티 복합상영관을 운영하며 끼워 맞추기식으로 예술영화가 상영되면서, 예술영화 전용관의 운영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들게 되었다. 대부분은 관객들은 하나의 예술영화만을 상영하는 공간보다 다양한 영화를 볼 수 있는 복합영화관을 선호하였고, 예술영화전용관을 선호하는 마니아층은 극히 일부였기 때문이다. 결국 갖은 어려움을 극복하면서 하이퍼텍나다를 운영한 10년이라는 소중한 시간들이 그만 역사의 한 페이지로 남을 수밖에 없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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