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질적 운영, 학교 편의대로… 교장이 쥐락펴락
장애인 고용거부에도 교육청은 ‘멀뚱멀뚱’
“정부, 목적 없는 실적주의 정책 팽배”

[천지일보=장수경 기자] 정부가 추진하는 ‘장애인 희망일자리 채용’이 있으나 마나하다는 지적이 들끓고 있다.

현재 서울시교육청과 장애인고용공단은 장애인 취업 활성화의 한 방편으로 ‘장애인 희망일자리 고용연계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인턴 기간이 끝나면 장애학생들은 공무원이 아닌 근로자 전환 방식으로 학교에 취업이 된다.

그런데 학교 현장에서 장애인 고용을 꺼리면서 당사자의 동의 없이 고용을 거부하거나, 고용을 해도 채용시간을 학교 편의대로 적용하는 사례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또 월급을 2개월에 1번씩 주기도 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2011년 장애학생 희망일자리 고용연계 프로그램 운영 안내문’에 따르면 근로자 전환 대상 학생을 결정할 때 인턴십 단기채용에 참가한 장애인 당사자, 학부모, 기관장(학교장, 도서관장, 평생학습관장), 교감, 공단 직무지도원, 특수교사 등 관계자의 협의를 거쳐 결정된다.

또한 서울시교육청에서는 인턴십 단기채용을 통해 심각한 결격사유가 발생되지 않은 한 한 명이라도 더 많은 학생들이 공무원이 아닌 근로자로 전환되는 기회를 주는 것이 원칙으로 돼 있다.

공무원이 아닌 근로자 전환 대상자의 결격 사유로는 ▲학생 당사자 및 학부모가 지속적으로 사업에 참여할 의사가 없는 경우 ▲인턴십 단기채용 경험상 독립적 출·퇴근 및 직무수행을 할 수 없어 직장인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경우 등이 포함된다.

그런데 이 같은 결격 사유에 해당되지 않는데도 명확한 이유 없이 학교 측의 일방적인 고용 거부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특히 고용은 교장의 권한이라는 이유만 늘어놓으면서 교육청도 뒷짐만 지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자폐증 3급인 송상윤(20, 서울 은평구 수색동) 씨의 경우가 대표적인 예다. 송 씨는 지난해 9월 ‘장애인 희망일자리’에 참여했다. 이후 직무보조원 감독 하에 3주간 기사보조 직무를 익히고, 10월부터는 서울 상암고등학교에서 ‘기사 보조’로 인턴십 계약을 맺었다.

인턴십을 하는 동안 그는 “성실하고 열심히 일을 배우고 있다”는 학교 측의 칭찬을 받을 정도로 잘 적응했다.

그러다 1월 초 3개월간의 인턴십 계약이 끝났고, 송 씨와 그 어머니인 남영(51) 씨는 학교 측의 채용(공무원이 아닌 근로자 전환) 여부를 기다렸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도 아무런 연락이 오지 않았다.

그러다 우연히 상암고 특수교사로부터 상암고가 올해 2월 7일자로 ‘고용거부’의 내용이 담긴 공문을 교육청에 발송했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이후 남 씨는 교육청에 찾아가 상암고 측이 일방적으로 고용 거부를 했다고 하소연했다.

그로부터 10일 뒤인 2월 17일, 남 씨는 교육청의 한 장학관으로부터 “그동안 고생이 많았다. 통합거점학교에서 희망일자리 수용을 거부한 것은 잘못된 일이니 책임교육 과장이 상암고 교장과 통화를 해보고 월요일쯤 연락주겠다”라는 말을 들었다.

하지만 이후 교육청으로부터 현재까지 아무런 연락이 오지 않고 있다. 상암고 측도 모든 권한은 교장에게 있다는 말만 되풀이할 뿐이었다.

하지만 송 씨의 경우 이 같은 결격 사유에 해당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상암고의 한 관계자는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상윤이는 인턴을 하는 동안 지각을 한 번도 안 했고, 성실하게 근무했다”고 밝혔다.

이 같은 고용거부 사례는 또 있다.

자폐증을 앓고 있는 김은주(가명, 20, 서울 은평구 불광동) 씨도 지난해 10월부터 상암고에서 인턴직을 했으며, 송 씨와 같은 방법으로 고용거부를 당했다.

김 씨의 어머니인 함영희(가명, 49) 씨는 이번 일에 대해 “굉장히 당황스럽다. 우리 아이가 무책임한 교육청과 학교로부터 피해를 입었다”고 말했다.

