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수 한체대 스포츠 언론정보연구소장

런던올림픽 얘기를 더 해야겠다. 올림픽 금메달 순위가 미국, 중국, 영국, 러시아에 이어 5위를 기록하고 총 메달순위서도 9위에 오름으로써 한국 스포츠는 세계에서 명실상부한 강대국임을 말할 수 있다. 경제력 15위, 인구 25위인 한국이 경제력과 인구에서도 월등히 앞선 대국들과 어깨를 나란히 해 마치 선진국이 된 듯 국민들이 뿌듯한 자부심과 긍지를 느낄 것이다. 하지만 한국 스포츠의 국격이 정말 선진국으로서 손색이 없는 것인지 올림픽이 끝난 이 시점에서 한번쯤 생각해볼 만한 일이 아닐까. 결론부터 말하면 스포츠 강대국으로 말할 수 있지만 스포츠 선진국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

아무리 많은 금메달을 따고 메달을 획득할지라도 스포츠 국격이 선진국 수준이 되려면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멀다.

1948년 런던올림픽에 첫 출전한 이후 62년이 지난 한국스포츠는 외형적으로 크게 성장한 것만은 사실이다. 런던올림픽에서 복싱, 역도에서 동메달 2개를 획득한 한국은 1976년 몬트리올올림픽서 레슬링 양정모가 첫 올림픽 금메달을 획득한 이후 1984년 LA올림픽부터 금메달을 많이 수확했다. 88년 서울올림픽을 개최하며 종합 4위까지 치솟은 한국은 이후 세계 10대 스포츠 강국으로 자리를 잡았다.

그러나 메달 획득 분포를 보면 일부 종목으로 쏠리는 편식현상에서 벗어나지 못해 각 종목에서 두루 메달을 따는 ‘항아리형’의 선진국과는 큰 차이를 보였다. 한국이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는 종목은 올림픽 전체 종목 중에서 일부분에 그쳤다. 이번 런던올림픽만 해도 26개 종목 중에서 메달을 획득한 종목은 유도, 레슬링, 태권도, 양궁, 사격, 펜싱, 체조와 수영, 축구 등이었다. 금메달 13개는 대부분 전통적인 강세종목에서 나왔다. 펜싱과 체조에서 각각 금메달 2개와 1개를 획득한 것이 이번 런던올림픽의 수확이라면 수확이었다. 축구가 축구종가 영국을 물리치고 라이벌 일본마저 제쳐 사상 처음으로 동메달을 획득한 것도 의미를 부여할 만했다. 이에 반해 4년 전 베이징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획득했던 수영의 박태환과 여자역도의 장미란은 각각 은메달 2개와 4위를 기록해 금메달 사냥에 실패했다.

한국스포츠가 특종종목 위주로 오랫동안 강세를 보인 것은 전략적으로 메달중심의 작전을 수립하고, 메달 획득에 따른 각종 포상책에 기인한 바가 크다. 1960년대 중반 국가대표 훈련장인 태릉선수촌을 만들어 각종 국제대회에 대비해 철저히 전략종목을 중심으로 집중 훈련을 실시했다. 또 국가대표 선수들이 올림픽 등에서 메달을 획득하게 되면 평생 연금을 지급하는 등 각종 포상금과 병역면제, 직장 제공 등의 많은 당근책을 펼쳤다. 과거 소련, 동독, 쿠바 등 사회주의 국가들이 운영하던 엘리트 체육과 비슷한 시스템이었다.
정부나 대한체육회 관계자 등이 엘리트 스포츠의 최대 목표를 올림픽에서 성적을 올리는 것으로 삼다보니 ‘성적 지상주의’로 운영될 수밖에 없다. 한국스포츠가 선진국으로 발돋움하기 위해서는 메달 편식현상을 탈피하고 메달종목의 외연이 더욱 넓어져야 하며 전반적인 스포츠 문화도 다양하고, 풍부해져야 할 것이다.

한국은 가장 많은 메달이 걸려있는 기본종목 육상과 수영 등에서 여전히 절대 약세를 보이며 구조적인 문제점을 드러냈다. 이것은 한국 스포츠의 기반이 그만큼 취약하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주는 것이다.
마라톤은 황영조, 이봉주의 은퇴이후 이미 대가 끊겼고, 육상 필드와 트랙 종목서는 올림픽 참가 기준기록에도 대부분 미치지 못한다. 수영도 박태환의 은퇴이후 남녀 모두 뒤를 이어나갈 선수가 전혀 발굴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현재와 같이 선수층이 허약한 육상과 수영 종목의 여건 속에서는 한국스포츠가 한 차원 높이 도약하기에는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

경기력으로 모든 것을 평가하는 스포츠에 대한 국민들의 시선도 변해야 한다. 스포츠 자체를 즐기고, 참여하는 건전한 스포츠 문화가 정착되어야만 스포츠의 국격이 선진국 수준으로 높아질 수 있다. 이번 런던올림픽 26개 전 종목 경기장을 가득 메운 영국인들의 모습은 현대스포츠에서 대부분의 종목을 태동시킨 높은 스포츠 문화를 보여준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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