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우 소설가 문화칼럼니스트  

얼마 전 뉴욕에서 상반신을 드러낸 남녀들이 ‘가슴에 자유를, 마음에 자유를’ 외치며 행진을 했다는 뉴스가 떴다. 여성들도 가슴을 노출할 수 있는 권리를 갖게 해 달라는 ‘고 토플리스 운동(The Go Topless movement)’이라는데, 뉴욕에선 여성이 가슴을 드러내는 것이 합법이지만, 다른 주에서는 그렇지 않다고 한다.  

미국에서 여성들이 투표권을 얻게 된 것을 기념한 날에 맞춰 열렸는데, 시위자들은 여성들이 공공장소에서 합법적으로 가슴을 드러내는 것이 여성의 참정권만큼이나 중요하다고 여기는 모양이다.
여성의 신체 중 특히 가슴은 시대와 환경에 따라 그 의미가 달랐다. 유방은 여성 인권과도 깊은 관련이 있었다.

영국을 가장 오랜 동안 통치했던 인물들은 모두 여성제 군주들이다. 엘리자베스 1세(1558~1603 재위), 빅토리아(1837~1901 재위), 엘리자베스 2세(1952~현재 재위)가 그들이다. 엘리자베스 1세 재위 기간 동안 영국은 스페인 무적함대를 물리치고 세계 패권을 장악했을 뿐 아니라 윌리엄 셰익스피어, 프란시스 베이컨 등 세계적인 문화예술인들이 배출될 정도로 국가적으로도 큰 성공을 거둔 시기다.

엘리자베스 1세는 군주로서의 통치능력 못지않게 그녀가 죽을 때까지 결혼을 하지 않은 처녀 여왕이었다는 사실이 두고두고 화제가 되었다. 당시 영국 사회가 숫처녀 성모 마리아를 숭배했던 가톨릭 문화 지배하에 있었던 것을 감안하면, 그녀의 처녀성은 통치자로서 큰 무기였음에 틀림없다.

처녀 여왕 엘리자베스는 가슴을 드러내는 파격적인 행동으로 국민들을 놀라게 했다고 한다. 그녀의 가슴 노출 행위는 지금의 기준으로도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다. 하지만 국민들에게 드러내 보인 그 가슴은 어린 생명에게 젖을 먹이고 정서적 안정감을 안겨주는 한없이 넓고 자애로운 모성애의 상징이었다. 국민들은, 여왕의 가슴에서 성모 마리아와 같은 신성한 기운을 느꼈다. 당시 영국에선 일반 여성들 사이에도 가슴 노출이 유행했다고 한다.

여성의 가슴은 남성들의 의지에 따라 그 의미를 달리 한 측면이 없지 않다. 아이에게 젖을 먹이는 데에만 의미가 있으니 성적인 시각으로 바라보아서는 안 된다는 시절이 있었는가 하면, 정반대의 경우도 있었다. 아이에게 젖을 먹이는 것조차 남편으로부터 허락을 받아야 할 때도 있었다.
여성의 가슴이 정치적으로 이용당하기도 했다. 전쟁터에 나간 군인들의 사기를 높이기 위한 선전물이 되기도 했고, 국가의 출산과 육아 장려 정책을 위한 포스터로 그려지기도 했다. 여성 가슴이 자유의 상징이기도 했다. 프랑스의 들라크루아가 그린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에는 가슴을 활짝 드러낸 여성이 등장한다. 프랑스의 자유를 상징하는 데 이만한 것이 없다고 할 만큼 찬사를 받았다. 이 그림은 지폐의 도안으로 활용되기도 했다.

2차 대전이 끝나고 파리가 해방되자 프랑스 대중가수 안 샤펠은 자동차 지붕으로 뛰어 올랐다. 그리고 입고 있던 블라우스를 찢고선 가슴을 활짝 열어 젖혔다. 들라크루아의 여신처럼 당당히 가슴을 드러내고 힘차게 국가를 불렀다. 드러난 가슴은 곧 해방이었고 자유였던 것이다.

그러나 여성들은 가슴이 아니라 가슴속을 털어내고 싶을 것 같다. 우리나라 여성들만 겪는다는 화병이 가슴속 마음의 병 아닌가. 대한민국 모든 여성들의 가슴 속이 시원해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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