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석한 연세신경정신과의원 원장

 
최근 우리 사회 곳곳에서 이른바 ‘묻지마’ 범죄가 발생하고 있다. 일용직 노동일을 하면서 생활고에 시달리던 40대 남자는 지하철에서 침을 뱉은 자신에게 승객들이 항의를 하자 흉기를 휘둘렀다. 또한 자신에게 험담을 했다는 이유로 과거의 직장 동료들을 찾아가서 행인들까지 무차별적으로 칼부림을 한 30대 남자의 사건도 있었다. 실제 강력범죄 가운데 현실 불만이나 우발적인 이유로 일어난 이와 같은 묻지마 범죄는 한 해 9천여 건으로 3년 전보다 56%나 늘었다고 한다. 게다가 여성들의 성폭행과 피살 소식까지 연일 들려오고 있어서 평범한 시민들은 불안과 공포에 떨고 있는 지경이다.

묻지마 범죄의 공통적인 양상을 살펴보면, 대개 사회적으로 고립되어 있고 현실 적응에 어려움이 있는 사람이 분노와 적개심을 가슴에 담아두고 있다가 사소한 자극에 의해 마치 방아쇠가 당겨진 것처럼 폭발적인 공격성을 드러낸다는 점이다. 사회적인 차원에서 낙오자에 대한 관심과 배려, 다시 일자리를 구하고 재기할 수 있는 시스템과 재활 프로그램의 구축, 벌어진 빈부격차의 해소 등이 마련되어야 함은 자명하다. 그러나 필자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의 관점에서 다소 개인적인 차원의 해법을 제시해 보고자 한다. 그것은 다름 아닌 ‘분노 조절’ 능력의 배양이다.

우리는 누구나 다 분노를 느끼면서 살아간다. 여태까지 살면서 한 번도 분노를 느껴본 적이 없었노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또는 그녀)는 대단한 거짓말쟁이다. 분노는 많은 사람들이 느끼곤 하지만, 그것을 파괴적인 행동으로 나타내는지 아닌지는 분명한 개인 차이가 있다. 왜 어떤 사람은 분노를 참지 못해서 다른 사람들을 공격하고, 어떤 사람은 그러한 분노를 적당하게 말로 잘 표현하며, 심지어 어떤 사람은 분노를 승화시켜서 예술이나 사회적 운동으로 나타내기도 하는가? 이에 대해서 명확한 설명을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분노 조절’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들을 과연 어떻게 도와줄 것인가의 문제다. 어릴 적부터 가정과 학교에서 어른들이 가르쳐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어른들부터 먼저 분노의 조절 방법에 대해서 배우고 연습해야 한다. 이제 분노를 가라앉히는 간단한 방법들을 알아보자.

첫째, 가만히 있기다. 필자가 이 말을 하면, 많은 사람들이 의아해한다. “아니, 지금 화가 머리끝까지 나 있는데 어떻게 가만히 있어요?”라고 질문한다. 필자는 “그렇습니다. 아무리 화가 나더라도 그냥 가만히 있으세요. 분노는 순간적으로 확 올라갔다가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수그러드는 특징이 있으니까요.”라고 대답해 준다.

둘째, 숫자 외우기다. 화가 난 순간 하나부터 열까지 마음속으로 천천히 세어보라. 분노가 점차 가라앉을 것이다.

셋째, 깊은 호흡을 해 보라. 숫자를 세면서 동시에 깊은 숨을 천천히 들이마시고 내쉬다 보면 어느새 분노가 사라질 것이다.

넷째, 지금 현재의 이 장소를 벗어나라. 나의 분노를 돋운 사람을 보지 않으면 훨씬 덜 화가 난다.

다섯째, 화가 난 감정을 말로 표현한다. 소리를 지르거나 욕설을 내뱉는 것이 아니라 “저는 지금 화가 무척 나 있어요. 왜냐하면…”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 정도 경지에 이르면 분노 조절이 상당히 이루어진 상태다.

여섯째, 온몸의 근육을 천천히 점진적으로 이완시켜 본다. 대개 자신만의 공간에 앉아서 혹은 누워서 시행하면 좋다. 이완된 근육은 자율신경계를 안정시켜줘서 분노를 가라앉히는 효과를 얻는다.

일곱째, 분노 일지를 작성해 본다. 특히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자주 분노가 느껴진다면, 매일 저녁 일정한 시간에 일기의 형식으로 ‘언제, 어디에서, 어떻게, 누구에게, 왜’ 분노를 느꼈고, 그 결과 나는 어떤 언행을 보였으며, 향후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에 대해서 차분하게 정리해본다. 매일의 기록 과정을 통해서 상당한 자아 성찰 및 변화가 이루어질 것이다.

이와 같이 각자 개인이 분노를 조절하는 방법을 연습하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가르쳐 주며, 서로 화가 난 얼굴이 아닌 웃는 얼굴로 마주보며 어울리는 세상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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