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칠장사 누각. 칠장사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나무로 만들어진 누각이 눈에 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천지일보=백지원 기자] 청년 박문수는 과거를 보기 위해 한양으로 길을 나섰다. 가던 도중 안성 칠장사에서 하룻밤을 묵게 됐는데, 나한전에 기도를 올리고 잠이 들었다. 그런데 그날 밤, 꿈에 나한이 나타나 박문수에게 과거 시제를 일러주게 된다.

다음 날, 다시 길을 나선 박문수는 과거를 치렀고 당당히 장원급제를 했다. 그가 푼 시험 8문제 중 7문제가 꿈에서 나한이 일러준 것들이었다.

칠장사에는 어사 박문수와 관련된 ‘몽중등과시(夢中登科詩)’ 이야기가 전한다. 이 이야기가 널리 알려지면서 칠장사는 수능이 다가오면 수능발원 기도를 하러 오는 수험생 어머니들로 문전성시를 이룬다. 또 매년 칠장사에선 ‘어사 박문수 백일장’을 개최하고 있다.

◆아늑한 시골 마을
경기도 안성시 죽산면 칠장리에 자리한 칠장사를 찾아가는 길. 버스가 하루 네 대밖에 다니지 않는 외진 산골이다. 교통편은 불편하지만, 시골의 정취가 느껴지는 아늑함이 있다. 마을 사람들은 푸른 숲과 맑은 물이 어우러진 자연과 벗하며 살아간다.

평화로운 마을 분위기는 이미 전국적으로 명성이 나 있었다. 칠장리 보존발전추진위원회 오동환(66) 위원장은 “칠장사 아래 자리한 구메 농사마을은 자연생태 우수마을로 여러 차례 선정됐다”고 소개했다. 또 “칠장산은 금북정맥과 한남정맥, 한남금북정맥이 시작되는 3개 정맥의 분기점”이라며 “그만큼 의미 있는 땅”이라고 설명했다.

칠장사는 신라의 고승 자장율사가 646년(진덕여왕 2)에 창건했다고 전한다. 천 년의 역사를 간직한 칠장사 구석구석에는 신기하고 재미있는 전설이 전한다. 이 같은 전설을 알고 간다면 더욱 흥미롭게 사찰 탐방을 즐길 수 있다.

칠장사가 자리한 칠현산은 지혜로운 스님 덕분에 7명의 도둑들이 현인으로 다시 태어나게 돼 이름이 아미산에서 ‘칠현산(七賢山)’으로 바뀌었다. 또 통일신라 말 후고구려를 세웠던 궁예가 활쏘기를 하며 10살까지 칠장사에서 지냈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 칠장사 대웅전에선 오랜 시간이 흔적이 느껴진다. 색이 많이 바래 고즈넉함이 느껴진다. ⓒ천지일보(뉴스천지)
임꺽정이 스승 위해 만든 ‘꺽정불’
마을을 지나 어느새 사찰에 다다랐다. 파란 하늘 아래 멋진 누각이 놓여 있다. 그리고 스님의 목탁 소리와 함께 염불 소리가 산사에 울려 퍼진다.

사천왕문을 통과해 사찰 경내로 들어섰다. 넓은 대웅전 마당이 펼쳐지고 여러 전각들이 눈에 띈다. 그중 대웅전 처마는 색이 많이 바래 오랜 역사를 짐작게 한다. 대웅전 옆쪽으로는 봉업사 석불입상과 거북이 모양을 한 거북바위가 놓여 있다.

칠장사에는 다른 사찰에는 없는 꺽정불이 봉안된 ‘홍제관’이 있다. ‘조선 3대 의적’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임꺽정은 홍명희의 소설을 통해 널리 알려졌다.  임꺽정은 칠장사에 있는 갓바치 출신의 스님, 곧 병해대사를 스승으로 모셨는데 이 병해대사를 위해 만든 불상이 ‘꺽정불’이다. 꺽정불 하단에 붙어 있는 ‘봉안 임꺽정’이라는 삼베 조각과 조성 추정 시기가 16세기 중반, 임꺽정의 활동 시기와 일치하다는 점은 실제 임꺽정이 봉안했다는 설에 무게를 실어주고 있다. 1996년부터 1년여간 방영된 TV 드라마 ‘임꺽정’을 이곳에서 촬영하기도 했다.

▲ 칠장사 나한전. 훗날 암행어사가 된 박문수가 과거를 보러 가는 길에 칠장사 나한전에 기도를 드리고 잠을 자게 됐는데, 꿈에서 과거 시제가 나왔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천지일보(뉴스천지)

위쪽으로는 나한전이 있다. 박문수의 이야기가 전해 내려와 유명해졌으나, 유명세에 비해 규모도 작고 화려하지 않다. 투명한 벽으로 만들어진 작은 공간 안에 나한상이 모셔져 있다. 사찰이 지어지고 3차례 화재가 나 다른 전각들은 소실됐으나, 나한전은 무사히 살아남았다고 한다. 때문에 사람들은 더욱 영험한 기운이 깃들어 있다고 믿는다.

국보, 보물 등 문화재 많아
칠장사가 유명한 또 다른 이유는 국보와 보물을 비롯한 각종 문화재가 많이 간직돼 있다는 점 때문이다. 가장 유명한 것은 ‘5불회 괘불탱화(국보 제296호)’다. 이는 야외 의식을 행할 때 거는 대형 불화로,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괘불 중 3번째로 오래됐다. 비로나자불 등 다섯 불상이 그려져 있어 ‘5불’이다.

나한전 옆에 있는 혜소국사비(碑)는 보물 제488호로 지금은 비와 받침돌, 몸돌, 머릿돌이 각각 따로 놓여 있다. 특히 몸돌은 검은 대리석으로 만들었는데 양 측면에 두 마리의 용이 새겨져 있다. 혜소국사는 고려 시대에 활동했던 국사로 칠장사를 중흥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

▲ 칠장사 봉업사 석불입상. 보물 제983호로 지정된 봉업사 석불입상은 불상과 ‘광배(光背)’를 하나의 화강암에 담아냈다. 대웅전 옆에 모셔져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또 보물 제983호로 지정된 ‘봉업사 석불입상’도 눈길을 끈다. 조각 기법이 매우 우수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 이 석불입상은 불상과 ‘광배(光背)’를 하나의 화강암에 담아냈다. 이 외에도 칠장사는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39호인 당간지주와 제238호 청동범종, 제115호 소조 사천왕상 등 여러 문화재를 간직하고 있다.
▲ 칠장사 거북바위. 대웅전 옆에 자리한 거북 바위는 거북이 모양을 닮아 이 같은 이름이 붙여졌다. ⓒ천지일보(뉴스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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