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우 소설가 문화칼럼니스트

세상이 어지럽고 살기가 어려워지면 새로운 지도자가 나타나기를 열망하게 된다. 과거 신라 말이나 고려 말 혹은 조선 후기 등 사회적으로 혼란한 시기에는 어김없이 이러한 백성들의 소망을 반영한 도참설(圖讖說)이 나돌았다. 도참이란 나라나 사람의 길흉화복이나 성패를 예언하는 것으로 원래 중국에서 생겨나 신라 때 당나라로 유학을 다녀온 승려 등에 의해 우리나라에 들어왔다고 한다.

‘삼국사기’ 백제본기(百濟本紀)에, 의자왕 20년(660)에 귀신이 날아와 “백제는 망한다”고 잇따라 외치고는 땅 속으로 들어가므로, 왕이 그 자리를 파게 하니 거북 한 마리가 나왔다는 이야기 나온다. 그 거북의 등에 ‘백제는 둥근 달이요, 신라는 초생 달 같다’라는 참귀(讖句)가 새겨져 있었는데, 이는 백제가 망하고 신라가 흥한다는 뜻으로 전해졌다.

신라 말기의 대학자이자 문장가였던 최치원은 “곡령(개성의 송악산)은 푸른 소나무요, 계림(경주의 숲)은 누른 잎이다(鵠嶺靑松 鷄林黃葉)”라고 말했다는데, 이는 신라가 망하고 고려가 흥한다는 뜻으로 이 역시 도참이다.

고려를 세운 왕건도, 당나라 상인이 철원에서 어느 이상한 노인으로부터 거울을 사서 벽에 걸어놨더니, 신라가 망하고 고려가 세워진다는 내용의 참귀가 보였다는 이야기를 만들어 퍼트리기도 했다. 태조 왕건은 훈요십조에도 도참설을 강조하는 등 도참설을 왕조에 대한 정당성을 강화하는 데 이용하였고 이 때문에 고려 시대 내내 상하 귀천을 막론하고 도참설이 유행하였다.

조선을 세운 이성계는 중 무학과 결탁해 왕(王)자 꿈을 조작하기도 했다. 서까래 세 개가 자신의 등에 내려앉았다는 꿈을 꾸었다는 것인데, 등에 서까래 세 개가 나란히 걸쳤으니 그게 곧 왕(王) 자이고 그건 바로 자신이 왕이 될 운명이라는 것이다. 목자(木子)가 왕이 된다고도 했는데, 목(木) 아래 자(子)를 두면 이(李) 자가 되니, 이(李)씨 성을 가진 사람이 왕이 된다는 것이다. 황당한 소리지만 그 시절에는 그런 게 먹혀들었던 모양이다.

풍수사상과 결합해 새 왕조의 출현을 예언한 ‘정감록(鄭鑑錄)’도 대표적인 도참서 중 하나다. 정(鄭)씨 성을 가진 왕조가 들어설 것이란 주장을 담고 있는데, 이게 사실은 조선이 세워지고도 고려 왕조 세력들이 끈질기게 저항하자 오백 년 이(李)씨 왕조가 끝나야 정(鄭)씨 왕조가 생겨난다는 내용을 담아 그들을 억누르려 한 것이었다.

새로 나라를 세운 자들은 하나같이 자신이 그럴 수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났다거나 하늘의 뜻이라는 주장을 펼쳤다. 신라 말 태봉을 일으킨 궁예도 그랬다. 세상이 어수선해지자 자신을 미륵불, 즉 난세에 민중을 구원해 줄 미래의 부처라 일컫고, 불(火)의 나라인 신라를 물(水)로 눌러 만 년 동안이나 나라를 이을 것이라며 연호를 수덕만세(水德萬歲)라 하였다.

신문도 방송도 없던 시절에는 책을 가장 믿을 만한 정보 취득 수단으로 여겼을 것이다. 그래서 미래를 예언한다는 도참서가 비기(秘記)나 밀기(密記) 혹은 비결(秘訣)로 불리며 민초들 사이에 은밀하게 나돌았던 것이다. 그것들은 대개 기존 체제와 정치 세력들을 비판하고 새로운 지도자나 나라가 출현한다는 내용이었으므로 금서로 찍혀 읽는 것이 금지되기 일쑤였고 읽거나 소장하다 발각되는 날엔 목숨을 잃기도 했다. 그럼에도 도참서에 열광한 것은 새로운 세상에 대한 백성들의 열망이 컸기 때문일 것이다.

‘안철수의 생각’이란 책이 인기 폭발이다. 이 책에 대한 관심이, 몰래 비기를 읽으며 새로운 세상을 갈망하던 옛 사람들의 그것과 비슷해 보인다. 그런데, 그럼에도, 정작 그 저자는 ‘간기남’으로 보인다. ‘간을 보면서 기다리는 남자.’ 해바라기의 노래가 생각난다. ‘어서 말을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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