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① 1900년 파리만국박람회 한국관 전경 ② 독립신문에 실린 광고 ③ 1920년대 삼현육각 반주와 검무(이돈수 소장) ④ 프랑스악기박물관에 소장돼 있는 ‘현학금’으로도 불린 ‘거문고(오른쪽)’와 거문고 금장부분 확대(왼쪽). (사진제공: 국립국악원)

만국박람회 출품 악기, 112년 만에 고국행

[천지일보=박선혜 기자] 지금으로부터 100여 년 전 고종의 꿈은 고요한 아침의 나라 대한제국을 세상 속에 우뚝 세우는 것이었다. 1900년에 파리에서 열린 파리만국박람회는 찬란한 조선의 문화를 알릴 좋은 기회였다. 대한제국의 이름을 드높이기 위해 역사적 사명을 띠고 머나먼 이국으로 보내졌던 국악기 11점이 112년 만에 고국 땅을 밟았다.

국립국악원(원장 이동복)이 부설기관인 국악박물관 재개관 특별전 ‘1900년 파리, 그곳에 국악’을 위해 프랑스음악박물관(Musee de la Musique)에 110여 년간 수장․보존돼 있던 고악기 11점을 대여해 온 것이다.

자주 국가 선포와 박람회 공식 초청

고종은 이미 1893년 시카고만국박람회에 전시품들과 악기 연주가들을 파견했었다. 하지만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이후 청나라의 국정 간섭과 일본의 명성황후 시해, 서구 열강의 침탈에 맞서 자주적 주권 국가임을 선포하기 위해 1897년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바꾸고, 당시 조선 주재 프랑스공사인 이폴리트 프랑댕(Hippolyte Frandin) 등 여러 프랑스인의 도움으로 1900년 4월 파리만국박람회에 공식 초청받아 참가하게 됐다.

1899년 6월 3일 독립신문에는 파리만국박람회에 전시품을 출품할 사람을 모집하는 프랑스인 재정후원자 트레물네의 광고가 실리기도 했다.

우여곡절 끝에 지은 한국관

당시 대한제국의 파리만국박람회 내 한국관은 전시관 터를 잡는 것조차 강대국에 밀려 어려움을 겪었다. 겨우 잡은 곳이 프랑스 샹드 마르스 서쪽 쉬프렌대로의 영국 제과관과 향수석관 사이였다.

대한제국의 후원자였던 드 글레옹 남작은 한국관에 많은 애정을 가지고 2개의 전시관을 구상했다. 하지만 남작의 갑작스러운 사망으로 공사가 중단될 위기에 처했으나, 미므렐 백작의 후원으로 다행히 한국관 1개 전시관을 완공했다.

대한제국 한국관은 경복궁 근정전을 본뜬 설계도를 바탕으로, 베트남의 사이공극장을 건축했던 외젠 페레가 맡았다. 당시 한국관의 위용은 일본이나 중국 못지않았다. ‘르 쁘띠 쥬르날(Le Petit Journal)’ 잡지 1면에 한국관 삽화를 실을 정도였다. 또 당시 박람회 홍보엽서에도 담겨 프랑스인들에게 신기한 건물로 비쳤다.

이렇게 세계인의 관심 대상이었던 한국관에는 국악기, 의상, 문방사우, 책, 목판, 그릇, 돈 등 왕실과 민간의 모든 생활을 엿볼 수 있는 물품들이 출품됐다.

출품 후 본국 수송비 없어 기증

당시 파리만국박람회는 세계에 대한제국의 존재를 확고하게 알린 소중한 기회였다. 하지만 1900년 11월 12일 박람회 폐막 후 한국관 명예위원장이었던 민영찬을 비롯한 조선 사절단은 한국관에 전시됐던 왕실의 생활용구, 도자기, 무기, 종자, 악기 등을 본국으로 수송할 비용이 없어 모두 기증하고 돌아왔다.

당시 전시품 가운데 공예품은 프랑스공예예술박물관으로, 악기는 프랑스국립음악원의 악기박물관(Musee instrumental de Conservatoire de
Musique)으로 이관 소장됐다.

고악기 11점, 112년 만에 고국 나들이

국립국악원은 1900년 파리만국박람회 당시 전시됐던 물품 가운데 해금, 대금, 단소, 거문고, 정악가야금, 양금, 향피리, 세피리, 방울, 용고, 북 등 국악기 11점을 국내에 들여와 국악박물관 수장고에서 1주일간 환경 적응 기간을 거쳐 지난달 31일에 특별전시실에 전시했다.

전시된 11점은 상태가 가장 양호한 것들로, 왕실과 민간에서 두루 사용한 것이다. 특히 거문고에는 금장 학 장식이 뚜렷이 남아있어 눈에 띈다.

이동복 국립국악원 원장은 “거문고, 단소, 용고 등을 보니 고종이 직접 챙겨 보낸 악기인 만큼 한눈에도 귀티가 나고 윤이 있어 고급스러운 악기임을 알아 볼 수 있었다”며 “자주 국가의 염원을 고스란히 담아 타국에 보내졌던 당대 최고의 악기들과 특별한 기록 영상을 국내 최초로 선보이는 이번 전시를 통해 잊고 지내온 1세기 국악의 역사를 느껴보길 바란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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