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일 오전 11시 20분께 서울 종로구 소격동 경복궁 옆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공사현장 지하 3층에서 불이나 4명이 사망한 가운데 화재 당시 연기가 서울 하늘을 검게 뒤덮고 있다. (사진출처: 연합뉴스)

화재발생 지하층 면적 3만㎡에 소방장비는 소화기뿐
내년 2월 공기 맞추려 무리했을 가능성도 제기

(서울=연합뉴스) 13일 오전 서울 종로구 소격동 경복궁 옆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공사현장에서 난 화재는 서울시내 곳곳에서 목격될 정도로 큰불이었다.

사망자 4명을 포함해 20명이 넘는 사상자가 났을 만큼 서울 도심에서는 근래 보기 드문 대형화재였다.

타워크레인 근무자 한 명은 솟아오르는 열기와 검은 연기를 피해 지상으로 황급히 내려오다 20여m 아래로 추락해 중태에 빠지기도 했다.

다행히 불이 난 지 10여분이 지나기도 전에 경복궁 인근 경찰들이 현장을 통제해 관광객 등 공사장 외부의 인명 피해는 없었다.

그러나 경복궁 경내를 관람하던 관광객 수천명이 일제히 대피하고 차량 접근이 제한되는 등 일대 혼란이 벌어졌다.

길가던 시민과 관광객도 발걸음을 멈추고 걱정스러운 얼굴로 시커멓게 솟구치는 연기를 쳐다보며 가슴을 졸였다.

공사장 현장 내부는 단열재 등이 타면서 발생한 유독가스가 가득해 마스크나 방독면 없이는 한 발짝도 나아갈 수 없었다.

공사 중인 건물 가까이 접근해도 2만7천㎡ 가량의 공사장 대지 대부분을 채운 검은 연기 때문에 건물의 형체조차 알아보기 어려웠다.

흰색 방연 마스크가 착용한 지 5분도 채 지나지 않아 분진과 온갖 유독물질 때문에 검게 변할 정도였다.

화재 발생 20여분이 지나면서 서울시내 각지의 소방대가 출동해 본격적인 진화와 구조작업이 이뤄지기 시작했다.

정오를 지나면서는 불길도 잡히기 시작해 지상의 연기는 한풀 가라앉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지하 3층까지 유독가스가 들어찬 탓에 구조작업은 수월하지 않았다.

교대로 구조에 나서는 소방대원들의 노란색 방염복은 현장에 들어갔다 나올 때마다 더 검게 그을렸다. 외부에서 작업을 지원하는 대원들의 얼굴과 팔에도 대부분 검댕이 묻어 있었다.

불은 오후 12시46분 완전히 진화됐지만 1시간이 지나도 현장 인근에서는 여전히 매캐한 냄새가 났다.

오후 2시까지 구조대는 현장 근무자 20여명을 구조했고, 이들 중 4명은 병원으로 이송된 후 사망했다.

소방당국은 이날 현장에 소방대원 220여명과 차량 60여대를 투입, 진화에 나섰으나 현장 면적이 넓고 유독가스가 심해 작업에 어려움을 겪었다.

소방당국 관계자는 "지하 3층에서 우레탄으로 방수ㆍ단열작업을 하다 화재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며 "불이 난 현장은 페인트와 우레탄, 가스 등 인화성 물질을 많이 쓰는 곳이었다"고 말했다.

당국에 따르면 지하 3개층 면적은 3만1천여㎡에 달할 만큼 넓은 반면 소화기 외에는 이렇다 할 소방장비가 설치되지 않은 상태였다.

공사 기간은 지난해 12월부터 내년 2월까지로 잡혀 있었으며, 스프링클러를 비롯한 소방시설은 이제 시공 중이었다.

설상가상으로 현장에는 스티로폼과 샌드위치 패널 등 불이 잘 붙는 단열재가 곳곳에 널려 있어 불이 나면 유독가스가 다량 발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이번 화재가 공기를 맞추려는 과정에서 위험한 작업을 동시에 하다 발생했을 개연성이 있다는 현장 관계자의 진술도 나왔다.

단순히 화학물질이 존재한다고 해서 불이 나지는 않는 만큼 전기ㆍ용접 작업 등을 같이했을 공산이 크다는 것이다.

현장 하청업체 소속이라고만 밝힌 한 관계자는 "우레탄 작업만으로 불이 나지는 않는다"며 "전기나 용접 등 위험한 작업을 그와 동시에 하려면 엄격하게 안전 관리를 해야 하는데 대통령 임기에 맞춰 공사를 끝내려다 보니 이렇게 된 부분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업체와 직급, 이름을 밝히길 꺼린 이 관계자는 "현 대통령 임기 내에 공사를 끝내야 한다는 것은 이 현장에서 비공식적으로 다 알려진 이야기"라고 덧붙였다.

역시 소속을 밝히지 않은 한 현장 근무자도 "여기서는 야근을 거의 매일 했고, 비가 오는 날에는 보통 작업을 안 하는데 비가 그치길 기다렸다가 작업을 재개하는 등 공기를 맞추려고 상당히 급하게 진행하는 모습이 역력했다"며 "다른 현장에서는 이런 경우를 본 적이 없다"고 전했다.

소방당국 관계자도 "화재원인을 우레탄만으로 볼 수는 없다. 최초 발화 원인은 내일(14일) 다시 조사해볼 것"이라고 말했다.

신축공사 현장의 안전규정 준수를 감독하는 서울지방고용노동청 관계자는 "현재 해당 현장의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여부를 살펴보고 있다"며 "회사 관계자 등을 상대로 조사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경찰은 현장 감식이 끝나는 대로 당시 근무자와 시공업체 관계자를 상대로 업무상 과실 여부 등을 조사할 계획이다.

경찰 관계자는 "현장 상황 재구성이 급선무"라며 "현재 치료 중인 목격자들의 진술과 경찰 감식을 통해서 당시 현장이 어땠는지 살펴보고 업무상 과실치사상으로 볼 부분이 있는지 확인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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