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옥랑 꼭두박물관 관장

동숭씨네마텍은 동숭아트센터가 정직한 문화운동의 밑거름을 만들기 위해 시작한 예술영화전용관이었다. 동숭씨네마텍은 자체의 역량으로 일련의 영화제를 기획하였는데, ‘한국영화걸작선’ ‘거장감독 회고전’ ‘필름으로 보는 세계영화사’라는 세 가지 주제로 나누어 진행하였다.

우리나라 영화사에서 잊히고 단절되었던 작품을 다시 부각시키는 ‘한국영화걸작선’, 세계적으로 유명한 감독의 명작들을 만나는 ‘거장 감독 회고전’ 그리고 영화문법과 형식의 변화를 시도하여 영화사에 큰 획을 그은 영화를 소개하고, 영화 역사의 흐름을 짚어보는 ‘필름으로 보는 세계영화사’ 시리즈가 바로 그것이다.
한국영화 걸작선 시리즈는 세 차례에 걸쳐 이루어졌는데, 첫 번째는 1997년 2월에 ‘김기영 감독 회고전’으로 선을 보였다. 이 회고전으로 실험성 높은 심리주의 기법과 표현주의 영상으로 유명한 한국 컬트감독, 김기영이 재발견될 수 있었다. 두 번째 시리즈는 1997년 4월에 열린 ‘김수용 감독 회고전’이었다. 이 기회를 통해 사실주의와 형식주의 기법을 넘나드는 김수용 감독의 실험적 영상미학이 새롭게 음미될 수 있었다. 그리고 1999년 12월에 개최된 ‘헬로 김치 페스티벌: 재외 한인 작가전’은 바로 ‘한국영화걸작선’ 시리즈의 세 번째 기획물이었다.

‘헬로 김치 페스티벌’은 새로운 밀레니엄을 맞이하는 시점에서 ‘새로운 천년, 또 하나의 한국 영화를 만나다(Another Millenium, Another Korean Cinema)’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해외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인 감독 및 유학생들의 작품들을 한데 묶어 상영하는 영화제였다. 한국인이라는 같은 뿌리를 지니고 있지만, 다른 문화 속에서, 다른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작가들의 특징이 다양한 작품을 통해 생생하게 드러났다. 이 영화제는 “재외 한인작가들의 지리적, 문화적인 경계를 허물고, 대한민국 바깥의 제작 시스템을 통해 제작되는 그들의 영화가 1999년 ‘오늘 여기에’ 있는 우리 관객과 영화인들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인가?”라는 물음을 던져줌으로써, 평단과 관객의 많은 호평을 받았다. 21세기 한국 영화의 범주 확대와 비전에 대한 새로운 모색의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는 것이 호평의 주된 내용이었다.

참가 작품은 이웃 일본에서부터 멀게는 카자흐스탄과 타지키스탄에서 온 26편, 참가 감독은 16명이었고, 12월 18일부터 23일까지 6일 동안 매일 평균 14편이 상영되었다.

특히 전야제에는 이미 미국 메이저 스튜디오들에게서 그 가능성을 인정받은 써니 리(Sunny Lee), 1998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되었던 ‘무릎 높이’의 사무엘 하와 ‘황색미인’의 크리스 유, 벨기에 입양녀로서, ‘45% 한국인?’의 조미희, 폴란드에서 활동하는 ‘연인’의 문승욱, ‘안녕 김치’의 마쯔에 데쯔야키, 그리고 ‘벌이 날다’의 민병훈 감독이 참가하여 자리를 빛내주었다. 이 영화제에서 주목을 받은 작품은 그렉 박의 ‘쥐’, 리처드 김의 ‘쿵 파우 치킨’ 제인 김의 ‘귀뚜라미’, 마이클 조의 ‘육식취향’, 레딕 김의 “동물원”, 그리고 써니 리의 ‘중국음식과 도넛’ 등이었다. 또한 잠셋 우즈마노프와 공동으로 감독한 민병훈의 ‘별이 날다’는 관객 반응이 뜨거워서 별도로 개봉되었으며, 프랑스 입양아의 이야기를 다룬 소피 브르디에의 다큐멘타리, ‘침묵의 흔적’도 많은 주목을 받았다.

‘헬로 김치 페스티벌’은 한편으로 지구화로 국경개념이 무색해진 문화상황 속에서 인종과 언어를 넘어 느낄 수 있는 보편적 공감대를 발견할 수 있었으며, 다른 한편으로 색다른 문화 속에서도 살아있는 한국적 정서를 느낄 수 있게 해주었다. 나는 이 영화제가 한국 영화의 다양한 발전을 도모하는 데 조금이나마 기여했다고 자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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