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동원 피해조사委 조사결과…400여명 추산
상당수 엘리트 대학생…사상범으로 분류 특별관리
국내에서 노역해 현행법상 피해자 지원혜택 못받아

(서울=연합뉴스) 태평양전쟁 후반기 일제의 학도병 지원을 거부했다가 강제동원돼 노역에 시달린 조선인 학생이 수백명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국내와 일본의 최고 수준 대학을 다니던 엘리트로 소신에 따라 지원을 거부한 이들이 적지 않았다. 일제는 이들을 일종의 '사상범'으로 분류해 특별 관리한 것으로 드러났다.

13일 국무총리 소속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국외 강제동원 희생자 등 지원위원회(위원장 박인환)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당시 일본의 학도병 지원 요구를 거부하고 노무자로 끌려간 학생은 최소 125명이다.

이들은 당시 신문 보도를 비롯한 관련 자료에서 '응징학도' '징용학도' 등으로 불렸다. 이들은 1943년 11월 조선총독부가 학도병 지원을 거부한 조선인 학생에 대해 산업체 징용 명령을 내림에 따라 구인돼 국내 여러 사업장으로 끌려갔다.

1944년 일본 제국의회 자료에 언급된 징용학도 규모는 125명이다. 그러나 징용학도 1개 차수 인원이 150~200명이고, 최소 2개 차수가 있었다는 복수의 피해자 진술에 따라 위원회는 적어도 400명 이상이 동원된 것으로 추산했다.

위원회가 공식 확인한 징용학도 65명의 신상을 보면 경성제국대(현 서울대), 연희전문학교(현 연세대), 보성전문학교(현 고려대), 일본 와세다대, 메이지대, 도쿄제국대 등 국내외 유수 대학 재학생이 상당수 포함됐다.

국사학자인 한우근 전 서울대 교수, 영문학자 여석기 고려대 명예교수, 민주화 운동가 계훈제 전 민주통일국민회의 부의장, 서명원 전 문교부 차관 등도 당시 학도병 지원을 거부했다가 강제동원된 피해자다.

징용학도 중에는 단순히 병역을 피하려는 이유로 숨어다니다 붙잡혀 끌려간 이들도 있었으나 '남의 나라 군대에서 복무하고 싶지 않다'는 소신으로 지원을 거부한 이들도 적지 않았다고 위원회 측은 설명했다.

위원회 관계자는 "징용학도들은 당시 최고 수준의 교육을 받은 엘리트여서 민족의식이 강했고 일본의 패망이 가까웠음을 감지하고 있었다"며 "엄혹한 시절이었음에도 양심에 따라 행동한 결과 일종의 '사상범' 취급을 받았다"고 말했다.

일제는 징용학도들이 '황국 신민으로서 자질이 부족하다'며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사람으로 만든다는 명목으로 이들에게 군사훈련과 사상교육을 했다.

피해자들의 수기와 진술을 살펴보면, 일제는 군사훈련소에서 친일인사 강연을 통해 징용학도들에게 "너희는 국민의 의무인 병역을 기피했으므로 천황폐하의 쌀을 먹을 자격이 없다"며 '충성스러운 황국 신민'으로 거듭날 것을 강요했다.

일제는 교육 수준이 높은 징용학도들이 일반 노무자들에게 사상적 악영향을 미칠 것을 우려, 이들을 격리해 별도 관리하기도 했다고 위원회는 전했다.

이들은 북한 지역에 있는 시멘트 공장과 철도공장 채석장 등에 동원됐으며 폐병을 비롯한 각종 질병을 얻은 경우도 많았다. 노역 중 부상을 당하거나 영양실조에 노출된 이들도 속출했다.

그러나 이들은 국내 작업장으로 동원된 탓에 국외 동원 피해자들만 지원하도록 규정한 현행 강제동원 피해자 지원법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다.

위원회 관계자는 "징용학도들의 사례는 패망을 앞둔 일본 제국주의가 마지막으로 발버둥치던 모습을 보여주는 단면"이라며 "신념에 따라 학도병 지원을 거부한 이들도 법적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관련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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