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윤 소설가

조나라를 구원하기 위해 위나라를 떠난 신릉군은 도중에 자신의 식객인 후생의 도움으로 도축업자 주해를 함께 데리고 국경으로 나아갔다. 신릉군은 국경 업성에서 조나라 수도 한단을 포위하고 있는 진나라 동태를 관망하고 있는 위나라 진영에 도착했다.

신릉군은 장군 진비에게 왕명이라 거짓말을 하고 지휘권을 넘겨 줄 것을 요구했다. 진비는 왕의 병부만으로 신용하지 않았다. 예법대로 신릉군을 정중하게 응대하면서도 의심스러운 눈치로 살폈다.
“나는 국가의 중임을 맡고 십만 대군을 지휘해서 국경의 수비를 견고히 하고 있소. 그런데 공자께서는 궁궐의 호위군도 거느리지 않고 찾아와서 교대하자고 하십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납득이 가지 않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진비에게서 지휘권을 넘겨받기는 틀렸다고 판단한 주해는 옷 속에 감추고 있던 40근의 철퇴로 진비를 단번에 때려 죽였다. 그렇게 하여 신릉군은 진비의 군사권을 장악하자 즉시 열병을 하고 전군에 포고를 내렸다.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종군하고 있는 자는 아버지의 귀국을 허락한다. 형제가 함께 종군하고 있는 자는 형이 귀국하여 부모를 공양하라. 그런 다음 신릉군은 나머지 8만 명에게 진나라 진영의 공격을 명령했다. 그러자 진나라 군은 위나라의 움직임을 알고는 포위를 풀고 물러갔다. 그렇게 하여 신릉군은 위기에 처한 조나라 한단을 구할 수가 있었다.

조나라에서는 왕과 평원군이 국경까지 달려와 신릉군을 맞이했다. 평원군이 전통을 메고 위의를 갖춘 채 신릉군을 맞자 조나라 왕도 정중하게 머리를 숙이고 말했다.
“예로부터 현자라고 불리는 자는 많았지만 당신을 능가할 사람은 없습니다.” 평원군도 이때만은 신릉군 앞에서 머리를 들지 않았다.

한편 위나라 후생은 신릉군이 진비의 진영에 도착한 날 그에게 말한 약속대로 북쪽을 향해서 칼로 목을 찔러 자결했다.

얼마 뒤 위나라 왕은 신릉군이 병부를 훔치고 왕명을 가장하여 진비를 죽인 것을 알고 몹시 화를 내었다. 신릉군도 미리 각오했던 일이었으므로 귀국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군사들을 아랫사람에게 맡겨 본국으로 보내고, 자신은 식객들과 함께 조나라에 머물렀다.

조나라에 머물게 된 신릉군은 전부터 소문으로만 듣고 있던 두 사람을 만나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한 사람은 모공(毛公)이라 하여 도박의 무리에 몸을 담고 있으며 또 한 사람은 설공(薛公)으로 언제나 찻집에서 지낸다고 했다.

신릉군이 두 사람을 초청했지만 한 사람도 오지 않았다. 신릉군은 두 사람이 있는 곳을 은밀히 알아내어서 혼자서만 찾아가 얘기를 나누어 보니 서로 뜻이 통할 수 있었다. 그 얘기를 들은 평원군이 부인에게 말했다.
“신릉군이 천하에 둘도 없는 인물이라는 평판을 받고 있지만 요즘 와서는 도박꾼이나 집 없는 떠돌이들과 교제를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소. 정말 그 사람은 알 수 없는 사람이야.”

부인이 그 말을 신릉군에게 전하자, “나는 평원군이 어질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에 왕을 배신하면서까지 조나라를 도와 평원군의 기대에 보답했었소. 지금 얘기를 듣고 보니 평원군의 교제는 단지 겉치레뿐인 것 같소. 모공이나 설공이 보통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나는 위나라에 있을 때부터 소문을 듣고 알았으며 조나라에 왔을 때도 두 사람이 과연 나를 만나 줄 것인지 걱정이 되었소. 그들과 교제하고 있는 지금도 내가 그들에게 불만을 품고 있지나 않나 하고 걱정하고 있을 정도요. 그러한 그들과의 교제를 평원군은 부끄러운 일로 알고 있다니 참으로 딱한 일이오. 평원군이야 말로 교제할 가치가 없는 사람 같소.”

그렇게 말한 신릉군은 길 떠날 차비를 했다.

집으로 돌아간 신릉군 누이가 평원군에게 그 얘기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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