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사단 장병이 해안초소에서 경계 근무를 수행하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천지일보=송범석 기자] 어슴푸레 여명이 밝아오는 시간. 10명으로 구성된 22사단 공현진중대 경계근무조가 조용히 기동을 시작한다.

“사박사박.”

한 걸음 한 걸음 군화를 내디딜 때마다, 까무룩 몰려오는 졸음이 조용히 가라앉는다. 장병 간 간격은 2m 남짓. 평온함에 혼곤히 젖어 있을 백사장 사이로 장병들의 눈빛이 쉴 새 없이 번뜩인다. 융단처럼 펼쳐진 이 백사장 어딘가에 적이 흘리고 갔을 흔적을 찾기 위해서다. 끝 모를 긴장감만이 바다가 뿌려놓은 적막 속에 팽팽하게 스며든다. 이 백사장에서 조금만 걸어나가면 바로 국도가 나온다. 한번 놓치면 손쓸 길이 없다는 강박관념이 장병들의 머릿속에 이명처럼 맴돈다.

벌써 해안가를 걷기 시작한 지 1시간이 지났다. 금세 떠오른 한여름의 태양이 장병들 어깨에 빨간 지문을 아로새긴다. 뜨겁게 달아오른 백사장을 지나니 산악 지형이 기다린다. 방탄모 안으로 송골송골 땀이 맺힌다. 숨이 가빠지고, 땀이 비 오듯 흐른다. 그래도 걸어야 한다. 지킬 것을 지키고 나서야, 온전히 지켜낸 이 땅을 내일도 걸을 수 있으리라. 그 책임의 무게 때문일까. 백사장에 찍혀 있는 무수한 장병들의 발자국에는 22사단 장병들이 지켜낸 세월이 화석처럼 찍혀 있었다.

공현진중대는 하루도 빠짐없이 이곳 강원 고성군 최동북단과 일대에서 경계근무를 수행하고 있다. 2개 조가 담당구역을 두 섹터로 나눠 점검한다. 이들의 작전 지역을 보면 선입견이 쏙 들어간다. 가령 “해수욕장 부근에서 근무하니 첩첩산중 전방부대보다 편하고 볼거리도 많을 것 같다”는 생각 말이다. 그러나 오히려 내륙보다 적의 침투가 쉽고 그만큼 긴장감이 더 감돈다.

이 지역에는 적의 침투가 용이한 지형인 언덕과, 사각지대, 암벽이 많다. 특히 여름에는 신경이 곤두선다.

수온이 올라가면 적이 잠망경을 끼고 바닷속으로 침투를 할 수 있어서다. 게다가 여름에는 해수욕장이 개장을 하면서 민간인이 많이 몰리기 때문에 경계근무에 애를 먹는다. 만일 현장에서 적을 제압하지 못하면 민간인과 섞일 가능성이 크고, 침투한 적은 그대로 국도를 타고 남한 전역을 누비게 된다. 날씨와도 싸워야 한다. 이 일대의 기상변화는 극심하고, 장기간 적설과 결빙, 국지성 집중호우와 강풍‧농무도 빈번해서, 경계가 힘에 부친다. 이와 함께 어민의 어업권 보장, 관광지역 확대로 인한 철책 지역 축소 등 복잡한 요소가 얽혀 있는 게 이 지역이다.

그래서 22사단은 “어떤 일이 있어도 수제선(水際線, 물과 땅이 만나는 지점)에서 적을 격멸한다. 뒤는 없다”는 각오로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경계 구호도 ‘완전작전, 초전격멸’이다. 그도 그럴 것이 ‘완전작전’이 실패하면 다시 기회는 주어지지 않는다. 단 한 번의 기회를 잡았을 때 적을 완벽하게 소탕해야 하는 것이 이 부대의 사명이다. 이를 달성하기 위한 장병들의 노력은 눈물겨울 정도다. 각종 침투 모델을 만들어 숙달하고 또 숙달하고 있다. “몸에 밴 것이 없고 시스템이 갖춰져 있지 않으면 막을 수 없다”는 사단 장병의 말속에선 형언할 수 없는 절박감이 느껴졌다.

공현진중대 함준호 일병은 “바다는 조용하지만 적은 항상 침투할 수 있다는 마음가짐으로 근무를 서고있다”면서 “무엇보다도 비가 오면 잘 보이지 않아 굉장히 긴장한 상태에서 감시를 한다. 여러 가지 어려운 점은 있지만, 어떻게든 ‘지킨다’는 생각으로 견뎌내고 있다”고 밝혔다.

같은 중대 백칠용 원사는 “우리 사단은 험난하기 그지없는 태백준령의 끝자락에서, 그리고 동해안의 끝자락에서 철책을 철통같이 경계하며 언제, 어디서, 어떻게 도발할지 모를 적의 침투에 대비하고 있다”면서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장병들은 가장 호전적인 적과 험준한 지형, 변화무쌍한 기상과 싸워 이겨내고 있다”고 강조했다.

현재 22사단은 전군에서 유일하게 GP와 GOP, 해안 경계작전을 모두 수행하고 있다. 이렇듯 경계임무가 광범위하기 때문에 ‘적은 반드시 내 앞에 올 것’이라고 되뇐다. 그래서 도발에 맞서 승리할 수 있는 상황을 미리 정립한 후 ‘어떻게 싸울 것인가’를 머릿속에 그리고 있다. 이것이 22사단이 추구하는 작전태세라고.

한편 ‘율곡부대’라는 명칭처럼 사단은 병사들이 문무를 동시에 기를 수 있도록 장려하고 있다. 율곡 이이 선생이 문무를 모두 겸비했듯이 말이다.

부대는 여러 가지 개인적 사유로 고등학교를 미처 졸업하지 못한 전우들을 위해 고졸 검정고시를 준비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고 있다. 특히 합격자들이 성취감과 자부심을 느낄 수 있도록 ‘율곡고등학교 졸업식’을 개최하는 점이 도드라진다. 실제로 부대는 말뿐만이 아니라 이를 실천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부사관으로서는 드물게 대학원 졸업 학력이 있는백 원사는 “군생활은 ‘내가 왜 여기 있는가’라는 존재 가치를 찾아가는 시간”이라며 “건장한 남자라면 누구나 거쳐 가는 이 시절을 ‘2년간의 전문대학과정’이라고 늘 강조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우리 사단은 간부든 병사든 자격증을 딸 수있도록 많이 배려하고, 신체적으로도 특급전사를 양성하기 위한 프로그램을 여러 방면으로 실시하고 있다”면서 “이렇게 정신은 물론 육체적으로 다듬는 것은 완벽한 경계작전의 초석이 된다”고 덧붙였다.

이렇듯 율곡의 기상을 닮아가려는 부대가 유비무환의 정신을 최고로 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듯 보였다. 눈앞에 닥친 전쟁의 기운을 읽고 십만양병설을 목놓아 부르짖었던 한 사나이의 심정은 장병들의 가슴 곳곳에 아로새겨져 있었다.

사단 정훈공보참모 김종현 중령(진)은 “22사단이 지켜온 최동부전선은 반세기전 불법남침을 해온 공산세력을 응징하고자 수많은 호국영령들이 목숨 바쳐 싸우고 장렬히 산화한 격전지”라며 “22사단의 핵심 과업은 이처럼 피로 세운 국가를 지켜내기 위해 현장에서의 작전을 승리로 종결하는 것이다. 적이 언제, 어떠한 방법으로 와도 반드시 이길 준비가 돼 있다”고 자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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