‘희망일자리 프로그램’이 처음 실행되던 지난해 상암고 측은 여러 방송을 통해 거점학교로서 아이들을 고용하겠다고 언급했으나, 일방적으로 고용거부를 했다는 게 함 씨의 설명이다.

실제로 기자가 처음 상암고를 방문했던 지난해 10월 11일에도 여러 방송사가 송 씨와 김 씨를 취재하고 있었다.

당시 김 씨는 상암고에 고용되지 않으면 당장 갈 곳이 없는 상태였다. 김 씨는 이 학교에 취업하기 위해 준비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1달이 넘도록 학교 측으로부터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이로 인해 심리적인 불안감이 매우 컸다고 함 씨는 토로했다.

함 씨는 이번 사건과 관련해 교육청의 문제점도 지적했다.

그는 “교육청도 잘못하고 있는 것이, 아이가 고용거부를 당하면 조치를 취해야 하는데 ‘나 몰라라’하고 있다”며 “교장이 (고용을) 거부하니 어쩔 수 없다는 말만 내놓고 있다”고 꼬집었다.

희망일자리에 대한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장애학생 채용 근무시간’을 보면 A형(월~금 주5회, 1일 4시간 80시간), B형(월~금 주5회, 1일 8시간 160시간) 등으로 나뉜다. 이 두 유형은 모두 1년 계약이다. 현재 B형은 교육청의 예산 부족으로 운영되지 않고 있다.

상암고의 경우 윤 씨의 고용을 거부한 후 학교 졸업생을 고용했다. 계약 당시 1일 4시간 6개월로 계약을 했다. 명백히 규정을 어긴 것이다.

이에 대해 상암고 강원희 교감은 “3~9월까지 4시간씩 6개월로 계약(교무보조)했다”며 “희망일자리 채용 예산은 그대로 주고 있다”고 밝혔다.

송 씨의 고용 거부에 대해서는 “인턴십이 끝나고 진학을 해서 고용이 안 됐다고 들었다”며 “(고용에 대해) 학부모와 본인의 의견을 들어보고 결정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서울시교육청은 상암고의 이 같은 조치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었다.

홍용희 서울시교육청 장학사는 “4시간 1년 계약은 당연하지만, 6개월 계약은 있을 수 없다. 어느 학교가 지키지 않고 있느냐”며 발끈했다.

홍 장학사는 “어디서 잘못된 것인지 확인해 보고 조치를 취하겠다”며 “희망일자리 사업이 처음 도입돼 아직까지 부족한 게 많다”고 해명했다.

한편 고용 장애인에게 월급을 제때 지불하지 않는 등 차별을 하고 있는 학교도 있었다. 기자가 조사한 결과 서울 경복고는 두 달에 한 번씩 한 달 분량의 월급을 통장에 입금시킨 것으로 밝혀졌다.

경복고 관계자는 “월급을 교육청에서 학교로 먼저 주면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월급을 전달한다”면서 “하지만 교육청에서 제때 금액이 들어오지 않아, 애로사항이 있다”고 답했다.

이와 관련해 서울시교육청의 홍 장학사는 “장애인 고용부담금은 교육청에서 분기별로 학교에 지원하는데, 다른 예산을 먼저 집행하고 나서 학교 측의 전달을 해 어려움이 따른다”라고 설명했다.

이번 사태에 대해 장애인단체들은 “실적에만 신경을 쓰는 교육청이 가장 큰 문제”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남병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정책교육실장은 “학교는 장애인 고용에 대해 방향이나 목적 없이 일시적인 사업 정도로만 생각한다”며 “이번 일은 학교가 장애인에 대해 배려와 고민이 얼마나 부족한지 입증하는 사건”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하지만 교육청의 문제가 더 크다”며 “당사자 장애인과 가족, 학교, 학교에서 벌어지는 주변 환경 등에 대해 꾸준히 피드백하고 개선점을 찾아야 하는데 관리가 소홀했다”고 전했다.

이어 우리나라 장애인 고용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실적 중심주의가 팽배해 있어 정부의 오락가락 제도에 장애인은 계속 농락을 당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박영희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사무국장은 장애인들의 근무 환경 조성에 정부가 힘써야 한다고 주문했다.

박 사무국장은 “장애인이 학교를 이해하고 근무를 할 수 있게 하려면 어떤 게 필요한지 확인해야 한다”며 “학교에 인센티브제를 도입해 장애학생이 근무를 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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