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우 소설가 문화칼럼니스트

일본 사람들은 화(和)를 무엇보다 중요시한다고 알려져 있다. 평화(平和), 조화(調和), 화목(和睦)에 쓰이는 화(和)는 벼 화(禾)에 입 구(口)룰 붙인 말이니, 같이 밥을 나누어 먹는다는 뜻이다. 서로 친하게 잘 지낸다는 말이다. 일본인들은 화(和)를 ‘와’로 발음하고 일본을 화의 나라(和國)라 하고 일본식 음식을 화식(和食), 일본 스타일을 화풍(和風)으로 부를 만큼 화(和)를 그들 문화의 기본으로 여긴다.

일본인들은 화(和)를 국가와 사회 가정의 근본으로 생각하고 이를 지키기 위해 노력한다. 화(和)를 위해 자신의 분수를 알아야 하고 제 분수에 넘치는 짓을 하면 가차 없이 이지메(왕따)를 당하거나 가혹한 형벌을 면치 못한다. 그래서 제 분수를 지키지 못해 남에게 폐를 끼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한다. 다른 사람에게 신세를 지거나 폐를 끼치는 것을 ‘메이와쿠(迷惑)’라 하는데, 어릴 적부터 가정에서 엄격하게 남에게 폐를 끼치지 말라고 가르친다.

각자의 몫을 ‘이치닌 마에(一人前)’라 하는데, 자신에게 주어진 영역 안에서 제 분수를 지키고 제 몫을 다해 내야 화(和)가 유지된다. 우리처럼 찌개를 가운데 두고 나누어 먹지 않고 각자의 몫을 깔끔하게 나누어 먹는 것도 이치닌 마에의 개념이다. 자신의 몫을 야무지게 챙겨 먹되, 남의 것에 눈독 들이지 말라는 의미다. 이치닌 마에를 다하지 못하는 것이야말로 남에게 폐를 끼치는 일이며 자신의 체면도 손상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큰 문제가 생기면 자신의 이치닌 마에를 다하지 못한 탓이라며 목숨을 끊기도 한다.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면 상대의 마음이 불편하지 않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래서 상대에게 대놓고 부탁을 하면 결례라 여기고 에둘러 표현한다. 상대가 부탁을 하기 전에 먼저 알아차리고 신경을 써 주어야 폐를 끼치지 않는다고 여긴다.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이 ‘기쿠바리’다.

달면 달고 쓰면 쓰다, 하고 직설적으로 말하기를 좋아하는 우리들과 달리 일본인들은 빙빙 돌려 말하길 좋아한다. 상대의 심중을 알고서도 짐짓 모르는 척 딴소리를 해대는 것이다. 겉으로 하는 말을 다테마에(立前), 진짜 속마음을 혼네(本音)라 하는데, 상대를 무안하게 해서 폐를 끼치지 않으려는 기쿠바리인 것이다.

일본인들은 다른 사람에게 은혜를 입고서 모른 척 하는 걸 싫어한다. 자신을 낮추고 상대를 존중하며 은혜를 입었을 때는 당연히 갚아야 할 일종의 빚이라 생각한다. 은혜를 ‘온(恩)’이라 하는데, 혜택을 입었거나 신세 진 게 있으면 반드시 되돌려 주고 서로 빚 진 것이 없는 상태를 가장 이상적인 인간관계라 여기는 것이다.

일본말로 고맙다는 뜻의 ‘아라가또 고자이마스’를 직역하면, ‘어려움이 있습니다’가 된다. 신세를 지거나 은혜를 입어 난처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뜻인 것이다. 죄송합니다란 뜻의 ‘스미마셍’을 그대로 옮기면 ‘끝나지 않았습니다’이다. 은혜를 입었는데 그것을 갚는 것이 끝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들은 이 ‘온’이야말로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최고의 덕목이라 여긴다.

일본인들의 이런 문화는 사실 칼의 문화가 바탕이다. 우리와 달리 일본은 무사의 나라였고 칼로 사회 질서를 유지했다. 분수를 모르고 남에게 폐를 끼치게 되면 당장 칼을 맞을 수밖에 없고 그래서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 노력하고 은혜를 입으면 반드시 갚아야 한다는 그들만의 약속이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들끼리는 여전히 이런 아름다운 가치들을 지니고 사는지 모르겠지만, 국가라는 차원으로 가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이웃나라에 폐를 끼치고 은혜를 입어도 갚을 줄 모르고, 배려하는 마음도 없다. 온 이웃들과 부딪치며 화(和)를 깨뜨리고 있다. 참 희한한 노릇이다. 칼 맞을 일이 없어 그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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