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40년대 서울역사 모습과 지난 4월 리모델링을 끝낸 문화역서울 284 (연합뉴스 제공) ⓒ글마루

 기차만 타서 몰랐다고요? 제 슬픈 과거도 알아주세요

[글마루=특별취재팀] “도대체 여기에 뭐가 있다는 거야?” 무미건조하기만 한 서울역이 역사적 현장이라고 하니 일행 중 한 기자가 갸우뚱해한다. 하지만 이날 답사를 함께했던 동북아역사재단 장세윤 책임연구위원은 “일본인은 조선 땅의 중앙으로, 조선의 독립 운동가들은 저 멀리 만주나 중국으로 떠나야 했던 슬픈 역사가 깃든 곳이 서울역”이라며 남다른 의미가 있음을 내비쳤다.

▲ 동북아역사재단 장세윤 책임연구위원 ⓒ글마루
서울역은 사실 부산~서울~신의주~심양~장춘을 연결하는 일제의 주요 침략루트이자 군인과 군용물자 이동을 위해 만든 식민통치의 대표적인 상징물이다.

일본이 흔히 식민통치가 조선의 근대화에 기여했다는 근거로 철도, 항만건설 등을 들지만 이동거리 단축이 오로지 목적이었던 그들에게 우리 민족의 근대화는 당초에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1919년 9월 2일 서울역(당시 경성역)에 일대 사건이 벌어진다. 새로 부임하는 제3대 총독 사이토 마코토에게 강우규 의사가 수류탄을 선물(?)한 것이다. 강우규 의사는 당시 백발머리에 수염도 희끗한 65세의 할아버지였다. 그가 던진 폭탄이 사이토에게 떨어지진 않았지만 총독 일행 중 37명의 사상자를 냈다.

외환은행 본점은 토지 수탈의 대명사 '동양척식주식회사'자리

▲ 동양척식주식회사 전경(현 외환은행 본점) ⓒ글마루

서울 지하철 2호선 을지로입구역에 내리면 외환은행 본점이 보인다. 외환은행 본점은 일제강기 가장 악명이 높았던 토지 수탈의 대명사 ‘동양척식주식회사’가 있던 곳이다. 황해도 재령이 고향인 한 사나이는 조선의 경제를 독점하는 이 동양척식주식회사를 응징하고자 그곳에 폭탄을 던졌다.

그러나 폭탄은 터지지 않았다. 다시 건물 안으로 들어가 일본경찰과 총격전을 벌였고 일본인 직원 3명을 사살하고 4명에게 부상을 입혔다. 그리고 육혈포(여섯 개의 구멍이 있는 총, 리벌버) 마지막 총알을 자신에게 겨누어 자결했다. 이는 외환은행 본점 앞에 세워져 있는 동상의 주인공 나석주 열사(당시 35세)에 대한 이야기다. 동상은 손에 태극기나 권총이 아닌 문서 하나를 들고 있었다.

장 연구위원은 “나석주 의사가 들고 있는 문서는 의열단 문서로 단기 4256년(서기 1923년) 1월이라고 적혀 있다. 의열단에서는 서기를 쓰지 않고 우리 민족의 유구한 역사를 강조하기 위해 단기를 썼다”고 설명했다.

의열단은 미온적 독립운동을 반성하고 강력한 조직력으로 과감하고 과격하게 목숨을 걸고 일제와 투쟁했던 항일독립운동단체이다. 민족시인 이육사 등이 의열단에서 활동했다.

나석주 열사 동상 앞에서 답사팀이 모여 사진을 찍어대자 무슨 일인가 싶어 걸음을 멈추는 사람들이 더러 있었다. 수많은 사람이 오고 가는 이 길에, 소원을 이루지 못한 채 끝내 자결한 한 사나이의 애끓는 마음을 주목하는 사람은 얼마나 있었을까.

서울시립미술관엔 3대 조선총독이름 새겨진 주춧돌 그대로

▲ 서울시립미술관 주춧돌에 남아있는 일제강점기의 흔적 ⓒ글마루
‘이제 모두 세월 따라 흔적도 없이 변해갔지만 덕수궁 돌담길엔 아직 남아 있어요’ 광화문연가 가사에 나오는 덕수궁 돌담길은 한국을 대표하는 아름다운 길 중 하나다.

이 길을 따라 들어가면 고풍스러우면서 웅장한 외형이 한 눈에 보기에도 멋스러운 서울시립미술관이 나온다. 일제강점기 때 경성재판소요, 해방 이후 우리나라 대법원 청사로 쓰였던 건물이다. 이 건물 입구 우측 귀퉁이에 보면 정초(定礎)라고 해서 일제강점기 당시 준공 후 새긴 주춧돌이 남아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장 연구위원은 “昭和二年十一月(소화이년십일월) 朝鮮總督子爵齋藤 實(조선총독자작재등 실), 곧 1927년 11월에 준공됐고 조선총독 사이토 마코토라 새겨져있다”며 “이는 서울 시내에 볼 수 있는 몇 안 되는 식민통치의 흔적”이라고 설명했다. 돌에 새겨져 있으니 덧칠을 하지 않는 이상 영원히 남아있을 식민지의 산흔적이다. 이 아름다운 곳에서 그 많은 독립 운동가들이 형을 선고받아 감옥 생활을 하거나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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